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마케터의 퇴사일기 – 직함을 내려놓기
스타트업 마케터로서의 삶은 방대한 양의 공부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일해 왔던 비주얼 컨텐츠 분야에서는 꽤나 깊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퍼포먼스 마케팅은 내가 손대본 적 없는 전혀 다른 분야였다. 새롭게 접하는 개념, 용어, 사고방식까지 배우고 몸에 익혀야 했다. 다시말해 직함을 내려놓고 새로운 지식을 백지에 다시 써내려가는 과정이었다.
마케터는 숫자로 말하고, 가설을 세우며,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
미사여구와 수식어는 빼고, 숫자와 비율, 퍼센트 포인트로 말하고 대답하는 것. 인문학적 소양과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가설로 녹여내어 실험을 진행하는 것. 그것이 마케터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자 덕목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시의 나는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오래 일하며 입에 붙었던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단어들’을 입버릇에서 덜어내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매우 개선됐다”는 말을 버리고 “27.8퍼센트 포인트 상승하여, 지표가 개선되었다”고 말하기까지 의식적인 노력과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맡아야 하는 업무 자체가 이러한 적응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었다. 매일 아침, 전날 집행된 광고 캠페인의 성과를 들여다 보며 하루를 시작했고, 정기적으로 소집되는 마케팅 회의를 위해 데이터를 가공하고 브리핑하면서 자연스레 숫자와 데이터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많이 들여다보게 되니, 생각의 회로 자체가 숫자와 팩트 중심으로 변화했다. 숫자로 생각하고, 데이터를 보는 눈이 생기자, 내가 가진 직관과 빠른 판단력을 잘 활용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내가 만든 성과로 팀에 조금씩 기여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팀원이자 팀장이자 팀 그 자체
내가 캐치잇플레이에 합류했을 당시, 팀의 규모는 나를 포함해서 열명 정도였다. 영어교육 앱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였던 만큼 개발팀의 규모가 가장 컸고, 컨텐츠팀이 그 다음이었다.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 모두 그렇듯, 많은 분야에서 각각의 팀원은, 팀원이자 팀장이자 팀 그 자체였다. 직함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긴 했지만, 혼자서 오만 가지 일을 한번에 처리해야 했던 1인기업 대표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적응 자체가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케팅을 맡고 있던 나는, 큰 회사에서라면 부서 하나가 책임지는 업무 전체를 돌봐야 했다. 광고 집행, 광고 성과 최적화, 광고비 관리, 광고 소재 기획과 제작, 기타 대외 커뮤니케이션까지. 큰 결정을 제외한 마케팅 업무 대부분은 내 책상에서 시작되어 내 책상에서 끝나야 했다. 오전에는 데이터를 뜯어보다가, 오후에는 광고 인터뷰 촬영을 진행하고, 다음날 오전엔 편집을 하다가, 오후엔 광고비 관련 분석을 하는 식이었다. 지루한 것을 잘 못 버티는 편인데, 당시를 돌이켜 보면 정말이지, 지루할 틈 없이 신나게 뛰어다녔던것 같다.
한 팀이 되어 제품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것
이미 조직된 팀 안에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적으로 어느정도 친해져야 하고, 팀의 규칙에 적응해야 하며, 팀의 필요를 파악해서 자신의 장점으로 잘 커버해야 한다. 민첩하게 움직여야 했던 스타트업의 특성 상, 기존의 팀원들이 내가 적응하기를 천년만년 기다려줄 수 없었다. 어떻게든 팀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한 팀이 되어 이 프로젝트를 같이 만들어가야 했다. 다행히, 입사 전에 외부 파트너로 광고를 만들며 팀원들과 잠시나마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은 초기 적응과정에 있어 엄청난 플러스였고, 또한, 그 때 만들었던 광고 영상이 말 그대로 대박을 치면서, 팀 내에서의 입지가 탄탄하게 잡혀 갔다. 입사 전이었던 7월부터 입사 4개월차였던 다음해 2월까지, 내가 만든 영상 덕분에 매출이 430% 뛰었으니까 말이다.
마케터로 일하는 법을 배우고, 스타트업에서 한 사람이 견뎌야 할 무게를 배우고, 입사 초기부터 큰 실적을 만들어내면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모두가 인정하는 당당한 팀원이 될 수 있었다. 글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함께 일했던 모든 분들이 훌륭한 매너와 인품을 가진 분들이었던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신입이든, 경력직이든 누구나 겪는 적응 과정의 어려움 중 대부분이 사실은 인간관계에서 오는데,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깨지는 일도, 불합리한 일을 당해서 억울했던 적도 없이 무사히 적응할 수 있었으니까. 그 덕에 내가 가진 퍼포먼스를 온전히 잘 끌어내 사용할 수 있었고, 퇴사를 한 지금도 캐치잇플레이에서의 경험이 즐거운 기억으로 잘 남아 있다.
다음 편에는 본격적인 업무와 성과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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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Kim 김재일
안녕하세요,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김재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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