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균형발전정책은 의지만 강하다고 성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자치분권 강화, 개발이익 환수와 공유, 완결형 생활권 구축이 함께 작동할 때 국민 누구나 어디에서든 인간다운 삶과 미래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국토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산업화, 민주화, 도시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거치면서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의 위상, 국민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낸 민주주의, 탁월한 ICT 기술 역량과 K-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 파워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치열한 경쟁과 생존논리가 사회운영의 원리로 자리 잡으면서 승자독식 구조와 서열화가 고착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과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Peak Korea와 국가소멸 위기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복합위기는 지역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좋은 일자리와 높은 부가가치, 핵심산업 기능, 명문대학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하면서 모든 기회가 집중된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으로 양극화되어 왔다. 더 나아가 지역이 고유한 역사와 문화, 특성이 아니라 일자리·주택가격·대학의 순위에 따라 지역이 서열화되고 있다.
이제 지역문제는 수도권의 기능 일부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은 무엇보다도 지역균형발전의 최우선적인 공간 단위를 초광역권으로 설정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초광역권은 역사적 연계성과 문화적 공감대, 충분한 인구 규모 측면 등에서 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공간단위로 판단된다.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정책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공간단위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각 시·도와 시·군·구가 개별적으로 성장전략을 추진하면서 투자와 자원이 분산되었고, 결과적으로 수도권에 대응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했다. 5극 3특 전략은 지역초광역권이 고유한 성장역량을 갖추고 수도권과 동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지역정책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지방시대위원회 보고회에서 '5극 3특'을 의미하는 손가락을 펴보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균형 '발전' 정책이 아니라 균형 '성장' 정책이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운 점도 중요한 변화다. 그 덕분에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정책이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수도권 일극중심 구조로는 수도권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 전략에서는 잠재성장률을 3% 이상, 비수도권 GRDP의 비중을 50% 이상을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지역을 통한 국가성장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비수도권 취업자가 20만 명이 늘어 수도권 취업자 증가 6천 명보다 훨씬 많았을 뿐만 아니라 비수도권 고용률도 수도권 63.0%보다 높은 63.2%로 나타나 향후 지역상생을 위한 정책의 효과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수도권의 일극집중 구조 속에서 지역 초광역권이 자립적 성장엔진이자 새로운 자립적 삶의 공간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책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선, 5극 3특의 특별자치단체가 지역의 산업과 재정, 공간과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재정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기초로 지역초광역권 내에서 입지와 재원의 재배치를 둘러싼 결정과 갈등은 해당 광역권 내 분권 거버넌스를 통해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조속한 자치분권 개헌을 통해 초광역권 특별자치단체에게는 준연방제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 아울러 초광역권 특별자치단체가 대도시 중심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중소도시와 읍면동에까지 자치권을 확대해서 지방정부와 주민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수도권의 집중과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다른 지역이나 비자산 소유계층이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수도권의 공공택지나 주택의 분양·소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자산이익은 수도권의 재집중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성장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수도권의 개발이익을 결합개발, 교차보조, 이익공유제, 부담금 등을 통해 지역초광역권 발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혁신적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향기부제는 국세의 세액공제방식으로 운영되어 지방재정 확충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도권과 대도시의 세원이 지역으로 이전되도록 개편해야 한다. 일본의 고향납세제는 지난해 약12조 원 규모의 기부를 이끌어내서 부유한 지자체와 소멸위기 지자체 간 수평적 재정조정 장치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국가균형'성장'전략은 지역초광역권을 산업경제와 성장의 엔진으로 육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육·일자리·문화·의료·생활서비스가 선순환되는 완결형 생활권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 생활권에서 수도권과 다른 가치와 삶의 양식을 지향하는 주택과 동네가 돌봄, 건강, 이동, 레저, 지원서비스를 해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면 서열화된 공간인식을 바꿔낼 수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지역순환경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소득체계가 마련된다면, 지역은 단순한 생산공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 돌봄기능이 갖춰진 동네 플랫폼이 기본소득과 햇빛·바람에너지 기반의 마을소득과 결합된다면, 농산어촌도 누구나 머물고 싶은 지역으로 다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헌법에서는 균형발전과 관련하여 제119조, 제120조, 제122조, 제123조 등에 걸쳐 규정하고 있고 헌법 전문에도 모든 영역에서 기회 균등과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1989년 개헌 때부터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는 충분히 명시되어 있었지만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역균형발전정책은 의지만 강하다고 성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자치분권 강화, 개발이익 환수와 공유, 완결형 생활권 구축이 함께 작동할 때 국민 누구나 어디에서든 인간다운 삶과 미래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국토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