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인생에서 버거운 시기는 한 번쯤 찾아온다. 나 역시 뒤늦게 커리어 전환을 준비하던 시기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던 적이 있었다.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해야 할 건 많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점점 줄어들던 시기였다.
그때,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중학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약속을 잡았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가볍게 웃고 떠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술자리가 이어질수록 친구의 감정은 점점 격해졌고, 평소와는 다른 말과 행동들이 이어졌다. 결국 친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차도로 뛰어드는 위험한 행동까지 보였다.
커리어 준비 시기 포트폴리오를 만들던 나 (본인 촬영)
그 순간을 마주하며, '우울'이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하게 됐다.
◆ 봄이 오면 왜 더 힘들어질까
스트레스와 폭식으로 15kg 쪘던 2022년의 봄 (본인 촬영)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3월부터 5월까지는 '자살 고위험시기'로 분류된다. 이 시기에는 단순한 계절 변화 이상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조량 변화, 미세먼지 증가, 기온 변화 같은 환경적인 요인에 더해 새 학기 시작, 졸업과 진로 고민, 취업 준비, 새로운 환경 적응 등 다양한 사회적 변화가 동시에 겹치면서 심리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따뜻해지고 활동이 많아지는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가장 버거운 시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변화가 많은 시기일수록 비교와 불안이 커지기 쉽고, 이 감정이 이어지면 우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 조용히 보내는 '위험 신호'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문제는 이런 위험이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변화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식사량이 급격히 줄거나 늘어나고, 수면 패턴이 무너진 상태가 지속되거나, 이유 없는 무기력감이 이어진다면 단순한 컨디션 문제로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
더 나아가 죽음과 관련된 콘텐츠에 과도하게 몰입하거나 "힘들다", "사라지고 싶다" 같은 표현이 잦아지고, 주변 정리를 하거나 물건을 나누는 행동까지 보인다면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신호는 관심을 끌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이미 많이 힘든 상태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긴 취업 준비 시기와 코로나 상황이 겹치면서 수면 패턴이 무너지고 무기력한 상태가 오래 이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실제로 상담을 고민할 만큼 힘든 시기였다. 특히 취업 준비생의 경우 경제적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이런 상태가 더 깊어질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 도움을 요청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문제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이후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힘든 상황에 놓여도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당시 친구 역시 술에 취한 뒤에는 "연락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미 그때는 알코올 의존과 우울 증상이 심해져 주변과의 관계가 거의 끊어진 상태였다.
나 역시 그날 친구를 보며 '왜 저렇게까지 힘들어졌을까'보다 '왜 아무도 몰랐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이유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진 뒤, 긴 취업 준비 생활을 견디며 뒤늦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 그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있다 도움받을 수 있는 곳 (본인 제작)
다행히 지금은 이전과 달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자살 예방 SNS 상담 '마들랜' 모바일 앱 캡처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시군구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언제든지 상담받을 수 있다. 전화가 부담스럽다면 문자나 온라인 상담도 가능하고, 익명성이 보장돼 심리적 부담도 적다. 이 외에도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1577-0199), 보건복지상담센터(129), 청소년 상담(1388) 등 상황에 맞는 다양한 지원이 마련돼 있다.
또한 우울감은 종종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서민금융콜센터(1397)나 신용회복위원회(1600-5500), 대한법률구조공단(132), 고용노동부 상담센터(1350) 등을 통해 생활·법률·고용 관련 상담도 함께 받을 수 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을 한 번 더 살피게 됐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순간들도 이제는 쉽게 넘기지 않게 됐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 한 가지는 할 수 있다. "요즘 괜찮아?"라는 한마디, 이유 없이 함께 있어 주는 시간, 가볍게라도 이어지는 연락 이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버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지나치지 않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힘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건 그 신호를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일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해 주는 것. 그것이 결국,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는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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