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이렇게 잘 맞는 옷은 처음이에요. 맞춤양복점에 가봉을 두 번, 세 번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6월 10일 인천 제물포의 맞춤정장 전문점 ‘김주현바이각’. 새 남색 수트를 차려입은 김송우(76) 참전유공자가 거울 앞에서 연신 옷매무새를 만졌다. 점수를 매겨달라는 말에 그는 망설임 없이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답했다.
”옷도 좋지만 마음이 더 고맙습니다. 국가유공자라서 이런 대접도 받아보는구나 싶었어요. 큰 위로가 됩니다.“
곁에서 마지막으로 어깨선과 바지 기장 등을 살피던 김주현(36) 대표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김 대표는 2022년 6월부터 국가유공자에게 맞춤정장을 선물하고 있다. 2015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폭발로 부상을 입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를 비롯해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예비역 대령에게도 맞춤정장을 선물했다. 2024년부터는 국가보훈부 인천보훈지청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매달 보훈대상자 한 명에게 맞춤정장을 후원하고 있다. 이날 정장을 선물받은 김 참전유공자는 5월 후원 대상자로, 1969년 12월 육군에 입대해 1972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주월한국군사령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가 지금까지 선물한 맞춤정장은 모두 서른 벌, 한 벌 한 벌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
양복 한 벌이 완성되기까지는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린다. 수만 번의 바느질과 여러 단계의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한 벌의 정장이 완성된다.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만큼 가격도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김 대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양복 한 벌에 담은 보훈’을 이어오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났다.
양복 한 벌로 보훈을 시작한 이유가 뭡니까.
2010년 해병대에 입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했습니다. 많은 장병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죠. 제대할 무렵에는 사격 훈련 중 사고로 후임이 순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후임의 49재를 마친 뒤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는데 그 기간에도 나라를 위해 안장된 국가유공자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 뒤에는 지금도 묵묵히 헌신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분들께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맞춤정장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양복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제대 후 맞춤양복점이 밀집한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을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낮에는 원단시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양장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남자는 중요한 순간이 되면 결국 정장을 입습니다. 그 점에 매력을 느껴 결국 다른 일을 정리하고 약 2년 반 동안 본격적으로 수제 맞춤양복 제작을 배웠습니다.
인천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고향이 인천입니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뒤 실력을 갖춘 재단사들과 함께 2014년 10월 지금의 매장을 열었습니다. 인천에 맞춤양복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인천은 개항을 통해 서양식 복식 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온 지역 중 하나입니다. 경동 일대에는 한때 수많은 양복점이 모여 ‘양복 거리’를 이룰 정도로 맞춤양복의 전통이 깊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전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인천의 양복 문화 전통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인천에서 유일하게 핸드메이드 맞춤양복을 제작하고 있어요.
양복을 선물한 첫 국가유공자는 누구였습니까.
2022년 6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에게 맞춤정장을 선물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개인이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을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인천보훈지청에 먼저 연락했고 2024년부터 업무협약을 맺어 대상자 선정과 지원 과정을 체계화했습니다. 현재는 매달 인천·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국가유공자 한 분을 선정해 맞춤정장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또 선정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국가유공자분들께는 맞춤정장 구매 시 20%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고요.
양복 한 벌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걸립니다. 수천 번의 공정을 거치고 손바느질만 1만 번 이상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맞춤정장이 기존 패턴을 수정하는 방식인 것과 달리 저희는 재단사가 직접 체형과 어깨 각도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 고객 한 사람만을 위한 패턴을 새로 제작합니다. 또 제작 과정의 대부분을 손바느질로 진행하기 때문에 착용감이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럽습니다.
비용도 적지 않겠네요.
국가유공자분들께 선물하는 맞춤정장은 한 벌당 약 150만 원 상당입니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그분들의 헌신에 비하면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유공자분들의 옷을 만들 때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6·25전쟁이나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연세가 많다 보니 허리가 굽거나 체형 변화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맞춤정장보다 훨씬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다 다리를 잃은 분의 경우 의족을 착용하고 계셔서 옷을 입고 벗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바지 옆선에 지퍼를 달아드리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몸에 맞는 옷이 아니라 그분의 현재 상황과 생활 방식까지 고려해 제작하기 때문에 상담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양복만 선물하는 게 아니라고요.
정장이 완성되면 기념촬영도 함께 진행합니다. 완성된 옷을 입은 사진을 액자로 제작해 선물하고 있습니다. 옷으로 기억을 남기고 그 기록을 사진으로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뜻에 공감해 주시는 사진작가가 재능기부로 촬영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사진들을 모아서 전시회도 열고 싶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많은 분이 ‘평생 처음 받아보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장 안감에 이름과 군번을 자수로 새겨드리는데 그걸 보고 눈시울을 붉히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꼭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이 양복은 무료가 아닙니다. 그 값은 이미 선생님께서 젊은 날의 헌신으로 치르신 것입니다.’ 사실 저희가 더 감사해야 할 분들이니까요.
대표님에게 이 양복 한 벌이 어떤 의미인가요.
‘위대한 헌신에 걸맞은 명품으로 보답한다’가 제 모토예요. 이 정장은 단순한 옷 한 벌이 아니라 그분들의 헌신을 기리고 존중하는 상징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 헌신 위에서 오늘을 살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옷에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국가유공자에게 정장을 선물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요.
현재 한국맞춤양복협회 인천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전국 회원사가 함께 국가유공자분들께 양복을 선물하는 일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산과 여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고령의 국가유공자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활동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장 좋은 보훈은 무엇일까요.
보훈의 방식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일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또 다른 보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보훈의 실천이 아닐까요?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