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홀드(Hold·인공암벽에 부착된 손잡이 및 발판용 구조물)가 빼곡한 인공암벽 앞에 선다. 발은 어디에 디뎌야 할까. 다음 손은 어느 홀드를 잡아야 할까. 잠깐 머뭇거리던 몸이 벽에 붙는 순간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손끝에 힘을 실어 무게중심을 옮기고 홀드를 하나씩 짚어 나간다. 숨이 차오르고 팔뚝이 뻐근해질 즈음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 마지막 홀드가 눈에 들어온다. 온몸을 쭉 뻗어 마지막 홀드를 잡는 순간 짜릿한 성취감이 몰려온다. 오늘도 ‘성공(완등)’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클라이밍(Sport climbing)은 일부 마니아의 운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울 곳곳의 실내 암장에는 퇴근 후 운동복 차림의 2030세대가 줄을 선다. 스포츠클라이밍이 새로운 생활체육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서울시 성동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이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원래 다니던 수영장이 공사를 하면서 우연히 실내 암장을 찾아 클라이밍 일일 체험을 했다. 이제는 일주일에 서너 번, 하루에 세 시간 넘게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긴다. 이 씨는 스포츠클라이밍의 장점으로 ‘목표의식’을 꼽았다. 성공과 실패가 명확해 성취감이 있고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마니아 운동에서 2030 필수 취미로
스포츠클라이밍은 짧은 구간의 자연바위 혹은 인공암벽에 매달려 목표 지점까지 등반하는 운동을 말한다. 제32회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국내에서도 스포츠클라이밍은 최근 몇 년 새 마니아 중심의 비주류 운동에서 2030세대의 인기 스포츠가 됐다. 누리소통망(SNS)에서는 성공(완등) 영상을 인증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퍼졌다. 인스타그램에서 ‘#클라이밍’ 해시태그는 230만 개를 넘어섰고 ‘#볼더링’ 역시 130만 개 이상 게시물이 쌓였다.
스포츠클라이밍은 크게 볼더링(볼더), 스피드, 리드 세 종목으로 나뉜다. 그중 ‘볼더링’이 최근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 볼더링은 로프 없이 4~5m 높이의 인공암벽을 오르는 종목이다.
바닥에 두꺼운 매트가 깔려 있어 떨어져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 암벽화(홀드나 벽과 마찰력을 높여주는 신발)와 초크백(손과 홀드의 마찰력을 높이는 초크가루 가방)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어 진입장벽도 낮다. 무작정 홀드를 잡고 오르는 게 아니라 다음 홀드를 어떻게 잡고 어떤 자세로 넘길지 끊임없이 계산해야 한다. 암장에서는 이를 ‘루트파인딩(Route Finding)’이라고 한다. 완등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싶고 성공하면 더 어려운 코스를 오르고 싶어진다.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게 갈리기 때문에 게임처럼 사람을 몰입하게 만든다.
‘스피드’는 두 사람이 동일한 코스를 올라 먼저 도달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종목으로 암벽 높이가 15m에 달한다. ‘리드’는 선등자가 중간 확보물에 로프를 걸어 안전을 확보하며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겨루는 종목이다. 두 종목 모두 등반자와 빌레이어(등반 조력자)가 한 팀을 이뤄 등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하는 전신운동
무엇보다 스포츠클라이밍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쓰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매력이 크다. 겉으로 보기엔 팔 힘으로만 버티는 운동 같지만 실제로는 등, 코어, 하체까지 전신 근육을 총동원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도 심박수가 확 올라가 체지방 감량 효과가 크고 반복적으로 루트를 공략할 때마다 몰입하게 돼 잡생각이 사라진다. 클라이머는 흔히 루트를 풀어가는 집중의 시간을 ‘움직이는 명상’에 비유하기도 한다.
커뮤니티 문화도 클라이밍을 더 즐길 수 있는 팁이다. 혼자 벽을 오르지만 암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루트를 봐주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한다. 각 지역별 암장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 이 씨는 ”스포츠클라이밍을 함께 시작한 친구가 크루를 만들었는데 몇 달 새 인원이 80명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 2026년 ‘봄철 5대 생활체육’ 가운데 하나로 스포츠클라이밍을 선정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실내 암장이 빠르게 늘어나며 접근성이 좋아졌고 계절과 날씨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대한스포츠클라이밍협회(KSCA)는 ”복근과 하체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전신운동으로 특히 홀드를 잡고 이동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성장기 어린이의 성장판에 자극을 주며 소근육 발달에 효과적이다. 또한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길을 찾아서 이동해야 하는 특성상 창의력과 사고력 향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운동이다“라고 소개한다.
