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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돌, 목가구, 한옥…박미주간에 만난 한국의 美

"비가 오면 석조물이 더 아름다워요. 돌의 결이 선명해 보이거든요." 우리옛돌박물관 천미전 관장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빗물 속 석조 유물들이 더 짙은 빛을 냈다. 기다리던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박미주간)'이 돌아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한국박물관협회와 함께 5월 한 달간 운영하는 이 행사는 올해 전국 310여 개 기관이 참여해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잇는 박물관'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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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석조물이 더 아름다워요. 돌의 결이 선명해 보이거든요."

우리옛돌박물관 천미전 관장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빗물 속 석조 유물들이 더 짙은 빛을 냈다.

석조물을 찍는 참가자 (본인 촬영)

기다리던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박미주간)'이 돌아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한국박물관협회와 함께 5월 한 달간 운영하는 이 행사는 올해 전국 310여 개 기관이 참여해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잇는 박물관'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행복한 고민 끝에 '뮤지엄×거닐다'의 서울 투어에 참여했다. '뮤지엄×거닐다'는 지역의 특색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 명소를 전문 해설사와 함께 다니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서울, 공주, 경주, 제주에서 진행되며 지역별 주제가 있어 더 기대됐다. 서울은 '전통으로 만나는 한국의 미'를 주제로 세 곳(우리옛돌박물관, 한국가구박물관, 혜곡최순우기념관)을 방문했다. 모두 처음 가보는 곳이라 더 설렜다.

5월 20일 비와 함께 '뮤지엄×거닐다' 서울 투어가 시작됐다. 비가 많이 내리면 취소된다길래 전날부터 걱정이 됐다. 거센 비로 차는 막혔으나 참가자들은 시간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 앞에 모였다. 각자 수신기와 명찰을 받은 후 작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 우리옛돌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는 석조물과 함께 사계절의 변화도 볼 수 있는데요. 야생화를 많이 심어 철마다 다른 느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 유일한 석조 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본인 촬영)

천 관장이 말했다. 우리옛돌박물관은 한때 돌산이었던 땅에서 돌을 캐낸 자리에 2천여 점의 석조물을 전시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모은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벅수, 석탑, 불상 등 우리나라 석조물을 실내외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색과 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야외 전시장 '돌의 정원' (본인 촬영)

대부분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의 무덤에 있었던 석조물로 우리나라 다양한 석조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야외 전시장은 곳곳에 심은 식물들이 어우러져 더없이 운치 있었다. 참가자들은 이곳저곳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문인석, 자세히 관찰하면 여러 가지를 반영해 무척 흥미롭다. (본인 촬영)

"문인석을 자세히 보면 시대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되는데요. 그런 걸 찾으며 보시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그의 말처럼 석조물은 시대마다 달랐다. 조선 초·중기에는 검은 모자에 공복을 입고 홀을 손에 쥔 형태가 유행했고 후기로 갈수록 금줄 장식의 예복을 입은 형태로 변화하며 더 화려해졌다.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크기도 달랐다. 영의정 계급이면 중간 크기, 대군 무덤에는 180㎝ 이상 되는 것도 세웠다고 한다.

미륵을 보는 참가자들. 미륵의 어깨 이하는 이곳에서 만들었다. (본인 촬영)

그동안 석조상을 구분하고 본 적이 없어서 더 신기했다.

각각 몸에 지닌 것들이 다르다. 다산을 기원하며 아기를 안은 모습도 보인다. (본인 촬영)

"묘지의 석물들은 전문 석공이 만들었지만, 벅수(석장승)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었어요. 화강암이 아니라 돌이 물러 일반인도 조각할 수 있었거든요."

벅수를 가리키며 천 관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을 들으며 각 특색을 살펴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옛돌을 통해 우리나라 계급 문화부터 무속신앙과 다산을 기원하는 풍속, 시대. 지역별 특색까지 엿볼 수 있어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느꼈다.

실내 전시관에서도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본인 촬영)

특히 야외 전시장 '돌의 정원'은 승승장구의 길, 무병장수의 길 등 주제에 맞게 구성돼 한 바퀴 돌고 오니, 산책이 아닌 명상을 한 듯 상쾌했다. 더욱이 실내 전시장에서 이어진 전시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예상보다 꽤 풍성했다.

◆ 한국가구박물관 한국가구박물관 입구 (본인 촬영)

두 번째 방문한 곳은 한국가구박물관이다. 잠시 차를 타고 한국가구박물관으로 이동하자 넓은 잔디마당 위에 들어선 한옥이 보였다. 고풍스러운 이 한옥은 창경궁 기둥과 기와 일부를 수습해 만든 궁궐 양식의 한옥이다. 내부 전시실에는 목가구가 나무 종류와 용도별로 진열돼 있었다. 현재 재정비 중으로 예약받지 않고 내부 사진 촬영은 불가능했지만, 그만큼 더 눈 속에 담기로 했다.

"감나무를 반으로 잘라 불을 쓱 지나가면 탄닌 성분이 타들어 가며 검은 결을 남겨요. 우리 선조들은 이 자연의 결을 데칼코마니처럼 좌우 대칭으로 배치했지요."

