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5월 19일 경북 안동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를 비롯한 핵심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양국은 물론 한미일·한중일 협력의 중요성에도 공감대를 이뤘다.
이번 회담은 올해 1월 이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일본 나라현을 방문한 지 약 4개월 만에 이뤄졌다. 이번에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을 찾으면서 사상 처음으로 한일 정상 간 상호 고향 방문을 통한 셔틀외교가 성사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안동을 찾은 다카이치 총리를 직접 영접하며 국빈에 준하는 예우로 맞이했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도 올해 1월 일본 나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당시 이 대통령의 숙소를 깜짝 방문해 영접한 바 있다. 43명으로 구성된 전통의장대와 29명의 군악대가 다카이치 총리의 차량을 호위했고 호텔 현관에는 12명의 기수단이 도열했다. 이 대통령은 하늘색 넥타이를 맸다. 청와대는 ”다카이치 총리가 자주 입는 푸른색 계열의 타이를 착용해 존중과 신뢰의 의미까지 담았다“고 말했다.
회담이 열리는 호텔 입구에 나와 다카이치 총리를 영접한 이 대통령은 ”이 시골 소도시까지 오시느라고 너무 고생하셨다. 제가 어젯밤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인사를 건넸다. 다카이치 총리도 밝은 웃음으로 이 대통령에게 화답했고 양 정상은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한일, 공급망 협력 확대
정상회담은 33분간의 소인수회담과 72분간의 확대회담 순서로 진행됐다. 양국 정상은 회담 직후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공급망·에너지 안보 협력 확대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 대통령은 먼저 ”한일 양국 정상이 서로의 고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며 ”불과 4개월 만에 이뤄진 이 뜻깊은 교류는 양국의 우정과 유대가 그만큼 두텁고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나라현과 안동, 서로의 고향에서 시차를 두지 않는 셔틀외교를 실시함으로써 이 대통령님과의 제 우정과 신뢰가 더욱 깊어진 것을 느낀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그간의 셔틀외교를 통해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다양한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며 ”특히 최근 중동 상황에서 비롯된 공급망과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해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지난 3월 체결된 ‘한일 공급망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한층 더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가 한일 양국의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공급망 위기를 겪고 있는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원 공급망 협력까지 심화해 나갈 것을 제안했고 이 대통령이 이에 적극적인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핵심 에너지원인 LNG와 원유 분야의 안보 협력도 언급됐다. 양국은 3월 체결된 ‘LNG 수급협력 협약서’에 기반해 협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원유 수급 및 비축과 관련한 정보 공유와 소통채널을 더욱 깊이 있게 운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다카이치 총리도 ”핵심광물을 포함한 공급망 협력은 중요하다“며 ”원유·석유 제품 및 LNG 상호 융통, 스와프 거래를 포함한 양국의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협력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유 스와프는 공급 위기 시 비축분이 있는 국가가 비축유를 빌려주고 나중에 원유로 돌려받는 협력체계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산업통상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유·석유제품 스와프 및 상호 공급과 관련한 민관 대화를 장려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및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일 그리고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최초로 차관급으로 격상돼 개최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1997년 시작된 한일 안보정책협의회는 국장급 기구로 양국 관계에 따라 중단·재개가 반복돼 왔다. 국민주권정부 들어 셔틀외교가 복원되면서 차관급 회의체로 격상됐다. 이어 ”동북아 지역이 경제·안보 등 여러 측면에서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만큼 역내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며 공통의 이익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양국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며 ”저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하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구축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조세이탄광 유해 감정 ‘첫발’
아울러 양국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호혜적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AI 기본사회’를 함께 선도해 나가기로 했다. 우주 탐사와 바이오 등 첨단기술 협력도 심도 있게 다뤘다. 양국 정상은 또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 경찰청 간에 체결된 ‘초국가 스캠범죄 공동 대응 협력각서’를 언급하며 ”수사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양국 국민을 범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와 함께 AI 시대의 개인정보보호 협력에 대해서도 논의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일본 조세이탄광에서 발굴된 유해의 DNA 감정이 곧 시작된다“며 ”양국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 인도주의적 사안부터 협력해 나가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저 탄광에서 발생한 갱도 붕괴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광부 183명이 사망한 사고다. 앞서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월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조세이탄광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양국 정부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이어 ”한일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며 ”양국이 함께 번영하고 국민이 그 혜택을 피부로 느끼는 ‘국민체감형’ 협력 방안을 끊임없이 창출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끝으로 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한일 셔틀외교의 ‘완전한 정착’을 보여주는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 회담을 포함해 저와 다카이치 총리님은 지난 7개월 동안 무려 네 차례나 함께했다“며 ”양국의 정상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필요할 때 만나 소통하는 셔틀외교가 완전히 정착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6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며 ”머지않은 시기에 일본의 또 다른 아름다운 지역에서 총리님을 다시 뵙고 진솔한 소통을 이어가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오늘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그리고 일한 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협력의 저변을 넓혀나가기 위해 모든 차원에서 계속 긴밀히 의사소통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정미 기자 한일 정상 만찬
‘수운잡방’ 재해석한 퓨전 한식 놓고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 되길“
이재명 대통령은 5월 19일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만찬을 함께하며 친교를 나눴다. 안동 한옥호텔 락고재에서 한 시간 넘게 이어진 만찬에서는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이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고향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맞이해 더욱 뜻깊다“며 ”다카이치 총리 재임 이후 약 7개월 동안 네 차례 만나면서 인연도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1월 이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일본 나라현을 방문했을 당시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드럼 연주를 가르쳐준 일을 언급하며 격의 없는 소통과 교감이 양국 관계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양국이 ‘가깝고도 먼 이웃’이 아니라 유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하는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바란다“며 ”오늘 만찬이 양국 교류와 우호 협력을 더욱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거리에서 환영해준 안동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시내 곳곳에 걸린 선거 현수막이 일본보다 큰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음 셔틀외교는 일본의 지방 온천 도시에서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이 대통령은 ”온천에 가겠다고 말씀드리면 바로 추진되는 것이냐“고 화답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만찬상에는 안동 지역 종가의 고조리서이자 보물인 ‘수운잡방’의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퓨전 한식이 올랐다. 주요 메뉴는 안동찜닭의 원형인 ‘전계아’와 안동 한우 갈비구이 등이다. 만찬주로는 양국의 화합과 우정을 상징해 안동 전통주인 태사주·안동소주와 일본 나라현의 사케를 함께 준비했다.
