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마곡동 ‘크리에이터미디어 콤플렉스’의 호리존 스튜디오. 천장과 벽, 바닥이 모두 새하얀 이 공간에서 한 여성이 스탠딩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카메라를 잡은 다른 한 명은 촬영 각도를 달리하며 이를 촬영했다. 조명과 소품 배치를 조금 바꾸자 같은 공간인데도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다.
바닥과 벽을 곡선으로 이어 경계를 없앤 호리존 스튜디오는 공간이 확장된 느낌을 줘 인물·제품 촬영 등에 자주 활용된다. 이곳을 찾는 크리에이터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건 규모와 가격이다. 일반 대여 스튜디오보다 넓고 시설 수준은 높은데 이용료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곳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한국전파진흥협회가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운영하는 새싹기업(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크리에이터에게 콘텐츠 제작 및 라이브 방송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대여해주는 건 물론 입주사에는 사무실,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 오픈 스튜디오와 중형 스튜디오 4개, 모션캡처 및 가상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유닛 스튜디오 2개를 갖추고 각종 장비 대여와 교육을 무료로 제공한다.
2021년 서울역 인근에서 시작해 2026년 마곡 시대를 열었다. 명칭도 ‘1인 미디어 콤플렉스’에서 ‘크리에이터미디어 콤플렉스’로 바꿨다. 개인 방송 지원을 넘어 콘텐츠 산업 전반을 키우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입주사를 위한 사무공간도 34개에서 40개로 확대했다.
특수 스튜디오에 고가 장비까지
현장을 찾았을 때 내부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복도를 따라 ‘ㄱ’자 형태로 배치된 스튜디오 사이에는 장비 대여와 기술 상담을 맡고 있는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공간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중형 규모인 1번 스튜디오는 우드톤의 차분한 느낌이었고 2번 스튜디오는 밝은 자연 채광이 돋보였다. 흰색 커튼을 활용해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었다. 한국전파진흥협회 배정연 대리는 ”최근에는 출연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형 콘텐츠 수요가 많아 1, 2번 스튜디오는 예약이 거의 꽉 찬다“고 말했다.
각 스튜디오에는 카메라와 삼각대, 조명장비가 기본으로 갖춰져 있었다. 수십만 원대 패널 조명부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장비도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촬영본을 저장할 SD카드만 챙겨오면 개인 장비 없이도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
장비 사용법을 몰라도 문제없다. 현장에 영상 전문가가 상주해 촬영 전후 코칭을 제공한다. 한 스태프는 ”사설 스튜디오는 공간만 빌려주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전문가 도움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특수 스튜디오도 눈길을 끌었다. 유닛 스튜디오 두 곳은 각각 모션캡처 기능과 가상으로 스튜디오를 세팅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애니메이션 제작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모션캡처 기능은 사람의 움직임을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한다. 가상 스튜디오는 배경을 자동으로 만들어준다. 예전처럼 크로마키 배경 스크린을 설치한 뒤 합성 작업을 하지 않아도 이용자는 원하는 배경을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다.
주방 시설을 갖춘 쿠킹 스튜디오도 있다. 오븐, 전자레인지, 밥솥은 물론 각종 조리도구까지 일반 가정집 못지않게 갖춰져 있다. 벽면의 인테리어를 다르게 구성해 카메라 방향만 돌리면 전혀 다른 공간처럼 연출할 수 있도록 한 점도 흥미로웠다.
30여 명 수용 가능한 오픈 스튜디오도
크리에이터미디어 콤플렉스는 마곡으로 이전하며 중형 스튜디오를 늘렸다. 이용자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배 대리는 ”예전에는 10평(33㎡) 안팎의 작은 스튜디오가 많았는데 ‘작은 촬영은 집에서도 가능하니 중형 공간을 늘려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아 비중을 늘렸다“고 말했다.
모든 스튜디오는 반일 또는 전일제로 대여할 수 있다. 반일제는 두 타임으로 나뉜다. 전일제(오전 10시~오후 9시) 이용료는 5만 5000원부터 22만 원이다. 반일제(오전 10시~오후 3시, 오후 4~9시) 이용료는 전일제의 절반 수준이다. 가장 큰 오픈 스튜디오는 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약 40평(132㎡) 정도다. 강연, 팬미팅, 공개방송 등 다양한 행사가 가능하다. 스튜디오 예약은 크리에이터미디어 콤플렉스 누리집(meplex.co.kr)에서 할 수 있으며 입주사가 아니더라도 사설 스튜디오 이용료의 절반 수준으로 대여할 수 있다.
입주 기업에 대한 지원은 더 파격적이다. 입주사는 스튜디오 무료 이용 쿠폰 80장을 제공받는다. 또 일반 이용자는 한 달치만 예약을 할 수 있는 반면 입주사는 두 달치 예약을 미리 할 수 있다.
사무실 임대료도 시세보다 저렴하다. 사무실 유형은 세 가지로 각각 최대 4~12인까지 쓸 수 있다. 임대료는 관리비 포함 월 11만 원에서 44만 원이다.
2025년 입주한 콘텐츠 기업 ‘애니멀라운지’의 이민영 대표는 ”예전에는 서울 마포에서 비슷한 규모의 사무실을 월 200만 원 정도에 사용했는데 지금은 44만 원 수준“이라며 ”임대료와 스튜디오 대여비를 모두 합치면 연간 3000만~4000만 원 정도는 절감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비를 들고 이동할 필요가 없어서 콘텐츠 제작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법률적 지원이나 각종 지원사업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해외 진출·투자 유치 관련 컨설팅도
입주 기업에는 해외 진출과 투자 유치 관련 컨설팅도 제공된다. 실제로 2023년에는 국내 금융사와 협력해 3개 기업의 투자 유치를 지원했다. 한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최초로 엔비디아 등에서 153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트웰브랩스’도 1기 입주 기업이다. 배 대리는 ”사업 초기 인프라 지원과 각종 사업 연계를 통해 트웰브랩스의 성장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기준 이곳 스튜디오와 시설 누적 이용자는 1만 6666명. 지금까지 총 92개 스타트업이 입주 지원을 받았다. 입주 기업이 거둔 누적 매출은 약 613억 원, 국내외 투자 유치 규모는 1578억 원에 달한다. 신규 고용 인원도 280명을 넘어섰다.
크리에이터미디어 콤플렉스는 매년 상·하반기에 입주사를 모집한다. 지원 대상은 크리에이터미디어를 기반으로 타 사업과 결합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창업 5년 이내 스타트업 등이다. 입주 기간은 최대 2년. 경쟁률은 평균 3대 1에서 5대 1 수준이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장비와 공간 확보가 절실한 만큼 입주 기간 연장을 문의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입주사 선정은 끝났고 하반기 모집은 7~8월 중 진행할 예정이다.
고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