M1 맥북프로 13인치- 여의도IFC 애플스토어 구입기, 언박싱
얼마 전, 여의도 IFC몰에 위치한 애플스토어에 다녀왔다. 지난 9월에 방문했을 때는, 거리두기 관계로 예약된 고객만 입장할 수 있었는데, 위드코로나가 시행되면서 별다른 제한 없이 누구나 매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갈 때는 빈 손으로, 나올 때는 큰 박스를 하나 들고 나왔다. 바로, 작년에 출시된 13인치 M1 맥북프로였다.
M1 맥북프로 구매의 이유
16인치 맥북프로, 계륵같은 너
내게는 3년동안 처절하게 혹사당한 XPS 15가 있다. 첫 창업과 폐업, 스타트업 생활과 두번째 창업을 함께 한 친구다. 그러나,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배터리 완충 용량이 60%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고, 맥OS를 쓰는 데스크탑과 아이폰과의 연계성이 떨어져서 불편했다. 그래서, 지난 3년간 고생한 XPS15를 퇴역시키고, 노트북 포지션의 새로운 선수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2019년형 16인치 인텔 맥북프로.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라서 중고로 구입해 한두달 정도 사용했는데, 처음 며칠만 설레고 좋았지 쓰다 보니 이건 정말 계륵의 끝판왕이었다.
XPS보다 빠르기는 하나 두배씩 빠른 것은 아니었고, 높은 성능이 필요한 작업은 어차피 데스크탑을 주로 사용했다. 배터리 사용시간도 짧지는 않았지만 마음 편하게 쓸 만큼 길지도 않아서 어댑터를 들고 다니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코어 i7이 장착된 기본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열과 팬 소음이 거슬렸다. 특히, 침대에 기대앉아 글을 쓸 때 허벅지가 천천히 익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당근마켓에 다시 던져버렸다.
그리고 나니, 내가 노트북을 왜 쓰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내 생활을 되돌아보면, 지금까지는 이사와 이동, 여행이 잦았다. 스무 살 때부터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고, 서울 제주를 오가는 프리랜서와 회사생활을 했었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4K영상을 편집하고, 디자인을 할 수 있는 15인치 랩탑이 필수였다. 16인치 맥북 프로를 고민없이 구매한 것도 그런 습관의 관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안정된 내 집이 생긴 후로 주로 집에서 데스크탑으로 일하고 있고, 외부 일정은 대부분 미팅 뿐이다. 그래서 내겐 고성능 노트북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게 진정 필요했던 건 아이패드와 데스크탑 사이를 채워 줄 제대로 된 컴퓨터였다. (애플은 아이패드를 컴퓨터라고 부르지만, sorry. 아이패드는 절대 컴퓨터가 아니다) 모바일 버전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데스크탑 버전의 프로그램을 굴리면서, 가볍고, 충전기 없이 들고다닐 수 있으며, 미팅이 길어져도 배터리 걱정이 없으면서, 적당히만 빠르면 되었다. 13인치 맥북이 적격인 상황이었다.
충전을 언제 했더라..
같은 가격의 13인치 인텔 맥북도 있지만, 굳이 M1 버전을 고른 이유는 미친듯이 긴 배터리 사용시간과 없다시피 한 발열 때문이었다. 테크 유튜버 Marques Brownlee는 M1 맥북프로를 구입하고 100%까지 충전한 후 1주일간 총 10시간여를 사용하고 20%정도의 배터리가 남았다고 이야기했고, The Verge의 리뷰에서도 비슷하게 10시간 내외의 사용시간을 보여준다고 했다. 게다가, 이 두 매체의 리뷰는 M1 생태계가 안정되기 전, 신제품이 막 나왔을 때의 리뷰였기 때문에, 최적화가 많이 진행된 지금은 그보다 실제 사용시간이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텔 CPU를 사용한 13인치 맥북 프로도 꽤나 긴 배터리 사용시간을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M1 맥북프로만큼은 아니었고, 인텔 칩의 발열도 신경쓰였다. M1 맥북에어를 고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서너 시간 긴 배터리 사용시간과 터치바, 그리고 더 깔끔해보이는 외관을 이유로 맥북 프로를 선택했다.