감나무 목가구를 가리키며 한국가구박물관 한부남 팀장이 설명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일부러 그린 것 같다"라며 신기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팀장은 외국인 방문객이 "누가 가구 위에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느냐"라고 묻자,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그린 그림"이라 답했더니,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야외에서만 촬영할 수 있다. (본인 촬영)

단풍나무 가구들은 따스한 오렌지빛을 뿜었다. "나무뿌리 부분을 쓰면 이렇게 밝아요. 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생긴 옹이결을 '용트림'이라고 부릅니다. 아팠던 나무가 더 아름다운 결을 내주는 거죠."

제주도 특산 휘가시나무로 만든 가구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거친 나무 표면의 구멍을 흰 석회 가루로 메워 핀스트라이프 패턴 같은 세련미를 풍기고 있었다. "200년 전 디자인인데 현대 가구를 능가하죠?" 한 팀장이 미닫이와 여닫이가 교차하고 층별로 분리·결합이 가능한 구조를 보여주며 말했다. 참가자들은 어떻게 요즘 감각에도 이렇게 딱 맞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정원에 깐 마사토는 조선시대 보안 역할을 했어요.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서 방범 역할을 해주죠."

고즈넉한 한국가구박물관의 야외 정원 (본인 촬영)

한 팀장은 정원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마사토는 비가 오면 물이 그대로 빠지는 배수 역할을, 한낮에는 햇빛을 반사해 집 안을 밝혀주는 채광 역할도 한다. 장식이 아닌 기능이었던 셈이다.

한국가구박물관 (본인 촬영)

최소한의 장식으로 최대한의 미학을 구현한 조선 목가구. 한옥 창을 통해 흘러드는 은은한 빛 속에서 목가구의 담백한 선들이 복잡한 현대인의 정신을 차분하게 모아주는 듯했다.

◆ 혜곡최순우기념관

혜곡최순우 옛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본인 촬영)

마지막으로 혜곡최순우기념관을 찾았다. 최순우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냈으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유명하다. 골목길을 따라가자, 최 선생이 만년을 보냈던 집이 보였다.

참가자들이 처마 밑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본인 촬영)

"이 집은 시민들 자발적 성금으로 매입했습니다. 시민문화유산 제1호예요."

참가자들이 처마 밑에 앉자, 한란희 교육사가 설명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 집에서 지냈던 최순우 선생의 일상을 떠올렸다. 마당에는 선생이 직접 심고 가꾼 대나무, 모란, 수수꽃다리가 비를 맞아 싱그럽게 빛났다.

최순우 선생의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 (본인 촬영)

집은 'ㄱ'자 모양과 'ㄴ'자 모양이 맞물려 'ㅁ'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실내에는 선생이 쓰던 백자 연적, 목가구 등이 전시돼 있었다. 눈에 익은 김환기 화백의 작품도 보였다. 두 사람의 인연과 달항아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안채와 사랑방을 천천히 구경했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본인 촬영)

특히 사랑채 문에 걸린 '오수당(午睡堂)' 현판이 눈길을 끌었다. 오수당은 김홍도의 당호로 최순우 선생이 그의 화첩에서 글씨를 따 왔다. "오수당은 낮잠 자는 방이라는 뜻이에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자 한 최순우 선생님의 삶의 방식입니다." 한 교육사가 말했다. 가로 살 두 개, 세로 살 하나로 짠 용(用)자 창살 너머로 바라본 뒤뜰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향로석과 물확(돌로 만든 수반)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에 비 오는 날의 고즈넉함이 더해졌다. 이곳에 좀 더 머무르고 싶었다.

혜곡최순우 옛집. (본인 촬영)

"우리나라 문화가 대단하다는 걸 되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봉사 같은 걸 하면서 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저는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너무 재밌었어요. 어릴 적에 이 근방에 왔던 기억이 나서 열심히 떠올려봤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더라고요. 가구 박물관에서는 옛 시절 생각도 났어요. 그때 이런 걸 알았더라면 당시에 쓰던 물건을 잘 간직해뒀을 텐데 싶었죠."

뮤지엄x거닐다 서울편에 참가한 조정임, 최은희, 백경숙 씨 (본인 촬영)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 온 조정임, 최은희, 백경숙 씨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아들이 신청해 줘 함께 왔다는 세 사람은 북촌 근처에서 종종 만나면서도 박물관을 함께 온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박미주간을 올해 처음 알게 됐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확실히 해설을 들으면서 보면 다르더라고요. 너무 유익해서 올해 박미주간을 기다렸어요."

또 다른 여성 참가자는 지난해 경기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올해를 기다렸다가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국립현대미술관에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을 알리는 현수막이 크게 부착돼 있다. (본인 촬영)

얄궂은 비에 걱정이 앞섰으나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엔 꽤 만족스러웠다. 비가 아니었다면 이 운치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을까. 자연이 다듬어준 돌과 나무의 결이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듯, 처음엔 불편했던 빗속의 하루도 돌아보니 자연이 준 선물 같았다.

우리옛돌박물관 문에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본인 촬영)

무엇보다 우리옛돌박물관에서 만난 환수 문화재를 통해 문화재의 소중함을 한 번 더 느끼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엿볼 수 없는 한국가구박물관까지 둘러볼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또 옛돌과 목가구가 있는 최순우 옛집에서 그의 일생까지 엿볼 수 있었으니 벌써 내년 박미주간은 어디를 거닐게 될지 두근거린다. 이번 박미주간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의 온기를 느끼고 박물관과 미술관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길 기대한다.

☞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 공식 누리집 바로가기

☞ 우리옛돌박물관 누리집 바로가기 ☞ 한국가구박물관 누리집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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