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마케터의 퇴사일기 – 내가 입사를 결심한 이유
2018년 12월 초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나는 1년 7개월간 영어교육 앱 스타트업 캐치잇플레이에서 마케터 /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근무했다. 내 Professional Life에 있어 하나의 큰 챕터가 마무리된 만큼, 그간 겪고 배웠던 것들을 여러 편의 글에 나누어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어른이 되어 보냈던 5년 9개월의 시간 중 자그마치 1/3가량을 차지하는 시간에 대한 일기이자, 미래의 나를 위해 쓰는 매뉴얼이면서, 또한 이후의 커리어를 위한 이력서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내가 캐치잇플레이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2018년, 스물 셋의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뜻밖의 클라이언트
2018년 초, 어른이 되기도 전부터 시작했던 그간의 파트타임 프리랜서 생활이 안정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내가 뛰던 분야는 디지털 미디어, 웹, 그리고 마케팅이었다. 사진으로 시작한 커리어는 편집디자인과 웹디자인, 그리고 영상으로 한단계씩 확장되었고, 스물 세살이 되면서 드디어 법인회사에서 업무 요청이 들어오게 되었다. 사업자등록을 한 것도 그때였다. 금나노 기술을 가진 국내의 중소기업과 디자인업무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 그보다 한두해 전쯤 제주에서 만났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홍보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작업자로 재일씨를 추천하려고 해요
사업을 시작한 이후 두번째로 들어온 법인회사와의 업무이자, 경험해 본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었다. 그 지인은 스물한살, 제주에 살던 때에 작업했던 해커 패러다이스 멤버 인터뷰(링크)를 보고 영상 작업자로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인터뷰 컨텐츠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던 때였고, 그래서 고객 인터뷰 기반의 홍보영상을 제안했다. 그렇게 확정된 것은 여섯 명의 고객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인터뷰 참가자는 제주도에 사시는 60대 할머니, 부산의 직장인, 서울의 사립 초등학교 학생과 선생님 등이었다.
회사가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인터뷰 인터뷰이의 입을 빌려 말해야 했기 때문에, 의도한 메시지를 잘 발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잘 짜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배우를 섭외해서 대본대로 읊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오히려 쉬웠을 테지만, 진짜 고객의 진심을 담은 한마디가, 잘 쓰여진 배우의 대사보다 훨씬 낫다고 믿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에피소드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여섯 명의 인터뷰이들은 캐치잇잉글리시 서비스의 진정한 팬이었고, 덕분에 진솔하면서도 잠재 고객에게 들려지기에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담아낼 수 있었다.
편집된 영상들은 캐치잇플레이측에 전달되었고, 구글 UAC에서 굉장한 효율로 작동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구매당 비용/설치당 비용 등 자세한 숫자를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앱 서비스의 퍼포먼스 마케팅 경험이 있는 마케터라면 누구나 놀랄만 한 단가였다. 광고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구글코리아의 디렉터가 인정했고 말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지 5년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놀라운 성과, 그리고 고민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4~5개월 만에, 나는 월 매출 천 이백만원을 기록했다. 스물 셋, 그리고 천 이백. 그 때의 이야기는 여기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여덟 자리 숫자] 5년간 차곡차곡 쌓인 경험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모든 성과는 오롯이 나 스스로 일구어 낸 것들이었고, 그저 온전히 누려도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해도 될 것 같았던 그 순간에 찾아온 감정은 오히려,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 일구어 낸 그 결과물이, 내가 만들 수 있는 한계는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이정도까지는 혼자 잘 왔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려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는 것이 옳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시의 실력은 스물 셋으로서는 꽤 특출난 것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큰 성장 없이 허울뿐인 서른 세 살 대표가 된다면, 그 뒤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대표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그저 군말없이 인턴이든 말단 사원이든, 바닥부터 다시 올라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가진 재능을 잘 녹여낼 수 있으면서도, 많이 배울 수 있는 팀에 합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나에겐 경험과 경력을 쌓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대학은 스킵했고, 난치병으로 인해 군복무도 면제받은 데다, 검정고시를 보면서 사회에 2년이나 일찍 나온 터라, 또래들과 비교해 Professional Life의 시작점 자체가 8년이나 앞서 있었으니까. 남은 시간은 3년 정도였고, 3년이면 꽤나 넉넉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침 그런 고민을 하던 시점에, 캐치잇플레이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주로 돌아가다
나는 당시의 고민들을 담아 캐치잇플레이에서 근무하고 있던 지인에게 인터뷰 의사를 밝혔다. 회사는 내 실력과 성장 잠재력을 믿어주었고, 기존 보직에 대한 채용을 취소하고 없던 포지션을 새로 만들어 나를 채용했다. 그렇게 나는 마케팅팀 매니저로 입사하게 되었고, 또 한번의 제주 생활이 시작됐다. 큰 챕터 하나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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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Kim 김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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