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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 손 잡아주는 ‘엄마’ 교도관 “한 사람을 보듬는 일이 우리 사회 지키는 일입니다”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에는 조금 특별한 엄마가 한 명 있다. 열두 척 담장 안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 장선숙 교도관이다.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 혼낼 때는 누구보다 무섭지만 수용자들은 그를 엄마라고 부른다. 장 교도관보다 나이가 많은 수용자도 예외는 아니다. 매섭게 지적을 해도 그 안에 사랑이 깔려 있다는 걸 수용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몇 해 전 겨울 그는 바깥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먹고 싶어 하는 수용자들을 위해 검은 비닐봉지가 미어터지도록 몰래 붕어빵을 사들고 왔다. 봉지 안에 습기가 차면서 붕어빵은 들러붙고 엉망이 됐지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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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교도소에는 조금 특별한 엄마가 한 명 있다. 열두 척 담장 안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 장선숙 교도관이다.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 혼낼 때는 누구보다 무섭지만 수용자들은 그를 엄마라고 부른다. 장 교도관보다 나이가 많은 수용자도 예외는 아니다. 매섭게 지적을 해도 그 안에 사랑이 깔려 있다는 걸 수용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몇 해 전 겨울 그는 바깥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먹고 싶어 하는 수용자들을 위해 검은 비닐봉지가 미어터지도록 몰래 붕어빵을 사들고 왔다. 봉지 안에 습기가 차면서 붕어빵은 들러붙고 엉망이 됐지만 수용자들은 남김없이 먹었다. 나중에는 따끈한 붕어빵을 먹이고 싶어서 아예 봉사자를 교도소 안으로 불러들였다. 갓 구운 붕어빵 냄새가 교도소 안을 채웠다.

사람들은 묻는다. ”죄를 지어 교도소에 온 이들에게 왜 그렇게까지 잘해주느냐“고. 그는 ”사람은 편안해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교화도 가능해진다. 결국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36년 동안 그 일을 해왔다. 그의 도움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분식집 사장이 됐고 또 다른 수용자는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됐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결국 세상을 지키는 일이라고 그는 믿는다.

장 교도관은 수용자들을 더 잘 돕기 위해 법학을 공부했고 사회 복귀 지원 방안을 연구했다. 그 공로로 2015년 교정대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교정공무원의 진로 설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도관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수용자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교도소 담장 안에서 보낸 세월만 36년. 정년까지는 이제 5년도 남지 않았다. 마침 법무부도 교정의 패러다임을 수용 관리에서 치료·재활을 통한 회복과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나섰다. 그가 꿈꿔온 변화가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의정부교도소에서 장선숙 교도관을 만났다.

교도관은 어떤 일을 하나.
사회와 격리된 수용자의 전반적인 처우를 담당한다.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도 돕는다. 전국 교도관은 약 1만 7000여 명 정도인데 대부분 현장에서 교대근무를 한다. 수용자는 24시간 밀착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는 물론 아프면 약을 챙겨주고 운동 시간도 보장한다. 종교 활동도 지원한다. 밖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들어왔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돼야 하니까.

세세하게 챙겨야 할 일이 많겠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정말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실제로 삼켰는지까지 일일이 확인한다. 배변 문제가 있는 치매 수용자는 목욕을 시켜주기도 한다. 통계상으로는 교도관 한 명이 수용자 5~6명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대근무로 돌아가는 탓에 야간에는 한 명이 100명 넘게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야간에는 30분~1시간에 한 번씩 순찰을 돈다.

‘왜 하필 교도관이야’라는 책도 펴냈다.
원래는 교사가 꿈이었는데 수학을 잘 못했다.(웃음) 수학 성적 안 보는 공무원 계열을 보니 소방, 경찰, 교정 직군이 있었다. 그때 백범 김구 선생의 ‘교도관들은 교수가 돼야 한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교도관이 된 뒤에도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 갈까 고민했지만 수용자나 후배 교도관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선생님이 되면 되겠다 싶어 생각을 바꿨다.

