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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된 사랑, 누군가에겐 그것마저 아름답다

깔끔한 수트 차림의 중년 신사가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지배인과 웨이터가 익숙한 듯 그를 자리로 안내한다. 이내 흔하지 않은 장면이 펼쳐지는데 기대와 달리 신사는 혼자다. ‘혼밥’인 모양이다. 와인을 고르고 식사를 하는 내내 장갑을 끼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음식을 씹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결벽증이라도 있는 듯 무균질 식탁에 앉아 주변을 차단하고 있는 이, 누구일까. 미술품 감별사이자 경매사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시 분). 무표정에 온갖 완고함과 심드렁함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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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수트 차림의 중년 신사가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지배인과 웨이터가 익숙한 듯 그를 자리로 안내한다. 이내 흔하지 않은 장면이 펼쳐지는데 기대와 달리 신사는 혼자다. ‘혼밥’인 모양이다. 와인을 고르고 식사를 하는 내내 장갑을 끼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음식을 씹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결벽증이라도 있는 듯 무균질 식탁에 앉아 주변을 차단하고 있는 이, 누구일까. 미술품 감별사이자 경매사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시 분). 무표정에 온갖 완고함과 심드렁함이 담겨 있다.

버질은 이미 그 바닥에서 유명세를 지닌 인물이다. 매일 경매와 감정 일정이 빡빡하다. 영국 런던 경매장뿐 아니라 전국 또는 해외까지 출장을 다닌다. 미술 애호가이자 수집가이기도 한데 거기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긴 하다. 오랜 친구인 빌리 휘슬러(도날드 서덜랜드 분)와 짜고 경매에 오른 진품을 싼값에 얻는다. 버질은 빌리가 낙찰받도록 적당한 호가에서 끊어주고 빌리는 버질에게 작품을 되파는 식이다. 명작 미술품과 고가의 골동품이 들어찬 버질의 사택 창고는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어느 날부턴가 버질의 사무실로 한 여인의 전화가 집요하게 걸려온다. 부모가 물려준 저택의 미술품과 골동품을 감정받은 뒤 처분하고 싶다는 의뢰다. 다른 감정사는 안되고 꼭 버질에게 평가받고 싶다고 고집부리는 상속녀. 버질은 수차례 거부했지만 결국 그녀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러 차례의 통화 목소리에서 뭔지 모를 호기심과 끌림이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첫날부터 허사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돌아서며 공연한 짓을 했다는 후회에 헛웃음 짓는다. 하지만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바람을 맞는다. 깐깐한 신사 버질, 얼굴은 보이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몇 번이나 바람을 맞히는 여인에게 부아가 치민다.

여기부터 사건은 오르막을 타기 시작한다. 화는 나는데 그럴수록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버질. 실랑이 끝에 마침내 의문의 상속녀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다. 클레어 이벳슨(실비아 획스 분)은 어릴 때부터 광장공포증을 앓아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20대 여인. 저택 안 비밀의 방에 그녀가 있다. 존재가 확인된 이후로도 한참 동안 버질은 ‘이벳슨 양’과 벽을 사이에 둔 채 대화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림과 골동품, 고가구를 정리하고 감정하고 품목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꽤 여러 날이 필요한 작업이다. 버질은 시간이 갈수록 얼굴 없는 젊은 여인과의 대화에 익숙해진다.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괴팍하게 혼자 살아온 자신과 꽤 닮은 듯하다. 클레어에게 점점 동질감을 느낀 것.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몰래 훔쳐보기로 한 건 호기심이 동질감으로, 동질감이 애틋한 연정으로 발전했다는 증거. 숨어서 본 클레어는 빛나게 아름다웠고 버질은 아마도 사랑에 빠진 듯하다. 이전의 개인 서사는 극중에 드러나지 않지만 보기만 해도 평생 외로웠을 관상인 그. 우여곡절 끝에 클레어의 비밀의 방에 들어가고 드디어 두 사람은 감정사와 의뢰인이 아닌 ‘선 넘은’ 연인이 된다. 스스로 소외의 길을 걸으며 ‘관계’로부터 멀어졌던 남녀의 만남은 얼마나 흥분될까.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격렬하겠는가. 관객은 ‘완고하고 고독한 중년남과 세상에 처음 나온 외톨이 소녀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영화가 마무리돼도 나쁘지 않다고 할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제서야 반환점을 도는 모양새. 곧 있을 클라이맥스가 복잡한 기대를 갖게 한다.

로버트(짐 스터게스 분)는 버질과 클레어 이야기 중간에 놓인 인물이다. 무엇이든 고치고 조립하는 맥가이버 같은 젊은이다. 버질은 저택 안에서 발견된 금속 부속품의 조립을 맡기러 그의 가게를 드나들다 클레어와의 사랑을 고백한다. 급기야 로버트도 저택에서 클레어를 훔쳐보고, 버질은 잘생긴 훈남이 자신의 어린 연인을 빼앗아갈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늦게 꽃피운 사랑 앞에 불같은 질투도 꽃처럼 피어난다. 그 와중에 빌리는 경매장에서 실수를 저질러 고가의 대작을 놓치고 말았다. 버질은 그녀를 만난 뒤 이전의 자신이 아니다. 냉정을 잃은 듯하다. 하지만 뭐 어떤가.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찾았으니 고통마저 처음 맛보는 달디단 희열이다.

아무튼 이들은 모두 어찌됐을까. 드라마 요소도 많지만 명색이 범죄스릴러이니 스포일링은 자제해야 옳겠다. 이야기가 멈춘 이쯤부터 사건은 빠르게 전개된다. 굳이 힌트를 드린다면 이 모든 것은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버질이 직업상 늘 캐묻는 그것에 관한 이야기다. 미술품을 놓고 진품이냐 위작이냐를 묻듯, 눈에 보이는 현실도 사람의 감정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제대로 물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려 한다. 빌리가 버질에게 던진 아래의 말은 바로 그 경고.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진짜는 아닌 거지.“(아무 말 없이 사라진 클레어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버질에게 빌리가 건넨 말)

이만하면 영화의 핵심 대사요, 충분한 메시지다.

누가 가짜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는 물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 됐는지는 아니더라도 버질의 사랑이 망한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는 사랑 때문에 가졌던 모든 걸 다 잃는다. 하지만 다 잃었으되 전부를 잃지는 않은 것 같다. 말장난 같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 ”모든 위조품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고 한 그의 말을 영화가 끝난 뒤 찬찬히 곱씹어 보시라. 버질의 한 문장은 빌리의 조언에 대한 반박 같아 보인다.

사랑도 위작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조차 귀하고 아름답다.

글 이상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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