이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를 위해 고춧가루를 모두 뺀 음식으로 준비했다“면서 ”안동은 내륙이라 옛날부터 생물 식재료가 귀했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내일 국회 일정이 있어 술을 마셔야 할지 매우 고민했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제가 전화해서 하루 더 머무를 수 있도록 해볼까요?“라고 농담을 건네며 편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한국의 석유 최고가격제와 소비쿠폰 정책에도 큰 관심을 보이며 지급 방식과 범위에 대해 직접 묻기도 했다.
선물에 담긴 한일 관계 안경테 선물한 다카이치 총리,
이 대통령 안경 쓰고 ‘찰칵’
이재명 대통령은 경북 안동을 찾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지역의 전통 문화와 한일 우호의 의미를 담은 특별한 선물을 전달했다. 선물 하나하나에는 양국 관계의 지속과 화합을 바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이 대통령은 5월 19일 정상회담을 위해 안동을 방문한 다카이치 총리에게 안동 하회탈 목조각 액자, 조선통신사 세트, 달항아리 백자 액자 등을 선물했다.
하회탈 9종으로 구성된 목조각 액자에는 서로 다른 표정의 탈처럼 차이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자는 의미를 담았다. 청와대는 ”양국의 화합을 상징하고 양국 우호 관계 발전을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조선통신사 세트에는 한지로 만든 가죽가방과 홍삼이 포함됐다. 한지는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해졌던 대표 교류 품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오랜 시간 이어져온 유대를 되새기고 앞으로도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미다.
백자 액자에는 양국에서 소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달’을 형상화한 달항아리를 통해 우호 관계를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다카이치 총리 배우자에게는 조선통신사 세트와 함께 눈꽃 기명(그릇) 세트가 전달됐다. 아연 유약과 은을 활용해 눈꽃 결정이 피어난 듯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배우자의 고향인 일본 후쿠이현의 정취를 떠올리게 했다.
국가무형유산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 측에서는 안동포 홑이불을 선물했다. 삼베는 양국에서 ‘정성과 안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안동하회마을 종친회 측은 미니 장승 세트를 준비했다. 장승은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우는 목상 또는 석상으로 민간신앙에서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양국 정상의 역할과 맞닿아 있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일본 유명 안경 생산지인 후쿠이현 사바에 지역의 안경테를 선물했다. 일본 내각 공보실 누리소통망(SNS)에 공개된 사진에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 대통령의 안경을 양손으로 받쳐 쓴 채 웃는 모습이 공개됐다.
일본 측은 ”언제나 안경을 쓰고 있는 이 대통령에게 다카이치 총리가 사바에의 안경테를 선물했고, 이 대통령이 직접 써보던 사이 총리가 그의 안경을 재빨리 빌려 ‘찰칵’“이라고 전했다.
한일 정상 친교 행사 이 대통령 ”세계적 관광지 되겠다“
다카이치 총리 ”이렇게 아름다운 불꽃놀이 난생처음“
5월 19일 정상회담과 만찬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경북 안동의 밤 풍경 속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격의 없는 친교를 이어갔다. 두 정상은 낙동강 위로 펼쳐지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양국의 우정과 한일 관계의 미래를 기원했다.
두 정상은 이날 저녁 8시께 안동 하회마을 나루터로 이동해 전통 불꽃놀이인 ‘선유줄불놀이’와 창작 판소리 공연 ‘흩어지는 불꽃처럼’을 감상했다. 선유줄불놀이는 부용대 절벽 꼭대기에서 낙동강을 가로질러 밧줄을 연결한 뒤 수백 개의 숯불 주머니에 불을 붙여 불꽃이 강 위로 흩날리도록 연출하는 안동의 대표 전통 풍류 문화다.
양국 관계 발전을 기원하는 뜻을 담은 ”낙화야“라는 외침이 울리자 줄을 타고 붉은 불꽃이 흩어지며 강물 위로 환상적인 장관이 펼쳐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이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의 감상을 위해 현장 조명을 끄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총리님 덕분에 이 동네가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됐다“고 말했고 다카이치 총리는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봤다“며 ”판소리도 정말 훌륭했다“고 화답했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