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반도체 리스크'를 예방하려면 내수, 특히 가계 경제력을 강화해야만 하고, 그 길은 소비 성향이 높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강화에 있다. 그리고 이는 대다수 국민이 노동 소득만으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의 건설을 의미하고, 강한 민주주의의 경제적 토대가 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역사 속에서 신기술과 그에 따른 산업구조의 재편 등은 신세상을 열었다. 신세상은 새로운 눈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익숙한 문법으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스피 8000을 누가 예상했는가? 또한, 한국이 1분기에 OECD 최상위권 성장률(덴마크 1.89%에 이은 1.83%)을 기록하자 OECD는 6월 세계경제 전망에서, 올해 세계 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0.6% 포인트 내리는 가운데 한국의 수정된 성장률 전망치는 2.6%로 지난 3월의 전망치보다 0.9% 포인트나 올렸다. 어떻게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성장률을 50% 이상이나 올릴 수 있는가? OECD는 3개월 전까지도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자신의 문법으로 해석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주지하듯이, 신세상은 AI 혁명에 기반한 산업체계 재편의 결과물이다. 2022년 말 챗GPT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1조 달러 밑을 맴돌았던 엔비디아의 기업가치가 25년 가을까지 5조 달러를 돌파한 사건이 산업체계 지각변동의 상징이다. 기업가치가 1조 달러를 넘는 기업은 페트로차이나 해프닝을 제외하면 2018년 8월 이전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일본이나 유럽 기업들도 들어가지 못한 1조 달러가 넘는 클럽에 한국의 두 기업이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AI 기반의 산업생태계로 재편되며 거대한 전환을 겪고 있는 역사 현장의 한가운데 한국이 서 있음을 보여준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6 K-AI반도체 성장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6.4 (ⓒ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런데 산업생태계 재편을 주도하는 미국과 한국은 차이도 존재한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을 차지하나 미국의 빅테크 7대 기업(엔비디아·애플·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테슬라)의 비중이 S&P500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 안팎에 불과하다. 또한, 2025년 반도체 수출이 한국 전체 수출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4.4%와 9.2%였다. 그런데 26년 1분기에는 각각 35.6%와 15.6%로 급증하였다. 그리고 다시 5월에는 반도체 수출의 비중이 42.3%까지 치솟았다. 반면 내수의 중심인 가계 소비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1분기 45.7%에서 올해 1분기에는 45.2%까지 하락하였다.
사실, 한국 반도체는 반도체 산업생태계를 설계하는 미국 AI 산업의 종속변수다. 이는 AI 산업의 성장 패턴이나 구조 등의 변화로부터 한국 반도체 역시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5월까지 누적액 기준으로 엔비디아는 2023년 이래 2250억 달러 지출과 4780억 달러 수입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나머지 빅테크들은 2022년 이래 AI 관련 지출이 수입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3130억 달러 지출과 220억 달러 수입을, 알파벳(구글)은 2870억 달러 지출과 250억 달러 수입을, 마이크로소프트(MS)는 2660억 달러 지출과 310억 달러 수입을, 메타는 2300억 달러 지출과 30억 달러 수입을 기록 중이다. 마찬가지로, 오픈AI(Open AI)는 2020년 이래 550억 달러 지출과 280억 달러 수입을, 엔트로픽(Anthropic)은 2021년 이래 330억 달러 지출과 65억 달러 수입을, xAI는 2023년 이래 200억 달러 지출과 8억 달러 수입을, 딥시크(DeepSeek)는 2023년 이래 3억 달러 지출과 1억 달러 수입을 기록 중이다. 시장 일각에서 현 단계의 AI 사업모델이 지속 가능하냐에 대해 의심하는 배경이다. 물론, 엔비디아가 GPU 소비처를 다양화하고 빠른 수익 실현이 보이는 시장이 다시 형성되고, 여기에 한국 반도체가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한다면 호황도 지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경로가 바뀌면 특정 기업 및 부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리스크로 변한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문법이 있다는 사실도 안다. 불균형이 너무 심해지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리스크'를 예방하려면 내수, 특히 가계 경제력을 강화해야만 하고, 그 길은 소비 성향이 높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강화에 있다. 그리고 이는 대다수 국민이 노동 소득만으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의 건설을 의미하고, 강한 민주주의의 경제적 토대가 된다. 현재 한국 사회의 대다수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노동 소득만으로 존엄을 지키기 어렵다. 그 결과가 극우 반동의 반복이다. 높은 반도체 의존도는 한국은행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60년 이래 최고 수치(전기 대비 9.2% 상승)라고 대통령이 SNS에서 언급한 1분기 국민총소득(GNI)의 성장률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총액으로 보면 대단한 성취이지만, 가계와 기업과 정부의 소득이 포함되어 있는 국민총소득 중 가계의 처분가능소득만을 보면 0.3% 증가에 불과했다. 일반 국민은 의아해할 수 있다. 얼마 전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1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기준으로 1.8%(수정치)였기 때문이다. 1.8%와 9.2%는 간극이 너무 크다. 이 차이 중 6.9% 포인트의 대부분이 반도체 가격의 상승효과였다. 나머지 차이의 대부분이 해외로부터 벌어드린 투자소득 증가(3조 4000억 원)의 효과였다. 이처럼 1분기에 기록한 사상 최대의 국민총소득 증가율 역시 반도체 수출의 힘이었다.
