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들에게 실천적 함의는 명확하다. 이제 AI의 중요성을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진짜 질문은, 기업이 AI가 가능하게 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재설계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Harvard Business School)의 카림 라카니(Karim Lakhani) 교수는 AI 시대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을 이렇게 정리했다.
실제로 AI를 둘러싼 논의는 이미 기술 도입 여부를 넘어 조직 혁신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표한 ‘2026 업무동향지표(Work Trend Index)’ 역시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조사는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글로벌 지식 근로자 2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Microsoft 365 생산성 데이터, 코파일럿 활용 패턴 분석 등을 기반으로 진행됐으며, 한국 관련 지표도 별도로 공개됐다.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는 더 이상 기업의 고민이 아니다. 생성형 AI는 이미 업무 현장 깊숙이 들어왔고, 직원들은 이를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제 기업이 마주한 진짜 과제는 AI 도입이 아니라 조직 혁신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2026 업무동향지표’는 AI 시대 경쟁력이 기술 자체보다 조직 설계와 운영 방식에 달려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한국 시장 데이터는 AI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실을 보여준다. 직원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조직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6 업무동향지표(2026 Work Trend Index) 표지 (자료 제공: 마이크로소프트)
AI에 대한 위기감은 높은데 조직은 준비되지 않았다
조사 결과 한국 직장인의 78%는 AI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질 것이라고 답했다. 글로벌 평균인 6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활용하려는 의지와 위기감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반면 조직 차원의 지원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더십이 AI에 대해 명확하고 일관된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글로벌 평균인 26%보다 낮은 수준이다. AI 혁신을 시도했을 때 결과와 관계없이 보상을 받는다고 답한 비율도 7%에 그쳤다. 글로벌 평균은 13%였다.
이번 조사 결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직원은 뛰고 있는데 회사는 아직 걷고 있다”에 가깝다.
직원들은 이미 AI를 활용해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평가 체계와 보상 구조, 조직 문화는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전환의 역설(Transformation Paradox)’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글로벌 조사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45%가 업무를 재설계하기보다 기존 목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답했다. 한국도 43%가 같은 응답을 내놨다.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업무 방식을 시도하려는 개인의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조직 시스템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의미다.
‘2026 업무동향지표’에 따르면 AI 활용 역량과 조직 준비도가 모두 높은 ‘프론티어(Frontier)’ 그룹은 전체의 19% 수준에 불과한 반면, 절반은 여전히 성장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제공: 마이크로소프트)
AI는 도구를 넘어 사고 파트너가 되고 있다
실제로 AI는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지식 노동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Microsoft 365 코파일럿 활용 데이터와 10만 건 이상의 사용 패턴을 분석한 결과, 전체 대화의 49%가 정보 분석, 문제 해결, 대안 평가, 창의적 사고 등 인지적 업무를 지원하는 데 활용됐다. 협업·커뮤니케이션은 19%, 정보 탐색은 15%, 문서 작성과 산출물 생성은 17%를 차지했다.
이는 AI 활용 수준이 높아질수록 단순 업무보다 고부가가치 업무에 AI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AI가 단순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돕는 협업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응답자의 66%는 AI 활용 이후 더 많은 시간을 고부가가치 업무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답했다. 또한 58%는 1년 전에는 만들기 어려웠던 수준의 결과물을 생산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응답자의 54%는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생산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번 분석은 특히 AI 시대 새로운 고성과자 집단으로 ‘프론티어 전문가(Frontier Professionals)’를 제시한다. 이들은 단순히 AI 도구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작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업무 흐름 자체를 재설계하는 사람들이다.
글로벌 기준 프론티어 전문가 비중은 16%지만 한국은 12%에 머물렀다. 그러나 성과 차이는 분명했다. 글로벌 프론티어 전문가의 80%, 한국 프론티어 전문가의 75%는 “1년 전에는 불가능했던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이 이러한 프론티어 전문가를 조직 내에서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통해 전체 조직 역량을 끌어올릴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응답자의 50%는 AI 결과물에 대한 품질 관리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꼽았고, 46%는 비판적 사고를 중요하게 평가했다. 한국에서도 각각 48%, 40%가 같은 응답을 내놨다.
