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여행가는 달'을 맞아 전국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3만 원에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약 시작과 동시에 접속자가 몰리며 서버가 일시적으로 다운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필자 역시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어렵사리 예약에 성공했다.
'마음이 쉬어가는 곳 템플스테이' 안내판이 세워진 선암사 템플스테이 공간 (본인 촬영)
지난 5월 6일부터 7일까지 1박 2일 동안 부산의 선암사에서 체험형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산사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에 가까웠다.
◆ 첫째 날, 새소리와 종소리 속에서 돌아본 마음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선암사로 향하는 길목에 연등이 걸려 있다. (본인 촬영)
선암사로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것은 형형색색의 연등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사찰 입구부터 길목 곳곳까지 연등이 이어져 있었다. 산사의 고요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연등 풍경을 대하면서 벌써 마음이 차분해졌다.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는 템플스테이 참여자들 (본인 촬영)
템플스테이는 사찰 예절 교육과 도량 안내로 시작됐다. 참여자들은 합장하는 법과 절하는 방법, 공양 예절 등 사찰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배웠다. 절에서는 신발을 가지런히 두는 일부터 식사 후 각자 그릇에 물을 부어 마무리하는 공양 문화까지 일상의 작은 행동에도 수행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연등이 걸린 대웅전 앞에서 사찰 안내를 하고 있는 스님 (본인 촬영)
도량 안내 시간에는 대웅전과 종각 등 수행 공간을 둘러봤다. 산사 곳곳을 걸으며 설명을 듣자, 이곳이 그동안 다녀왔던 관광지가 아니라 수행 공간으로서의 사찰이 새롭게 느껴졌다.
맨발 황톳길 걷기 명상도 진행됐다. 선암사가 자리한 백양산 자락에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 조성돼 있다. 스님을 따라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서 도시의 소음 대신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참여자 모두 휴대전화를 멀리 한 채 저마다의 보폭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천천히 걷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대웅전에서 108배를 하고 있는 템플스테이 참여자들 (본인 촬영)
저녁 공양 이후에는 타종 체험과 저녁 예불이 이어졌다. 범종 앞에 섰을 때 묵직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스님이 시범을 보여준 뒤 참여자가 체험하는 식이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종을 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종채를 뒤로 당겼다가 힘껏 밀어 종을 울리자 깊고 긴 종소리가 울림을 주면서 산사에 퍼졌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범종을 치고 있는 필자의 모습, 눈으로 보는 것보다 타종 체험이 어려웠다. (본인 촬영)
스님은 범종과 목어, 운판, 법고 등 사찰의 사물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며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집착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해 욕망에 매달리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대웅전에서 진행된 저녁 예불도 인상적이었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염불을 읊자, 참여자들은 불경의 구절을 따라 읽다가 108배를 했다. 불상이 내려다보는 대웅전 안은 엄숙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였다.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여자에게 108배가 익숙하지 않았어도 스님의 안내에 따라 조용히 예불에 참여했다.
저녁 예불 시간에 스님의 염불을 따라서 참여자들이 다 같이 읽었던 반야심경 (본인 촬영)
저녁 마지막 프로그램은 단주 만들기와 절 수행이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름표를 앞에 두고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염주를 한 알씩 꿰었다. 스님은 "지금 절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자기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 수행을 하며 염주를 한 알씩 꿰고 있는 참여자들 (본인 촬영)
절 수행 시간에는 108배가 이어졌다. 108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무념무상에 가까운 상태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반복해서 절을 하며 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복잡했던 생각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졌다. 이런 게 명상이자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염주 한 알 한 알에 자신의 마음을 담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어둑해진 밤, 선암사 경내 형형색색의 연등이 켜져 있어서 어둠을 밝히고 있다. (본인 촬영)
저녁 예불이 끝난 뒤 산사는 더욱 고요해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찰에는 은은한 조명과 연등 불빛만 남아 있었다. 도시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적막함이었다. 잠시 경내를 산책하면서 낮 시간의 분주함을 내려두고 밤 시간의 여유를 만끽했다.
◆ 둘째 날, 차담에서 배운 '천천히 살아가는 법'
2일 차 새벽 예불과 새벽 명상은 자율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기보다 산사의 새벽 공기를 천천히 느끼며 쉬어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산사는 전날과 또 다른 분위기였다. 밤사이 맺힌 물기가 남아 있었고 숲에서는 새소리가 이어졌다. 부산이라고 하면 바다를 먼저 떠올렸는데, 백양산 자락의 선암사는 도심 속 산사의 매력을 느끼게 했다.