교도관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어떤가.
교도관이라는 직업 자체를 잘 모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속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를 긍정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적은 탓도 있다. 외부의 응원을 받지 못하다 보니 직원들의 자부심도 떨어진다. 하지만 교도관이 자긍심을 가져야 그 에너지가 수용자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세상에 이 일을 더 많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법학을 전공한 이유가 있나.
예전에는 지금처럼 국선변호인 제도가 잘 돼 있지 않았다. 수용자는 자신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앞으로 어떤 절차가 남았는지 알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내가 법학을 공부하면 조금이라도 설명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무엇을 찾아봐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수용자들에 대한 마음이 남다른 것 같다.
난 호랑이 선생님 스타일이다. 혼낼 때도 있다.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다. 왜 혼나는지, 그 안에 애정이 있다는 것을. 내가 자신들을 위해 마음 쓰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거나 출소한 이후에도 편지를 보낸다. 간혹 엄마라고 부르는 수용자들도 있다.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고.
몇몇 수용자에게 에세이를 쓰게 하거나 감마칭(감사, 마음 알아차리기, 자기 칭찬) 일기, 경전 필사, 독후감 등을 시킨다. 어린 시절 성폭행 피해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한 수용자는 글쓰기를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출소자 창업도 돕는다고.
처음에는 취업처를 연결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취업보단 창업이 맞는 사람도 있더라. 그래서 창업 지원 단체와 연계해 분식집을 열 수 있게 도왔다. 최근 만났는데 예전에는 보이스피싱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데 이젠 정말 땀 흘려 돈 벌겠다고 하더라. 후배 교도관이 지금도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정말 자랑스럽다.

왜 범죄자까지 지원해야 하느냐는 시선도 있다.
수용자가 내 가족이나 지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무기수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언젠가 사회로 돌아온다. 가족도 사회도 나를 버렸다고 느끼는 사람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결국 피해자는 우리 모두가 된다.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교화해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 결국 우리가 안전해지는 길이다. 강연할 때 2010년 ‘옥탑방 살인사건’ 예를 자주 든다. 출소자가 일용직 근로를 하고 술을 마시던 차에 옥탑방에서 흘러나온 한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에 분노를 느껴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다. 범죄 피해는 누가 당할지 모른다.

출소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뭔가.
외로움이다. 취업까지 시켜줬던 한 출소자가 6개월 만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알고 보니 명절이었다. 모두가 가족에게 돌아갈 때 갈 곳이 없었던 거다.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곁에서 정서적 지지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을 챙기는 일이 힘들진 않나.
모두를 돌볼 순 없다. 가능성이 보이는 몇몇을 선택해 돕는다.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묻는 분도 있지만 보람도 크다. 마약으로 힘들었던 한 청년은 출소 후 지금까지 매일 나와 카카오톡으로 일기를 주고받으며 버티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이런 사례가 또 다른 수용자에게 희망이 된다.

수용자의 교화 가능성을 얼마나 보나.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정말 어렵다. 못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가능성이 0%는 아니다. 5~10%는 된다고 생각한다. 악해서가 아니라 기댈 곳이 없어서 무너진 사람도 분명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소자가 있다면.
늘 화가 나 있고 불신으로 가득 찬 청년이 있었다. 상담을 하고 감사 일기를 쓰면서 표정이 달라졌다. 출소 전 지원 프로그램도 성실히 참여했고 직업훈련을 받아 자격증도 땄다. 지금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또 힘든 삶을 살았던 가출소녀는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에겐 이제는 딸도 있다. 겉으로 보면 한 사람을 살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아이까지 함께 살린 셈이다. 그래서 교정과 교화를 포기할 수 없다.

교도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교도소가 들어선다고 하면 다들 반대하지만 사실 교도소 주변이 가장 안전하다. 수용자는 절대 교도소 근처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지금 우리 교도소 여자 수용동은 정원의 170% 수준으로 과밀 상태다. 10명이 생활해야 할 방에 17명이 지낸다. 이들에게 온기를 줘서 한 명이라도 온전한 사회인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혐오시설로만 단정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장 교도관이 기자에게 자신이 쓴 책을 선물했다. 책 안쪽에는 그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때로는 세상을 보듬는 것보다 한 사람을 보듬는 것이 더 소중한 일입니다.’

고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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