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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투혼’으로 세계 정상에 서다 “사고로 멈췄던 4년 삶도 음악도 깊어졌다”

”의식이 반짝 들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마저도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병원에서도 제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했으니까요.“ 2020년 5월 충북 진천의 한 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역주행 차량과 충돌한 차 안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임현재가 타고 있었다. 원래라면 미국 커티스음악원 졸업식 현장에 있어야 할 날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던 그는 그날 이후 2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여섯 차례 수술을 받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휠체어를 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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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반짝 들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마저도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병원에서도 제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했으니까요.“

2020년 5월 충북 진천의 한 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역주행 차량과 충돌한 차 안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임현재가 타고 있었다. 원래라면 미국 커티스음악원 졸업식 현장에 있어야 할 날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던 그는 그날 이후 2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여섯 차례 수술을 받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휠체어를 타게 됐다.

입원 기간 바이올린을 집어 든 것은 딱 한 번이었다. 침대에 기댄 채 간신히 잡은 활에서 만족할 만한 소리가 날 리 없었다. 그 뒤로는 바이올린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음악 듣는 것조차 괴로워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조립식 장난감을 맞추고 또 맞췄다. 체온이 40도까지 오르는 날에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퇴원 후에는 아이들을 위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3개월 만에 수익이 발생했을 만큼 부지런히 영상을 만들었다. 무인 문방구도 열었다. 바이올린이 남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이것저것 해봤는데 내 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좌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결국 음악을 떠날 수는 없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다. 사고 이전의 기량을 되찾기는 쉽지 않았다. 잃어버린 것과 부족한 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닥을 딛는 힘이 없어 상체가 쉽게 흐트러졌고 활을 그으면 무릎에 닿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몸을 곧게 세우는 훈련을 매일 2~3시간씩 버텨냈다. 2024년 KBS한전음악콩쿠르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열린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2025년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준결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2025년 제20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을, 2026년 1월 엘마 올리베이라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정상에 올랐다. 최근에는 영국 클래식 FM이 선정한 ‘30세 이하 라이징 스타 30인’에 올해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4년 만의 복귀 이후 좋은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밟고 올라가는 기분이에요. 공백기가 없었더라도 윤이상콩쿠르나 장 시벨리우스 콩쿠르 준결선에 진출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또 연이어 우승까지 하게 돼 지금도 감개무량해요. 훌륭한 연주자들 사이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어느 때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겠습니다.
그때는 연주를 잘해야겠다는 걱정보다 무대에서 연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었어요. 뭘 잡지 않고는 몸을 숙일 수도 없었고 넘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거든요. 사실 윤이상콩쿠르 본선 진출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가고 싶지 않았어요. 바이올린을 다시 잡긴 했는데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오랫동안 단절된 삶을 살다가 다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래도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이올린은 하체의 힘도 중요한 악기라고요.
발에서 딛고 나오는 힘으로 중심을 잡고 연주하는 악기예요. ‘악마의 악기’라고도 하죠. 안정적인 자세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악기인데, 지금의 몸으로 연주하는 건 저에게도 새로운 일이에요. 처음에는 다른 근육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상하려다 보니 부상을 입기 쉽더라고요. 기립근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하면서 꾸준히 코어 힘을 기르고 있어요. 연주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운동을 해야 해요.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준비할 때는 연주 연습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하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의사들은 앞으로도 제가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지만 저는 아직 그렇게 단정 짓고 싶지 않아요.

연주 자세뿐 아니라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나요.
오히려 음악하고 떨어져 지내면서 음악과 제 삶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실은 음악을 억지로 밀어냈었죠. 못 하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내가 안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음악을 안 한 시간조차 결국 저였어요. 모토도 바뀌었어요. ‘현재를 살아라’에서 ‘현재를 즐겨라’로요. 매 순간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순간들이 쌓여 저라는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듯 연주도 선택의 연속이에요. 어떤 소리를 낼지, 어떤 방향으로 곡을 해석할지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삶과 닿아 있어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임현재는 일곱 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들었다. 2012년 커티스음악원에 입학한 뒤 2018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3위에 입상하는 등 일찌감치 ‘유망주’로 꼽혔다. ”연습하기 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그에게 바이올린은 일상이고 당연했다. 바이올린과 떨어져 지낸 시간은 음악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처음 돌아보게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문턱이 눈에 들어오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롭게 마주한 경험은 곡을 해석하는 시선에도 조금씩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음악을 하면서 괴로웠던 순간은 없었나요.
연습이라는 게 결국 반복의 과정이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할 것 같은 벽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발전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요. 그런 부분에서 힘들었던 적은 분명 있었어요. 목표에 한계가 없다는 점도 괴로울 때가 있었고요. 음악에는 끝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 점이 좋아요. 80대가 돼도, 90대가 돼서도 연주할 수 있어요. 전성기 때와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나이만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연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요.
하나를 꼽으라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무대예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만의 특별한 정서가 있어요. 웅장한 곡인데도 잔잔한 흐름이 계속 이어져요. 단순히 감정의 기복이라기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결 같은 것이 있는 곡이에요. 곡이 품은 고독과 내면의 힘이 제가 지나온 시간과도 닮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연주하는 동안 곡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어요. 사고 이후에 오른 무대라서 특별했던 것은 아니에요. 음악적으로도 몰입했던 무대였고 그 곡이 가진 분위기를 가장 진하게 느꼈던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이 임현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를 극복과 도전의 상징으로 바라봅니다.
물론 힘든 시간이었고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도 사고의 기억을 꺼내는 일이 쉽지 않고요. 그런데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사연보다 음악이에요. 음악으로 울림을 만들고 싶거든요. 연주를 통해 누군가에게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제가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이유예요.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되고 싶나요.
좋은 연주자는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변화하는 사람. 사람의 감정이 늘 같을 수 없듯 어제의 연주와 오늘의 연주도 똑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그게 어렵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늘 같은 연주를 한다면 그 또한 재미없는 일일 거예요. 저는 청중과 진심으로 교감할 줄 아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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