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닐로 종량제봉투 만드는 인테크 이영상 대표
”종량제봉투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건데 주사기나 수술용 장갑 만드는 고급 원료인 나프타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폐비닐 등 재생원료로 종량제봉투를 만드는 인테크의 이영상 대표가 되물었다. ‘재생원료를 활용해 종량제봉투를 개발한 계기’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인테크 공장은 1000㎡(약 300평) 남짓한 규모였다. 공장 안에서는 압출기 8대가 쉬지 않고 돌아가며 종량제봉투를 뽑아내고 있었다. 압출기 주변에는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가 가득 담긴 포대가 쌓여 있었다.
”비닐하우스를 덮었던 폐비닐, 볏짚 등 포장에 쓰인 곤포 사일리지 비닐 등을 가공한 재생원료입니다. 이것을 배합해 녹인 뒤 압출기에 넣으면 종량제봉투가 만들어집니다.“ 이 대표가 손으로 알갱이를 한줌 쥐어올리면서 설명했다. 새 플라스틱 원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작은 알갱이는 최근 ‘종량제봉투 대란’ 속에서 뜻밖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테크는 2015년 재생원료 100%로 종량제봉투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국 100여 개 종량제봉투 제조업체 가운데 재생원료만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인테크가 유일하다. 이 기술로 특허는 물론 환경표지·녹색기술인증까지 받았지만 조명을 받진 못했다. 오히려 거래처가 줄어 걱정이었다.
그러다 올해 초 중동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서 종량제봉투 주요 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어려워진 것이다. 수입 나프타 물량의 절반가량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종량제봉투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이 확산됐다.
대형마트, 편의점에는 종량제봉투를 미리 사두려는 사람들이 몰렸고 품귀현상까지 빚어졌다. 일부 판매처는 구매 수량 제한까지 내걸었다. 정부가 직접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진화에 나설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나프타 없이도 생산이 가능한 재생원료 종량제봉투의 가치가 다시 조명됐다. 인테크에 문의가 빗발쳤다. 거래처가 늘고 주문량도 폭증했다. 직원 9명은 몇 달째 주말도 없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
기술을 가르쳐달라는 사람도 많다. 4월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재생원료 사용 종량제봉투 제작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핵심은 기술 공유였다. 20년 가까이 공들여 개발한 기술을 왜 무상으로 나누기로 했을까? 시끄러운 공장을 빠져나와 사무실에서 이 대표와 마주앉았다.
재생원료로 어떻게 종량제봉투 만들 생각을 했나.
1995년 종량제봉투 제도가 시작될 때부터 종량제봉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다른 업체와 똑같이 나프타를 원료로 썼다. 그러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봉투를 왜 이렇게 비싼 원료로 만들어야 하나 싶더라. 자원이 한정돼 있다면 적재적소에 써야 하지 않겠나. 나프타는 의료용이나 식품 포장재처럼 꼭 필요한 곳에 쓰고 쓰레기 담는 종량제봉투는 재생원료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재생원료와 나프타의 배합 비율을 바꿔가며 테스트했다. 봉투를 뽑아내는 기계의 특성상 한 장씩 만들 순 없어서 실험을 하려면 공장을 멈춰야 했다. 재료도 소량으로 넣을 수 없으니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었다. 시행착오를 거쳐 2007년 재생원료 50% 제품을 개발했고 환경인증을 받았다. 이후 재생원료 비율을 계속 높여 2015년엔 재생원료 100% 봉투 개발에 성공했다.
원료 선택도 중요했겠다.
폐비닐이라고 해서 특성이 모두 같진 않다. 랩은 끈적끈적하고 하우스용 비닐은 또 물성이 다르다. 하나하나 실험해보며 맞는 조합을 찾았다. 현재 종량제봉투 생산에 활용하는 재생원료는 총 다섯 가지다. 앞으로 어떤 폐비닐이 더 활용될지 아무도 모른다. 개발에 끝이 없다.
재생원료를 활용해도 품질에는 문제가 없나.
냄새가 나지 않을까, 품질이 낮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는데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 원료는 전문업체에서 세척·가공한 것을 공급받는다. 깨끗하다. 오히려 내구성은 더 좋다. 우리가 기술을 개발해서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한 장의 비닐을 쭉 뽑아서 양쪽을 붙이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안쪽과 바깥쪽 면을 따로 만든 뒤 합쳐 뽑아내는 기술을 쓴다. 한 가닥 실보다 두 가닥을 꼬아서 만든 실이 더 튼튼한 것과 같은 원리다. 내구성은 봉투가 클수록 더 좋아야 하고 잘 늘어나야 한다. 쓰레기가 많이 들어가서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인장력이 약하면 터질 수 있다. 한 겹으로 제작해도 크게 문제는 없는데 우리는 두 겹 구조라 품질에 자신 있다.
그동안 후발주자가 없었던 이유는 뭔가.
예전에는 나프타와 재생원료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굳이 어렵게 불편을 감수하면서 재생원료를 쓸 이유가 없었던 거다. 재생원료는 표준규격을 맞추기까지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수요도 적었다. 거래처가 많을 때는 7~8곳까지 갔다가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중동 전쟁 이후 다시 문의가 몰리기 시작했다.
재생원료만으로 현재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한 해 쓰는 종량제봉투가 약 18억 장, 무게로는 3만 5000톤 정도다. 폐비닐의 양은 비닐하우스용만 5만 톤, 곤포 사일리지가 1만~2만 톤이다. 여기에 산업용 폐비닐까지 포함하면 양은 더 늘어난다. 종량제봉투를 다 만들고도 남는다. 경제성도 있다. 종량제봉투를 나프타로 만들면 연간 750억~800억 원 정도가 드는데 재생원료를 활용하면 500억~550억 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사실 10년 전부터 정부에 재생원료 종량제봉투로 대체해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해왔다. 지난해부터는 공무원이 직접 공장에 와서 생산 상황과 수급 가능성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중동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품귀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다. 다행히 이제라도 업체에 재생원료 종량제봉투 생산 설비 등을 지원해준다고 하니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기술 무상 이전 협약도 맺었다.
중동 전쟁 직후에는 일이 밀려와서 하루 세 시간씩 자며 버텼다. 내가 가진 기술로 돈 벌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웃음) 그래도 지난 20여 년간 해온 노력이 가치가 있다는 인정을 받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자고 아내와 이야기했다. 아내이자 품질관리를 총괄하는 박인숙 팀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다. 항상 믿어주고 응원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몇 번이나 공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일할 때 더 신바람이 나보였다. 쓰레기를 채운 종량제봉투가 잘 서 있지 않고 쓰러지는 점을 보완하려고 원통형 제품을 개발했다는 설명을 할 때는 눈이 반짝였다. 누구도 가지 않던 길이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해질 기술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온 시간, 그 결실이 비로소 세상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고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