M1 생태계의 안정화
M1 맥북을 고민 없이 구매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이유는 M1 앱 호환성의 안정화다. 애플이 M1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를 막 출시했을 때는 M1 칩을 제대로 지원하는 앱 생태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포토샵과 프리미어 등 어도비의 모든 앱들은 물론이고, 구글 크롬과 같은 기본적인 앱도 ARM기반의 M1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서 애플의 로제타를 통한 에뮬레이션이 필수였다. 따라서, M1프로세서의 최적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소프트웨어 끊김이나 버그를 필두로, 발열과 심한 배터리 소모가 세트로 따라왔다. 나처럼 맥을 업무용으로 써야 하는 사람이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다. 업무용으로 파이널컷, 로직, 사파리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새로 나온 M1 맥북은 얼리어댑터들의 장난감일 뿐이었다. 그러나, M1 맥북이 출시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엔 상황이 완전히 뒤바꼈다. 어도비의 Creative Cloud, 구글 크롬, MS OFFICE365 등등, 웬만한 주요 프로그램들이 모두 ARM기반의 M1칩셋에 최적화되어 업데이트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도 되는 타이밍이 된 것이다
애플 스토어, 첫 쇼핑
나에게는 애플 스토어에서의 쇼핑이 처음이었다. 가로수길 애플스토어를 몇 번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보통은 접근성이 좋은 프리미엄 리셀러들이나 휴대폰 대리점을 통해 구매했었다. 애플 스토어에서의 경험은 깔끔했다. 특별히 신기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니멀 그 자체인 매장과, 아이폰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는 업무 방식이 꽤나 새롭기는 했지만 말이다. 몇 년 전에는 맥북을 구매하면 파트너들이 박수를 쳐주며 축하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그런 신기한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겐 기본형이면 충분해
나는 고민없이 8GB 램과 256GB SSD가 장착된 기본형 맥북프로를 구매했다. 내 테크 환경과 사용 용도가 분명해서다. 집 겸 사무실에 설치한 20테라바이트정도 되는 스토리지 서버에 대부분의 자료가 들어있고, 사진이나 영상 편집을 할 때 모든 소스가 서버에 저장된 상태로 네트워크를 통해 파일에 접근하니 넉넉한 로컬 스토리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M1맥북프로를 가지고 거창한 작업을 돌릴 것도 아니라서 16기가 램도 필요하지 않았다. 2주 정도를 기다려 영문 키보드 버전을 구매할까도 생각했지만, 4~5일도 아니고 2주는 기다리기에 애매하게 긴 시간이라, 깔끔하게 포기하고 한글 병기 키보드가 달린 기본형 모델을 그 자리에서 구매해 가져왔다.
언빡씽, 비닐과 박스를 뜯뜯
13인치 M1 맥북프로는 애플의 명성에 걸맞는 박스 디자인과 포장을 보여주었다. 내부 포장은 기존과 다르지 않지만, 이번 M1 맥북프로부터는 외부 비닐을 뜯는 방식이 약간 달라졌다. 측면에 손잡이가 있어, 한 줄을 길게 벗겨내고 나머지 비닐을 제거할 수 있었다. 박스를 열자 보이는 것은 영롱한 스페이스 그레이 컬러의 맥북과, 포장지로 된 손잡이였다. 누가 봐도 잡아 들어올려야 할 것 같이 생긴 손잡이를 들어서 제품을 박스에서 꺼내고 나면, 맥북을 감싸고 있는 종이 커버를 제거할 수 있다. 종이 포장지의 바닥에 붙어있는 접착제는 딱 알맞은 정도의 접착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기분좋게 스르륵 잡아당겨졌다.
열자마자 켜지는, M1의 신기능
이번 M1 맥북프로는 기존의 맥북과는 다르게, 노트북을 여는 순간 부팅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듣는 빙- 하는 맥 부팅음이, 6년 전 첫 맥북을 구매했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게 했다. 애플은, 애플 실리콘 M1칩을 설계하면서, 마치 아이폰과 같은 빠른 반응성을 구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노트북을 닫았다 열기만 하면 벌써 로그인 화면이 준비되어 화면에 띄워져 있다. 덮개를 열고 1초정도 딜레이가 있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 강렬한 첫인상으로 남았다. 정말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 같은 빠릿빠릿함이었다.
맥북, 너는 1억을 벌거야 (쉼없이 일해라 맥북)
이번 맥북프로를 구매하며, 다짐한 것(맥북에게 전가한 막중한 책임)이 있다. 바로, 이 노트북으로 1억원을 만들어보는 것. 기존에 사용하던 XPS15만으로 만든 매출이 3년간 5천만원 정도였으니, 그 두 배를 달성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억원을 만드는 주역은, 이 맥북으로 쓰는 책이 될 수도 있고, 마케팅 컨설팅이 될 수도 있고, 블로그가 될 수도 있다. 이 맥북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1억원을 만들어본다면, XPS만큼이나 내게 소중한 장비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