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전 세계의 이목이 경북 안동으로 향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점으로 양국 정상 간 소통과 신뢰가 한층 긴밀해진 가운데, 올해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을 찾는다. 올해 초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 나라현 방문에 이어 이번 답방으로 한일 외교 사상 처음으로 '정상 간 상호 고향 교차 방문'이 실현되는 만큼, 두 정상의 만남을 맞이하는 안동의 의미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안동 시내 진입 도로변에 설치된 이재명 대통령 고향 방문 환영 현수막 (본인 촬영)
안동 시내 가로등 사이에 걸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방한 환영 현수막 (본인 촬영)
회담을 앞둔 주말, 현장에서 바라본 안동 시내는 축제 직전의 설렘과 팽팽한 긴장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시내 곳곳과 주요 국도 변에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알리고 외빈을 환영하는 선명한 현수막들이 줄지어 펄럭였다. 안동은 선비의 고장답게 조용한 가운데서도 국가적 대사를 치르기 위한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알리는 전통적인 관문인 안동 도신문 전경 (본인 촬영)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알리는 전통적인 관문인 안동 문신문 주변과 시내 주요 교차로는 정비가 깔끔하게 완료되어 큰 외교 행사를 앞둔 도시의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도심 전역을 수놓은 환영의 물결 속에서, 도시의 공기는 고요함 속에서도 묘한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 "왜 안동인가"…서울 중심 외교 탈피한 '지역 중심 셔틀외교'의 힘
안동하회마을 주차장 초입에 내걸린 한일 정상회담 개최 축하 단체 현수막 (본인 촬영)
그동안 국제 정상회담이라고 하면 서울의 대형 호텔이나 화려한 컨벤션 센터(COEX)를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고층 빌딩 숲과 삼엄한 도심 통제가 정상외교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서울만 있는 게 아니다. 이번 회담은 경북 경주에서 출발해 일본 나라현으로, 그리고 다시 이곳 안동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궤적을 그리며 무대를 넓히고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시내를 벗어나면 곳곳에 고택이 많이 남아 있다. (본인 촬영)
서울 중심의 획일적인 외교 무대에서 벗어나 이처럼 지역으로 무대를 과감히 확장하는 것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다. 정부의 핵심 기조인 '지방시대'에 발맞춰, 각 지역이 수백 년간 품어온 고유한 역사와 문화 스토리를 국가 외교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는 '지역 주도형 글로컬 외교'의 본격적인 서막이다. 안동은 지금, 가장 한국적이고도 깊은 유산이 어떻게 글로벌 외교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동아시아 문화도시'이자 '글로벌 축제'의 도시, 안동
이번 정상회담 무대가 된 안동은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이자 전통문화 유산의 깊이가 남다른 도시다. 안동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202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이자, 한국 전통 예술의 정수인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2026년 글로벌 축제'로 선정된 문화예술의 중심지다.
'202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안동에서 축제가 열렸다. (본인 촬영)
한·중·일 3국의 문화 교류를 이끌어갈 대표 도시로 공인받은 만큼, 이번 일본 총리의 방한은 안동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를 동아시아 전역과 세계 시장에 알릴 타이밍이다. 과거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은 하회마을을 세계적인 명소로 각인시켰고, 이는 훗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위대한 결실의 든든한 바탕이 됐다.
'2026년 글로벌 축제'로 선정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홍보 간판 (본인 촬영)
27년이 흐른 지금 마주한 한일 정상회담은 안동의 전통 탈놀이와 유교 자산을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다시 한번 깊이 각인시킬 기회다. 외신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지금, 안동은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글로컬 K-문화도시'로 뻗어 나갈 추진력을 얻고 있다.
◆ 폭풍 전야의 긴장감, 지금 하회마을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신발을 벗고 안방에 들어서며 한국의 예법을 존중하고 감탄했던 그 '로열웨이(Royal Way)'.
이제 그 길 위에 동아시아의 평화와 상생 협력을 논할 양국 정상의 새로운 발자국이 더해진다. 필자는 안동에 머무르는 동안 여행지로 안동하회마을을 직접 찾았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하회마을은 철저한 보존을 위해 허가된 차량 외에는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인파 속에는 이미 한국의 전통문화를 찾아서 멀리 안동까지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입장권을 구매한 뒤 하회마을 진입 셔틀버스 탑승장으로 이동하는 관람객들의 행렬 (본인 촬영)
주말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인파로 활기가 가득한 하회 장터를 지나 셔틀버스를 타고 하회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하회마을은 마치 과거의 시간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 고풍스러운 정취를 뿜어내는 문루와 전통 가옥들로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안동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온전하게 보존된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하회마을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이 많았다. (본인 촬영)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세월의 깊이를 품은 고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고택을 한옥 스테이로 활용해 직접 머무를 수 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며 누리는 여유는 안동이 아니고선 마주하기 힘든 귀한 경험이다.
충효당 앞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 기념식수가 있다. (본인 촬영)
마을 안길을 따라 걷다 보니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 앞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과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방문 기념으로 심었던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뜻을 기려 이름 붙은 '로열웨이' 안내판이 있다.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돼 안동 고유의 유교 자산을 선보이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 (본인 촬영)
나지막한 담벼락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하회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 친환경 전동 카트를 타거나 호젓이 걸으며 고풍스러우면서 아담한 높이의 담장과 한옥의 조화를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미소가 가득했다.
골목길의 끝에 다다르자, 하회마을을 완만하게 감싸안고 흐르는 낙동강과 강 건너 우뚝 솟은 장엄한 절벽인 '부용대'가 눈앞에 아름다운 절경을 드러냈다. 강변의 만송정 숲이나 백사장 인근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부용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수백 년 전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을 옛 선비들의 여유가 시공을 초월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하회마을을 감싸안은 낙동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장엄한 부용대 절벽 경관 (본인 촬영)
이러한 정취를 품은 현장에서 만난 지역 상인들의 기대감 또한 남달랐다. 안동은 안동 간고등어, 안동찜닭, 안동소주 등 안동의 이름을 내세운 고유 브랜드가 많은 도시다.
하회 장터에서 만난 한 상인은 "하회마을은 평소에도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라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 많은 일본 사람이 몰려오면 안동 간고등어나 찜닭 같은 우리 지역 고유 브랜드도 세계에 알리고, 마을과 지역 상권이 예전보다 더 활기를 띠지 않겠느냐"라며 미소를 지었다.
안동의 고유 민생 브랜드를 대표하는 명물이자 하회 장터의 인기 먹거리인 안동 간고등어 (본인 촬영)
하회 장터 내 음식점 거리에서 판매 중인 안동의 또 다른 대표 특산 음식 안동찜닭 (본인 촬영)
이번 한일 정상회담 기간 동안 전 세계 외신에 안동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다채로운 지역 브랜드를 보존하고 있는 안동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유교 문화의 본고장 안동을 여행하다 마주한 전통 종갓집의 고즈넉한 제례 풍경 (본인 촬영)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안동이 가진 문화의 힘은 서울의 화려한 전시장보다 강력한 외교의 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유교 문화의 본고장으로서 수백 년간 한국의 정신적 뿌리를 지켜온 안동은, 이제 고유의 문화유산을 세계와 공유하는 어엿한 '글로컬 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맞이했던 경험이 있는 안동은 또 다른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안동의 주말을 지나, 이제 곧 펼쳐질 양국 정상의 만남이 양국 국민의 마음을 잇고 대한민국의 '지방'이 가진 가치를 세계에 증명하는 풍성한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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