벽은 정직하다. 힘으로만 오를 수도 없고 어느 순간 한 걸음 물러서서 길을 다시 읽어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오늘도 암장으로 향한다.
서하나 기자
스포츠클라이밍 안전하게 즐기는 법
스포츠클라이밍은 다양한 난이도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이지만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잘못하거나 무리하면 부상 위험이 있다. 대한산악연맹(KAF)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클라이밍 전 충분한 스트레칭을 권고한다.
● 먼저 팔을 쭉 뻗고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향한 뒤 손끝을 몸 쪽으로 당겨 전완근을 잘 풀어준다.
● 손끝을 충분히 틀어주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혹은 마사지를 충분히 해 손가락도 풀어준다.
● 한 발 혹은 양발을 계단 위에 놓고 다리를 편 뒤 발뒤꿈치를 최대한 낮춰 자세를 유지하는 ‘발목 스트레칭’도 도움이 된다.
● 반지는 빼는 게 좋다. 네일아트도 주의해야 한다. 암벽화는 반드시 꽉 맞게 착용하는 것이 좋다.
● 등반을 시작하기 전 매트 위에 장애물이 없는지 확인하고 다른 플레이어와 루트가 겹치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완등자 착지 시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매트 위를 돌아다니거나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된다.
● 가장 부상을 입기 쉬운 시점은 착지할 때다. 완등 후 매트 위 빈 공간을 확인한 뒤 무릎은 굽힌 채 양발에서 엉덩이 등의 순서로 체중을 이동하며 착지해야 한다. 착지할 때 손으로 매트를 짚거나 발이 아닌 부위부터 착지하면 부상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스포츠클라이밍 알뜰하게 즐기는 법
일 평균 2만 원 넘는 사설 센터 이용료가 부담된다? 국민체육센터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을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은 다음과 같다.
● 서울 강남구 대치유수지 체육공원에 있는 ‘강남스포츠클라이밍센터’. 전국 최대 규모의 최신식 시설을 자랑한다. 일일 이용료 평일 3000원, 주말 4000원.
● 서울 중랑구 ‘용마폭포공원 중랑 스포츠클라이밍 경기장’. 거대한 자연 경관과 어우러진 국제규격 리드벽과 실내 볼더링 벽을 갖추고 있다. 일일 이용료 평일 2000원, 주말 3000원.
● 경기 광명시 ‘광명시민체육관 인공암벽장’. 높이 20.8m의 대형 실외 암벽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일일 이용료 평일 1500원, 주말 1800원.
이밖에도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스포츠클럽포털(sportsclub.sports.or.kr)에서 대한체육회가 직접 지정하거나 인증한 스포츠클라이밍 센터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광주서구스포츠클라이밍클럽(광주광역시), 군산클라이밍스포츠클럽(전북 군산시), 락스페이스클라이밍(경기 성남시), 사단법인 뚝섬클라이머스(서울 광진구), 사단법인 세종공공스포츠클럽(세종시), 사단법인 영월군스포츠클럽(강원 영월군), 사단법인충주시스포츠클럽(충북 충주시) 등 7곳이다.
나에게 딱 맞는 ‘암벽화’ 고르는 법
암벽화는 스포츠클라이밍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아이템이다. 신발을 고를 때는 너무 아프지 않되 꽉 조이는 사이즈를 고르는 것이 팁이다. 암벽화는 형태에 따라 ▲바닥이 평평하고 일반 운동화와 비슷한 ‘플랫형(Flat)’ ▲발끝이 아래로 휘어진 ‘다운턴형(Downturn)’ ▲가장 공격적인 구조로 다운턴에 더해 발 전체가 안으로 굽은 ‘어그레시브형(Aggressive)’ 등이 있다.
플랫형은 발가락이 눌리지 않고 편안해서 장시간 착용하기 좋다.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하는 입문자에게 적당하다. 다운턴형은 작은 홀드에 발끝으로 힘을 실어주기 좋아 중급자 이상의 루트 클라이밍이나 볼더링에 적합하다. 어그레시브형은 고난도 기술에 유리하고 상급자가 짧은 시간 동안 고강도 루트를 탈 때 많이 신는 신발이다. 어떤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 운동의 몰입감, 재미, 성장속도까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