또한 글로벌 응답자의 86%, 한국 응답자의 82%는 AI 출력물을 최종 답이 아닌 출발점으로 인식하며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다고 답했다.
특히 프론티어 전문가들은 AI와 인간의 역할을 더욱 의도적으로 구분했다. 업무 시작 전 AI와 인간의 역할을 명확히 나눈다는 응답은 한국 기준 프론티어 전문가가 48%, 일반 응답자가 34%였다. 일부 업무를 의도적으로 AI 없이 수행해 자신의 역량을 유지한다는 응답도 각각 31%, 22%로 차이를 보였다.
조사에서는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인간이 무엇을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간과 AI의 협업 방식을 위임(Delegation), 협업(Collaboration), 질문(Asking), 탐색(Exploration) 등 네 가지 모드로 구분하며 업무 재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료 제공: 마이크로소프트)
AI와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간과 AI의 협업 방식을 네 가지 모드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위임(Delegation)’이다. 인간이 방향을 설정하고 AI 에이전트가 실행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반복 업무나 리서치, 요약 등에 적합하다.
두 번째는 ‘협업(Collaboration)’이다. 인간과 AI가 여러 차례 상호작용하며 결과물을 발전시키는 형태로 기획서 작성이나 전략 수립, 분석 업무 등에 활용된다.
세 번째는 ‘질문(Asking)’이다. 사실 확인이나 일정 조회, 문장 수정처럼 빠른 응답이 필요한 업무에 사용된다.
마지막은 ‘탐색(Exploration)’이다. 새로운 업무나 낯선 워크플로우에 AI를 적용하기 전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하는 단계다.
이번 연구는 프론티어 전문가들의 핵심 역량이 특정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업무 성격에 따라 이 네 가지 모드를 적절히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방향 설정과 책임을 맡고 AI의 실행력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AI 시대 경쟁력은 기술보다 학습하는 조직에 있다
결국 AI 시대 경쟁력은 개인의 기술 활용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조직이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고, 현장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며, 이를 새로운 업무 방식으로 정착시키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조직을 ‘학습 시스템(Learning System)’으로 정의한다. AI를 도입하는 기업이 아니라 AI를 통해 배우고 진화하는 기업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AI 성과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조직 문화와 관리자 지원, 인재 관리 관행 등 조직적 요소의 영향력은 67%로 나타났다. 개인의 AI 마인드셋과 행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32%에 그쳤다. AI 활용 성과를 만드는 힘이 개인보다 조직에서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실행 과정에서는 중간관리자의 역할도 중요하게 나타났다. 별도 조사 결과 관리자가 직접 AI 활용 사례를 보여줄 경우 AI 가치 체감, AI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에이전틱 AI에 대한 신뢰도가 모두 크게 상승했다. 조직 내 심리적 안전감이 확보된 환경에서는 AI 활용 빈도와 준비도 역시 높게 나타났다.
또한 선도 기업들의 공통점으로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업무 프로세스에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이 꼽혔다. 현장에서 생성되는 신호와 학습을 조직 전체가 공유하고 운영 방식에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조직 고유의 지식과 노하우를 마이크로소프트는 ‘고유 지능(Owned Intelligence)’이라고 정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축적되고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는 설명이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많은 기업이 기술 도입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이 달라지고 있다. 어떤 AI를 사용할 것인가보다 조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조원우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 (자료 제공: 마이크로소프트)
조원우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AI가 더 많은 실행을 담당할수록 인간의 판단력과 리더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도 AI 도입을 넘어 업무 방식과 협업 구조를 혁신하고 이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기 위한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은 이미 뛰기 시작했다. 이제 조직이 걸음을 재촉해야 할 차례다. AI 시대의 성패는 기술보다 조직 혁신과 학습 속도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 출처: 마이크로소프트 ‘2026 업무동향지표(Work Trend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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