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과 도로에 국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운 날씨에도 고깔과 조끼 등을 입은 농악대가 악기를 연주하며 흥겹게 행진했다. 광장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탄하며 카메라를 눌러댔다. 제2회 국악의 날·국악주간 행사 '아리랑 대축제'가 열린 지난 6월 5일 광화문광장은 오전부터 활기를 띠었다.
제2회 국악의 날·국악 주간 깃발을 든 길놀이 행렬이 광화문 일대에서 행진하고 있다. (본인 촬영)
국악의 날은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라는 의미를 담은 악곡 여민락이 세종실록에 처음 기록된 날(세종 29년 음력 6월 5일)로 지난해 처음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국악의 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악원은 6월 5일부터 14일까지 '국악 주간'을 운영하며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청사자가 서 있는 행사장 입구. (본인 촬영)
'아리랑 대축제'가 열린 광화문 행사장에는 청사자 조형물이 서 있었다.
10시부터 전국 농악 보존회, 고등학교와 대학 풍물 동아리, 국방부 군악대대까지 800여 명이 서울 한복판을 행진했다. 신명 나는 가락을 들으며 장구와 꽹과리 소리에 이끌려 걷다 보니, 어느새 흥겨운 길놀이 한복판에 들어서 있었다.
마을을 상징하는 거대한 깃발을 든 사람, 탈을 쓰거나 재미있는 분장을 한 사람들이 모두 어우러졌다. 여러 지역이 모인 만큼 풍물 가락의 리듬도, 의상의 색채도, 춤사위도 달랐다. 그럼에도 한데 어우러지니 그 다양한 모습이 또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고싸움을 하고 있다. (본인 촬영)
길놀이가 끝나자, 고싸움이 시작됐다. 굵은 밧줄을 칭칭 감아 만든 고를 어깨에 올린 두 패가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에이야!" 함성과 함께 고가 맞부딪히자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쪽이 밀리면 반대편에서 더 큰 함성이 올랐다.
아리랑 보존회가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본인 촬영)
오후 3시에는 밀양·정선·진도 등 대한민국 3대 아리랑 보존회에서 나와 아리랑을 들려줬다. 이번 행사 이름이 '아리랑 대축제'로 붙은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는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1896년 아리랑을 서양식 악보로 채보해 세계에 알린 지 130주년이자,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아리랑이 우리 역사와 민족의 정서를 오롯이 담아온 노래라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자는 취지다.
상모를 돌리고 있다. (본인 촬영) "이거 돌리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 "아까 어린애도 하던데."
사람들은 상모를 써보고 돌리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신기하게 바라보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었고, 가족과 함께 온 외국인 꼬마 아이가 국악기를 연주하자 부모가 재밌어 했다.
과자로 장구를 표현해 보고 있다. (본인 촬영)
'아리랑 꼴라주' 부스에서는 과자를 재료로 장구를 만드는 체험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남은 과자를 먹어가며 열심히 장구를 만들었다.
국악무드 향수를 만들고 있다. (본인 촬영)
국악 무드로 조향된 향수를 제작하는 체험도 눈길을 끌었다. 조향사는 기존의 향을 섞어 우리 자연의 내음에 맞게 조향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고유의 향수가 이름에 걸맞게 은은하게 잘 어울렸다.
당신의 아리랑 프로그램을 통해 나만의 아리랑을 만들었다. (본인 촬영)
팝업 전시 부스 '아리랑'에서는 노래를 먼저 선곡한 뒤 자신만의 가사를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나는 밀양 아리랑을 선택하고 고민 몇 가지를 키워드로 골라 넣었더니 AI가 가사로 만들어 줬다. 그렇게 완성된 나만의 아리랑을 직접 불렀는데, 내 이야기가 담긴 가사를 부르는 순간 묘하게 먹먹해졌다.
곧이어 나온 '이겨내자'라는 가사가 뜻밖에 힘을 줬다. 쌓아둔 감정을 털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옛사람들이 민요를 부르며 힘을 얻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 전시는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기획 전시 '아리랑, 당신의 노래'와 연계되며, 오는 9월 6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가족이 국악기를 체험해 보고 있다. (본인 촬영)
국악기 직접 체험 코너에서는 특수 악기를 긁거나 두드려보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안내요원에게 설명을 들은 딸이 생소한 국악기로 동요를 연주하자 뒤에 있던 외국인이 흥얼거렸다. 공연 소품인 전통 모자와 의상을 직접 써보고 사진을 찍는 코너도 인기였다. 안내요원은 '무엇이든 돌려보세요'라는 내용의 SNS 챌린지를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렇게 국악이 자연스레 일상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국립국악원 김미라 국악진흥과 과장 (본인 촬영)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행사를 주관한 국립국악원 김미라 과장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Q. 올해 국악의 날 행사를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아리랑은 그냥 민요가 아니에요. 우리 역사 속 민족의 삶과 정서를 담아온 노래거든요. 올해 헐버트 채보 130주년, 영화 아리랑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아, 그 가치를 더 많은 분께 알리고 싶어 축제 이름을 아리랑으로 붙였습니다.
Q. 길놀이와 고싸움, 아리랑 공연까지 프로그램이 다양한데요.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요?
A. 농악이라는 게 원래 삶의 노동 현장에서 함께한 연희거든요. 저희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국악이 공연장 안에만 있는 예술이 아니라는 거예요. 진짜 살면서 느꼈던 모든 것들이 우리 음악으로 표현된 것이잖아요. 그래서 각 지역 보존회와 학생들, 대학 풍물 동아리까지 다 함께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다양함 자체가 국악의 매력이니까요.
국악 공연 소품 체험을 하고 있다. (본인 촬영)
김 과장은 이번 행사가 삶의 현장에서 비롯된 음악이 다시 삶의 광장으로 돌아온 것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길놀이 행진을 하고 있다. (본인 촬영)
Q. 아직은 국민이 국악과 친숙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A. 저희도 그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게 많이 접해야 익숙해지잖아요. 익숙해져야 자기 취향이 되고 그 취향이 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니까요. 저희는 어쨌든 국민이 더 많이,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에 더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농악대가 신명 나게 연주하고 있다. (본인 촬영)
지난 봄, 광화문광장에서 BTS의 '아리랑'이 울렸다. '아리랑'은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이번 국악 주간에 다시 울려 퍼진 '아리랑'은 우리 일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
길놀이 행진, 마을 깃발을 들고 있다. (본인 촬영)
이번 길놀이와 함께 광화문을 걷지 못했더라도 기회는 많다. 국악 주간은 14일까지 전국에서 계속된다. 서울숲 야외무대에서는 8일부터 12일까지 '2026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열리고, 11~12일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종묘제례악과 사직제례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신작 공연도 예정돼 있다. 인천·세종·광주·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도 50여 회의 공연과 교육, 기념행사가 이어진다.
무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본인 촬영)
이번 국악 주간을 통해 국악을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아리랑이 내 마음을 달래준 것만으로도 나는 국악의 면모를 새롭게 본 셈이다. 그렇게 나와 국악은 한층 친근해진 것 같다. 김 과장의 말처럼 익숙해져야 취향이 된다. 아직 국악이 생소하다면 이번 기회에 만나보면 어떨까.
* 기획 전시 '아리랑, 당신의 노래':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2026. 9. 6.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 - 국악 주간 전국 행사 일정
☞ (보도자료) 6월 5일은 '국악의 날', 국민과 함께 우리 음악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