백양산 자락에 자리한 선암사는 대웅전 위쪽으로도 여러 사찰이 있다. (본인 촬영)
오전에는 다시 맨발 황톳길을 걸으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백양산 애진봉 일대를 천천히 걸으며 포행 시간을 보냈다. 포행은 걸으며 수행하는 불교 수행법 가운데 하나다. 숲길을 따라서 걷다 보니 자연에 가까워지면서 생각도 자연스럽게 단순해졌다.
둘째 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시간은 차담이었다. 스님은 차를 마시는 시간을 단순한 음용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연결해 설명했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잔에 차를 따르며 차담을 즐기고 있다. (본인 촬영)
스님은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처럼 예전 사람들에게 밥을 먹듯이 차를 마시는 게 일상이었다. 차를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색하는 문화가 삶의 여유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절에서는 음식이나 차를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가 마실 만큼만 따르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차를 마시면서 일상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차담 시간은 조용했지만 따뜻했다. 참여자들은 차를 마시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 참여자가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조급함과 압박감에 관해 묻자, 스님은 "실제로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가공된 불행일 수도 있다"라며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템플스테이를 마친 뒤 작성한 소감문에는 "붓다의 마음으로 지내본 시간"이라고 적었다.
"선암사로 오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디며 산사의 기운을 느꼈다. 1박 2일의 템플스테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들으며 수행자로서의 삶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삶의 깨달음을 주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탐욕과 집착에 매몰돼 나 자신을 괴롭힐 때면 붓다의 마음을 일상에서 되새겨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적었다.
빠르게 움직이고 많은 것을 소비하는 여행과 달리 템플스테이는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행이었다. 산사에서의 1박 2일은 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자기 객관화"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던 도웅 스님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부처의 깨달음을 단순히 '자기 객관화'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부처님은 연기법, 즉 모든 존재가 인연에 의해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깨달으신 것입니다. 다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을 줄이고 불교를 쉽게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자기 객관화와 자아 탐구를 이야기합니다"라고 말했다.
스님과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차담을 나누고 있다. (본인 촬영)
스님은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고통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자기 입장에만 매몰되면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고 결국 갈등이 생길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현대인들이 템플스테이를 찾는 이유에 대해서는 "경쟁 사회 속에서 잠시라도 자신을 꺼내놓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나친 비교와 물질 중심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온전한 휴식을 경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불교에 관심이 없더라도 자연 속에서 쉬고 힐링하고 싶은 마음으로 템플스테이를 찾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템플스테이는 정부 지원 사업인 만큼 종교를 떠나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연환경이 좋은 사찰에서 경제적 부담 없이 뜻깊은 휴식을 경험해 보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 "불교 인문의 느낌이었다"
이번 템플스테이에는 혼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부산 사하구에서 왔다는 20대 취업 준비생 김지영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김 씨는 "5월 여행가는 달 행사로 템플스테이를 알게 됐는데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어요. 계속 누리집을 들락날락하다가 취소표가 떠서 어렵게 예약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숙박과 식사, 체험까지 포함된 프로그램을 3만 원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쉬면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템플스테이를 추천합니다"라고 말했다.
1박 2일을 보내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그램으로는 저녁 예불 시간을 꼽았다. 김 씨는 "대웅전에 들어가 함께 예불을 드릴 때 '정말 절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어요. 종 치는 체험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백양산 자락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있는 템플스테이 참여자 (본인 촬영)
특히 자율 프로그램이었던 둘째 날의 산책 시간에 대해 "처음에는 함께 이동하는 프로그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긴 시간을 걸으면서 오히려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생각할 시간도 많아져서 좋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템플스테이를 한 줄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는 "불교 인문의 느낌이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이번에는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했지만, 다음에는 휴식형이나 참선 중심 프로그램도 참여해 보고 싶어요. 여행가는 달 같은 혜택이 연중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널리 알려져, 미리 정보를 더 쉽게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백양산 자락에 자리한 선암사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 (본인 촬영)
5월 24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전국 사찰마다 연등이 걸리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연등 문화는 '연등회'라는 이름으로 지난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스님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부처님 오신 날 하루쯤은 가까운 산사를 찾아 절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찰을 둘러보고 연등도 구경하고 또 산사에서 쉬어가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
템플스테이는 단순한 숙박 체험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속도를 늦춰보는 여행에 가까웠다. 여행가는 달을 맞아 경험한 선암사에서의 1박 2일은 '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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