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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따라 백제의 시간 속을 걷다

충남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 왕릉원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백제유적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격년제로 선정해 알리는 ‘한국관광 100선’에 7회 연속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역사 탐방 필수 코스다. 금강을 따라 펼쳐진 옛 산성,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압도적인 왕릉원은 단언컨대 열두 달 중 신록으로 덮여가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 중흥기의 고도(古都) ‘웅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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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 왕릉원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백제유적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격년제로 선정해 알리는 ‘한국관광 100선’에 7회 연속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역사 탐방 필수 코스다. 금강을 따라 펼쳐진 옛 산성,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압도적인 왕릉원은 단언컨대 열두 달 중 신록으로 덮여가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 중흥기의 고도(古都) ‘웅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 웅진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660년 멸망까지 678년간 이어진 고대국가다. ‘잃어버린 왕국’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백제는 일찍이 수도였던 한성(서울)을 중심으로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하며 선진 문화를 받아들인 ‘글로벌 국가’였고 두 번의 천도(遷都)를 거치면서도 수준 높은 고유 문화를 꽃피워낸 문화 강국이었다. 특히 무령왕으로 대표되는 웅진 시기는 백제 중흥기의 시작점으로 꼽힌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공주 공산성’(이하 공산성)이다. 공산성은 고구려에 밀려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 문주왕이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산봉우리와 계곡을 따라 성벽을 쌓은 구조로 금강과 어우러진 모습이 천연 요새를 연상시킨다. 여러 차례 보수와 개축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는데 처음엔 ‘웅진성’이라고 했다가 고려시대 이후에 공산성이라고 불렸다.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도 불렸다.

공산성의 진짜 매력은 성곽길이다. 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과 계곡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백제의 시간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웅진시기(475~538) 축조된 공산성은 성벽 길이만 약 2660m에 달한다. 문주왕부터 성왕 시기까지는 백제의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했고 이후에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입구(입장료 3000원)에서부터 성곽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한 바퀴 도는 데 1~2시간 걸린다. 초반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평탄한 흙길이 나타난다. 특히 북쪽 구간은 금강과 맞닿아 있어 전망이 좋다.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걸으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는다. 금강이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방향에 따라 산성 아랫마을이 발아래 걸리기도 한다. 금강은 지금의 공주 시민뿐 아니라 백제인에게도 젖줄이자 생명수였고 백제의 부흥과 패망을 가져온 역사의 물길이기도 하다.

성 안에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왕궁 터와 연지 등 유적이 남아 있다. 연지 북쪽에는 기둥만 있던 ‘만하루’를 복원해 놓았다. 성곽 전체를 둘러보기 부담스럽다면 성곽길과 연결된 오솔길을 통해 일부 구간만 걸어도 좋다. 성곽길을 둘러보고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공주 ‘산성시장’과 만난다.

무령왕릉과 왕릉원, 백제 중흥의 흔적
475년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자 웅진 천도를 단행했다. 이후 즉위한 무령왕은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을 이뤄내며 백제 부흥의 기반을 다졌다. 스스로 ‘갱위강국(更爲强國)’을 선포할 만큼 국력을 회복했던 시기다.

그 흔적은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무덤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무령왕릉의 발견 과정에 얽힌 이야기는 유명하다. 1971년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도중 한 인부의 삽자루 끝에 단단한 물체가 닿아 파내다 보니 가지런히 쌓인 벽돌들이 드러났다. 고분군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후 발굴 작업을 거쳐 백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4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무령왕릉 전시관에 들어서면 실물 크기의 아치형 왕릉을 비롯해 발굴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전시물, 대표 출토 유물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무덤 앞을 지키던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는 무령왕릉의 마스코트와 같다. 출토 유물을 통해 구척장신이었다고 알려진 무령왕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무령왕릉 전시관을 나와 송산리 고분군 입구에 있는 ‘웅진백제역사관’으로 향하면 무령왕의 생애와 백제 문화가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미디어아트, AR증강현실 전시를 활용해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구현해 놓아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열공’하는 분위기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만나는 백제의 미학
무령왕릉에서 이어지는 오솔길 끝에는 ‘국립공주박물관’이 자리한다. 박물관 내 ‘웅진백제실’은 무령왕의 생애와 웅진시대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무덤의 주인공이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임을 알려주는 지석, 진묘수, 관꾸미개 등 대표 유물은 물론 왕릉 내부 구조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전시 공간도 인상적이다. 관람객이 직접 무령왕릉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38㎝ 크기의 ‘금동신발’이다. 박물관은 이를 ‘영혼을 위한 백제의 마지막 신발’이라 소개한다. 머리를 받쳤던 베개와 발받침, 다양한 부장품도 함께 전시돼 있어 당시 백제 문화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전시실을 지나 마지막 공간에 이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백제의 미학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던 백제 문화의 정수가 유물 곳곳에 스며 있다.

해가 지고 유적마다 은은한 조명이 켜지면 공주의 밤은 또 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오래전 사라진 왕국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고도 곳곳에서 백제의 시간이 이어진다.

박근희 객원기자

가까이 있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서동공원과 궁남지
백제 역사 탐방은 부여 백제유적 코스까지 이어진다. 백제시대 연못인 궁남지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중 하나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의 유적인 궁남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정원이다.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에 만들었다고 해서 ‘궁남지’라 불려오고 있다. 못 가운데 신선사상을 표현한 섬이 화룡점정처럼 자리한다. 연꽃이 만발하는 7월에 ‘서동연꽃축제’에 맞춰 카누 체험 등을 해볼 수 있어 이색 여행지로도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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