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몽골 서부 홉드도 볼강군. 해발 1600m 고산·건조지대의 3500㎡ 규모 벼 시험재배장이 황금빛으로 출렁였다. 한국 품종 ‘진부올벼’가 완전히 익어 풍성한 결실을 거뒀다. 몽골 관계자는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한동안 논둑을 떠나지 못했다. 벼 이삭을 손끝으로 만져보고 휴대전화를 들어 벼 사진을 찍기도 했다. 몽골에서 벼가 익는 풍경은 그만큼 낯선 장면이다.
이번 성과는 농촌진흥청 산하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코피아) 몽골센터가 몽골 정부의 요청에 따라 ‘몽골지역 환경분석’(2023년), ‘몽골 적합 벼품종 선발시험’(2024년)을 거쳐 2025년 1월부터 추진한 ‘몽골 적응 벼 재배기술 개발사업’의 결실이다. 몽골은 40여 년간 벼 재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짧은 생육 기간, 큰 일교차, 적은 강수량 등이 늘 발목을 잡았다. 연간 쌀 소비량은 2024년 기준 약 4만 9536톤(약 460억 원 규모)으로,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체 생산 가능성이 확인된 셈이다.
몽골 정부는 진부올벼를 몽골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KOPIA의 도움을 받아 벼 재배 규모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몽골의 불모지에서 벼를 키워낸 오명규 KOPIA 몽골센터장을 만났다. 그는 ”수없이 실패를 반복한 끝에 길을 찾았다“고 했다.
몽골에서 벼 재배를 도전한 계기가 궁금하다.
2023년 몽골센터장으로 부임한 후 몽골 정부로부터 먼저 제안이 들어왔다. 농촌진흥청에서 오랫동안 벼 품종 개발 업무를 맡아왔고 과거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벼 재배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KOPIA 몽골센터 역시 2014년 개소 이후 축산과 밀·양파 재배 중심으로 몽골 정부와 협력 사업을 이어왔는데 새로운 작물 분야로 범위를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벼 시험재배 장소를 보니 고산지대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시험재배를 진행한 홉드도 볼강군은 몽골 서부 알타이산맥 인근의 고산·건조지대다. 평균 해발이 약 1600m다. 몽골 기준에서는 평균적인 기후와 토양 조건을 갖춘 곳으로 벼 재배에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다. 이곳에서 벼 재배를 성공해야 몽골 전역으로 확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다.
처음 현장에 갔을 때는 기반시설이 거의 없었다. 관개시설 정비부터 시험재배지 조성, 안정적인 용수 공급체계 구축까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도 과거 몽골에서 벼 재배를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는 기존 실패 사례를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들여다보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현장에서 느낀 몽골 기후와 토양 상태는 어땠나.
시험재배지에 투입할 벼 품종을 최종 선정하기에 앞서 울란바타르 근교에서 다양한 품종을 대상으로 사전 시험재배를 했을 때만 해도 가능성이 보였다. 초기 생육도 괜찮았다. 그런데 실제 시험재배지에 옮겨 심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역별 기후 편차가 크고 토양 조건도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현장에서 다시 처음부터 배우는 기분이었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몽골은 여름이 짧고 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벼가 충분히 자라기도 전에 생육이 멈추기 쉽다. 알칼리성 토양 비중이 높아 영양분 흡수가 잘 되지 않았다. 짧은 생육 기간을 보완하기 위해 육묘(모내기 전 벼를 미리 키우는 단계) 기간을 40일 이상으로 늘려 초기 생육을 최대한 안정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또 알칼리성 토양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산성비료 중심으로 시비(작물이 잘 자라도록 비료를 주는 작업) 체계를 조정하고 모를 옮겨심기 전에 산성 토양개량제를 투입해 토양 환경을 개선했다.
시험재배장을 오가는 길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고.
센터가 있는 울란바타르에서 시험재배지까지 직선거리만 약 1200㎞다. 실제 차량 이동거리는 약 1800㎞ 정도 된다. 시험재배지에서 벼에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 현지 담당자가 먼저 사진을 찍어 보내고 응급조치를 한 후 내가 직접 현장으로 이동해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병해 여부부터 수온, 토양 상태, 생육 상황까지 현장에서 다시 하나하나 점검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쉽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농업기술을 몽골에 뿌리내린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이 원동력이 됐다.
재배에 성공한 진부올벼는 어떤 품종인가.
1990년대 초 개발된 벼 품종이다. 강원도 같은 고랭지나 서늘한 지역에서도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육성됐다. 특히 저온 환경에서도 생육이 안정적이고 출수 시기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몽골은 봄철 저온, 이른 가을 냉해 때문에 재배 가능 기간이 짧은데 진부올벼는 생육 기간이 110일 안팎으로 짧아 빠른 수확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재배 성공 후 현지 반응은 어땠나.
몽골의 한 유명 유튜버가 한국 농업기술을 활용한 벼 재배 성공 소식을 영상으로 소개했다. 해당 영상과 영상 속 댓글을 확인했는데 ‘한국과 농업기술 협력을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K-농업기술에 대한 몽골 정부의 관심도 매우 높다. 몽골 대통령도 직접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우리나라 벼 재배 기술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한국인의 쌀 사랑만큼이나 우리 벼 품종 개발 기술과 품질 경쟁력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다양한 기후와 재배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수백 개의 벼 품종을 개발·보급해왔다. 세계적인 벼 연구기관 국제미작연구소(IRRI)와 협력도 활발하다. 농촌진흥청 연구진 등을 파견해 공동 연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에도 우리 벼 재배 기술이 적용된 사례가 있나.
KOPIA 우즈베키스탄센터는 현지 벼 생산성과 자급률 향상을 위해 2024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총 50억 원 규모의 다수성 벼 종자 생산·보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도 KOPIA와 협력해 ‘벼 우량종자 증식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등 사업 확대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7월에는 타슈켄트의 벼 연구기관에 농촌진흥청이 약 23만 달러(약 3억 1600만 원) 규모의 농기계를 지원하기도 했다. 단순 기술이전을 넘어 현지 농업 전문가를 육성하고 자립 기반을 만드는 방향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에 K-농업기술을 수출할 때 ‘패키지화’를 강조한다고.
단순히 품종만 보급해서는 안 된다. 관개시스템, 농기계, 스마트농업 기술, 저장·가공·유통체계까지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몽골과 중앙아시아는 기후 특성상 저장기술과 생산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한국이 보유한 정밀농업 기술과 시설농업 경험은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다만 단기간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품종 개발부터 재배, 수확 이후 관리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형 협력 모델로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몽골 진출을 꿈꾸는 우리 기업에도 의미가 클 것 같다.
KOPIA 사업은 단순한 원조 사업이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농업 기반을 안정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새로운 시장 진출로도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몽골 내 농업 생산이 확대되면 유통망 구축 같은 후속 과제도 중요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핵심 협력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몽골 정부와 계속 긴밀히 협의해나가고 싶다.
백재호 기자
농촌진흥청 KOPIA는?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Korea Partnership for Innovation of Agriculture)은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는 국제협력 플랫폼으로, 개발도상국의 환경과 수요에 맞는 농업기술을 보급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재 아시아(네팔·라오스·몽골·베트남·스리랑카·파키스탄), 아프리카(가나·감비아·기니·세네갈·에티오피아·우간다·짐바브웨·카메룬·케냐), 중남미(과테말라·니카라과·도미니카공화국·에콰도르), CIS(독립국가연합)지역(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주요 협력국에 센터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각 센터는 벼·채소·축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범사업과 기술이전 사업을 추진하며 현지 농업 생산성 향상과 농촌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