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찾아다니듯 작은 지역서점을 찾아가 책을 읽고 머무는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온라인으로 책을 빠르게 주문하고, 가끔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자연스럽게 서점에 머무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동네 서점을 찾은 기억도 점점 흐려졌다.
그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생애주기별 독서문화활동 지원사업 '인생독서×인생서점'을 알게 됐다.
'인생독서×인생서점' 사업은 지역서점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모이는 생활 문화 거점이 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인생독서×인생서점 포스터 (본인 촬영)
◆ 동네 책방에서 만난 특별한 시간 '인생독서×인생서점'에 신청하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독서인'과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서점ON' 누리집에서 지역별·연령별 프로그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서점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참여를 원하는 서점에 개별적으로 문의해야 한다.
인생독서×인생서점 일정공지 (서점온)
필자는 서점ON 누리집에서 5월 프로그램을 살펴보던 중 가까운 지역서점인 그루터기책방의 'Wine & Art Drawing'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독서 모임 신청폼 (그루터기책방)
해당 책방에 연락하여 책방 SNS에 게시된 신청폼으로 참가 신청을 마쳤다.
평소 지역서점 프로그램에 관심은 있었지만, 참여 방법을 몰랐던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신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책방 문을 열자 마주한 조용하고 따뜻한 풍경
프로그램 당일, 그루터기책방이 있는 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 여러 번 지나쳤던 곳이었지만 그 안에 그림책 책방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책방 내부 (본인 촬영)
책방 안으로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벽면 가득 놓인 책장에는 그림책들이 표지가 보이도록 정성스럽게 진열돼 있었다.
대형서점처럼 빽빽하게 꽂혀 있는 방식이 아니라, 한 권 한 권의 표정을 보여주려는 듯한 배치였다.
한쪽에는 작은 전시 공간처럼 꾸며진 좌식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서점 곳곳에는 엽서와 포스터,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 있어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서점 지기의 취향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공간에 담긴다는 점이 지역서점만의 매력이다.
이 서점만이 가진 편안함과 따뜻함이 공간 전체에 스며 있었다.
◆ 와인 한 잔과 함께 시작된 독서 모임 와인과 드로잉 재료 (본인 촬영)
이날 프로그램의 제목은 'Wine & Art Drawing'이었다.
조수진 작가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자유롭게 드로잉을 하며 감상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독서 모임 테이블 위에는 와인잔과 드로잉에 사용할 파스넷, 종이 등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참가자들(본인 촬영)
참가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하나둘 자신의 와인잔에 와인을 채워가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책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인지 금세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수진 작가의 그림책 소개 (본인 촬영)
이후 조수진 작가는 자신이 작업한 그림책의 책장을 넘기며 그림 속 장면과 감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단순히 책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고, 경험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림책을 매개로 서로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괜찮았던 시간 드로잉 하는 참가자들 (본인 촬영) 이후에는 자유 드로잉 시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테이블 위에 준비된 파스넷을 이용해 그림책 속 장면이나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상을 자유롭게 그려나갔다.
드로잉하는 시간(본인 촬영)
누군가는 꽃을 그렸고, 누군가는 추상적인 색감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그림책 속 인상 깊었던 장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옮겨 담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빈 종이를 앞에 두고 한참 망설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오랜만이라 무엇부터 그려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참가자들 역시 완성도보다는 표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부담을 내려놓고 천천히 선을 긋고 색을 더해가다 보니 어느새 종이 위에 나만의 그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보내던 평소 저녁 시간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드로잉 작품 소개하는 시간(본인 촬영)
마지막에는 각자가 완성한 그림을 보이며 참가자들은 자신의 그림에 담은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했다.
그림 실력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한 참가자는 "오랜만에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고, 다음에 열리는 독서 모임에도 참여해 보고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나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책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 그림책 책방을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
그루터기책방 서점 지기 (그루터기책방 제공)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드로잉도 함께한 서점 지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점 지기는 그루터기책방을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그림책 책방"이라고 소개했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림책 큐레이션과 어린이·성인 대상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서점을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드나드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마트 들르듯 편하게 방문하는 동네 책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서점 지기의 이야기를 들으니 책방 곳곳을 다시 보게 됐다.
처음 방문한 사람도 부담 없이 책을 펼치고 머물 수 있는 여유가 공간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번 프로그램이 '책과 드로잉, 와인'으로 구성한 이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성인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독서 모임에 다가올 수 있도록 와인을 곁들였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와인 한 잔을 나누며 긴장을 풀었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갔다.
◆ 지역서점이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참가자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공감하는 모습 속에서 동네 책방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역서점에서 보낸 두 시간은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물하는 자리였다.
가까운 동네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는 것으로 시작해, 그곳에서 나만의 '인생서점'을 만나고 '인생독서'의 순간을 만들어보길 바란다.
☞ 서점온 누리집 ☞ 독서인 누리집
☞ (보도자료) 지역서점, 책 놀이터이자 삶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