그런데 가계 가처분소득의 증가율을 보면 가계 경제와 내수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올해 1분기 월평균 실질임금 총액은 384만 7000원으로 작년 1분기의 379만 7000원보다 5만 원(1.3%)이 증가했다. 그렇지만 이는 2022년 1분기의 387만 2000원보다 낮은 수준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삶은 '잃어버린 5년'을 겪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22년 1분기와 비교해 노동자의 실질임금 총액은 6.0%가 증가했다. 그러나 일인당 노동자의 실질임금 총액은 오히려 0.7%가 줄어들었다. 총액 증가율은 노동자의 절대적 규모의 증가(6.7%)에 따른 착시효과인 것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12.3%)은 명목임금 상승률(11.5%)보다 높았다. 또한, 노동자 이외 가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자영업자 1인당 월평균 실질소득을 보면, 1999년 212만 2000원을 기록한 후 지난해 143만 8000원까지 하락하였다. 이는 임금노동자 중 가장 저임금 계층인 중소기업의 임시직·일용직 월평균 실질임금 총액인 145만 4000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내수가 취약해지며 수출 의존도가 증가하고, 수출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용과 임금 인상 억제, 비정규직 선호, 생산자동화,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으로 인건비 부담을 낮춘다. 그 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그리고 중소기업의 협상력 약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의 임금 격차가 구조화되었다. 올해 1분기 중소기업의 실질임금 총액은 대기업의 49% 수준으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상용직 노동자, 임시직.일용직 노동자, 그리고 대부분 자영업자 등의 소득이 억압된 결과 내수 취약성은 구조화되고, 이는 다시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의 고용이나 자영업 종사자의 소득 억압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가 <표 1>이 보여주는 지난 35년간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의 급격한 하락이고, '가계 경제의 좀비화'다.
표 1. 가계 1인당 실질 가처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출처=한국은행, 국가데이터처)
여기에 앞에서 살펴본 반도체 붐은 새로운 불평등을 낳고 있다. 전대미문의 반도체 부문의 이익 실현은 반도체 대기업의 상용직 임금 총액을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 문제는 낙수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표 2>에서 보듯이 올해 1분기의 부문별 노동자의 실질임금 총액을 보면, 반도체 호황을 겪었던 4년 전에 비해 반도체 대기업의 상용직 임금 총액은 18%가 증가했다. 게다가 이 수치에는 삼성전자의 성과급이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반도체 대기업의 상용직 노동자를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의 임금은 모두 후퇴했다는 점이다. 대기업 중에서는 반도체가 아닌 대기업 상용직 노동자의 임금도 줄었고, 반도체 부문도 반도체 대기업의 임시직·일용직 노동자나 반도체 중소기업의 상용직 노동자 및 임시직·일용자 모두 임금이 후퇴하였다.
표 2. 부문별 실질임금 변화, 2022년과 2025년 그리고 2026년(1분기 기준).(출처=고용노동부, 국가데이터처, 한국은행.)
이는 전대미문의 수출액과 경상수지 흑자액, 경제 성장률 등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없었음에서도 확인된다. 1분기 기준 2022~2025년간 연평균 일자리 증가율은 1.5%였으나 반도체 붐이 진행된 지난 1년은 1.0%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일자리 질이 크게 악화하였다. <표 3>에서 보듯이, 증가 규모가 떨어지는 가운데 일자리는 반도체 붐 전후 상용직 중심에서 임시직.일용직 중심으로 바뀌었다.
표 3. 반도체 붐 전후 부문별 일자리 변화율.(출처=국가데이터처, 고용노동부)
그 결과 반도체 대기업 상용직 노동자 임금은 가장 낮은 부문 종사자인 중소기업 임시직·일용직(자영업자) 평균 소득의 2022년 8.8배(8.9배)에서 2026년 11.3배(11.5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이처럼 반도체 붐은 노동의 양과 질 모두 후퇴시키는, 이른바 '노동 없는 성장'이라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1분기 국민총소득 증가율을 언급하며 "경제 도약의 결실이 국민 모두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배경이다. 다짐을 실현하는 방법은, 지금까지의 칼럼에서 소개했기에 생략하겠다. 문제는 실천에 대한 의지와 속도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