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기억하는 음식으로 주먹밥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먹밥은 아직 슬픈 기억의 저장 안에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오래도록.
박찬일 셰프
전쟁 음식으로 주먹밥을 떠올리는 세대는 이제 거의 돌아가셨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여전하다. 간을 하고 두 손으로 적당히 눌러서 모양을 잡는. 한입 베어 물 때 넉넉하게 들어차던 포만감이 있다. 비상시에 휴대하기 좋고 밥 좋아하는 우리에게 맞춤한 음식이었던 주먹밥을 기억하기.
주먹밥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비상식량 내지는 전쟁 음식으로 이해하는 게 우리 세대일 듯하다. 그렇다고 실제 먹어본 경험은 또 별로 없다. 윗세대 어른들의 기억과 책에서 종종 그 거칠다는 궁핍의 음식을 떠올려보곤 하는 정도다. 아마도 주먹밥은 한국 같은, 촉촉하고 쫄깃한 쌀밥 문화를 가진 극동 아시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다. 밥 지어서 간하고 쥐기만 하면 맞춤하게 모양이 딱 떨어지는 한국식 주먹밥이 아닐까 싶다.
햄버거가 패스트푸드라고 하지만 주먹밥에 댈 게 아니다. 맛이며 영양 문제가 아니라 속도에서 그렇다. 햄버거는 고기를 양념해서 굽고 이미 구워 놓은 빵 사이에 끼워 넣어 먹는데, 어떻게 패스트푸드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고기란 익히자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거리의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는 주방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안쪽의 사정은 결코 '패스트'하지 않다. 산업 시대를 이끌어간 표준 생산의 거인 포드를 배출한 나라의 음식답게 햄버거 가게 주방은 한 치의 비효율까지도 배격하는 완벽하고 합리적인 동선을 짜 놓는다. 거기에 뛰어난 장비를 때려 넣은 공간이다. 그렇지만 햄버거 하나를 만드는데 복잡하고 오랜 과정이 소요된다. 고기를 지지고 빵을 데우고 미리 썰어둔 채소를 켜켜로 쌓고 소스를 뿌리는 과정이 지난하다. 내가 해봐서 안다. 빠르지 않은 햄버거를 패스트푸드라고 부르는 건 순전히 느려터진(?) 유럽식 음식을 비웃느라고 만든 말일 것 같다. 내지는 그걸 늘 먹어야 하는 미국인 자신들의 처지를 사뭇 행복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사가 아닐까 싶다. 우린 빨리 만든 음식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은 자들의 명명일 테다.
한국은 오래 공을 들이고 발효시키고 저장하고 숙성해서 만드는 음식이 많긴 하지만 또 패스트푸드의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빔밥을 보라. 국밥은 또 어떤가.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넣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저, 여기 국밥 하나 주…"
이 대목에 이미 턱, 국밥이 놓인다. 국밥집 주인아주머니는 독심술을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뿐 아니다. 우린 외래 음식도 패스트푸드로 만들어버린다. 짜장면이 대표적이다. 도입된 초기에는 상당히 고급 음식이었다고 한다. 청요리(淸料理)집에서 느긋하게 먹는 국수였다. 그러다가 밀가루가 흔해지고 중국집도 많아지면서 한국인의 국민음식이 된다. 이 무렵 그 검은 국수는 갑자기 패스트푸드로 변한다. 중국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넣고 단무지 종지에 식초를 치려는 순간 '짠' 하고 짜장면이 나타난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패스트푸드 사랑 정신을 꿰찬 화교 사장님의 센스가 발휘된 탓이다. 짜장면이 배달 음식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순전히 속도라는 대원칙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초중고 내내 소풍이란 걸 갔다. 지금은 체험학습이나 현장학습이라는 바람직한 이름이 된 이 행사는 오랫동안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원족이라 불렀다. 멀리 걸어가는 것이란 의미다. 우리에게 소풍은 곧 김밥과 같은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1960년대 이후의 관습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소풍 간다면 흔히 주먹밥을 싸서 다녔다는 것이다. 싸되, 쌀밥이냐 잡곡이냐 소에 무엇을 넣느냐 하는 게 관심사였다고도 한다. 강점기처럼 보리밥에 단무지나 두어 개 다져 넣는 게 흔했고 사는 집 아이는 밥에 온갖 고명을 넣어 화려하게 빚어서 쥔 주먹밥을 들고 왔다. 주먹밥에도 빈부가 있었던 것이겠지. 속도와 휴대성이라는 뛰어난 전략 상품인 주먹밥이 소풍은 물론이고, 전쟁 상품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경북 포항시청 대잠홀 앞에 마련된 6.25전쟁 음식 체험장에서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주먹밥을 시식하고 있다. 2025.6.25.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리에게 주먹밥은 전쟁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한국은 최신예 전투기를 직접 만들고 세계가 탐내는 대포와 전차를 생산하는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나는 국방부에서 가장 잘하고 있는 사업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삼촌, 아버지가 전장에서 사라졌는데 유체를 모시지 못한 일이 많았다. 처절한 전쟁일수록 죽은 자의 몸은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그래서 남은 자의 아픔이 더 컸다. 유해 없는 묘를 모신 후손의 마음이랴. 일찍이 아버지가 여읜 후에 나는 아버지란 이름만 들어도 훅, 눈물이 난다. 번영된 나라에서 명대로 살다 가신 아버지도 그럴진대. 그들은 포탄이 퍼붓는 참호 속에서 그렇게 스러졌다. 그들이 싸우던 전선에 배달되던 음식이 바로 주먹밥이었다. 취사병이 소금 뿌려 꼭꼭 쥐어 올려보낸 주먹밥을 먹고 총을 들었을 것이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유해발굴과 봉송 장면이 나올 때 내 눈은 뜨거워졌다. 하필 주먹밥을 먹고 싸우던 가난한 조국의 병사들이어서 더 슬펐다.
젊은 세대는 주먹밥을 보고 전쟁 시대의 음식을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다. 나이를 꽤 먹은 나도 그 정도의 자장(磁場)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나이를 먹은 터라 종종 주먹밥을 먹게 될 때는 흠칫 놀라곤 한다. 이를테면 신당동 떡볶이집 같은 데서다. 주먹밥은 어쨌든 민족의 밥상에서 떠나지 않는구나. 그 모양새가 오래전 어머니가 막 쥐여주시는 주먹밥을 닮았다. 맨밥에 짭짤한 김 가루를 묻혀 내는 방식이다. 매운 떡볶이를 먹고 뭔가 아쉬울 때 다른 곡물로 배를 채우는 용도로 설계된 메뉴 같다. 뜨겁고도 매운 떡볶이를 씹다가 주먹밥 한 덩이를 입에 넣으니 이런 곁 메뉴를 파는 주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고소한 주먹밥이 매운 기를 씻어낸다. 게다가 한국인은 밥 배가 따로 있으니 썩 어울리는.
전쟁을 기억하는 음식으로 주먹밥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먹밥은 아직 슬픈 기억의 저장 안에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오래도록.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