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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가장 한국적으로 맛보는 법, 콩국수

녹진하고 고소한 국물에 시원한 반전이 있는 여름 별미, 바로 콩국수다. 입맛 없을 때 간단하게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름철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까지 채워주는 든든한 건강식이다. 콩국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라멘으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한 일본인 셰프를 만났을 때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갈비나 삼겹살 혹은 일본인이 즐겨 찾는 닭한마리나 백숙을 예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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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진하고 고소한 국물에 시원한 반전이 있는 여름 별미, 바로 콩국수다. 입맛 없을 때 간단하게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름철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까지 채워주는 든든한 건강식이다.

콩국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라멘으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한 일본인 셰프를 만났을 때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갈비나 삼겹살 혹은 일본인이 즐겨 찾는 닭한마리나 백숙을 예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콩국수요.“

예상치 못한 답에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한 일본인 셰프가 한국에 오면 꼭 콩국수집에 데려갑니다. 일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오직 한국만의 미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콩국수를 세계적으로도 드문 음식이라고 평가했다. 아시아 곳곳에 두유를 활용한 음식은 많지만 걸쭉하게 간 콩물을 차갑게 식혀 국수를 말아 먹는 방식은 한국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아시아에서 콩물을 사용하는 음식은 흔합니다. 하지만 콩국수처럼 콩의 입자감과 풍미를 그대로 살린 음식은 드물어요. 대부분 두유 형태로 묽게 만들거나 따뜻하게 먹죠. 일본에서도 두유를 라멘이나 우동 육수에 활용하지만 가쓰오부시나 여러 육수를 섞어 냅니다. 콩국수처럼 콩 자체의 맛을 전면에 내세운 면 요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겁니다.“

그는 콩국수가 세계에 알릴 만한 K-푸드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독특한 맛과 형태는 물론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지역적 다양성까지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9세기 조리서에도 등장
실제로 콩국수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세기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콩을 물에 불려 살짝 데치고 곱게 갈아 체에 밭친 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밀국수를 말아 먹는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오늘날 콩국수와 매우 유사한 조리법이다.

19세기 중엽 양반가에서 필사된 ‘주식방문(酒食方文)’에도 콩과 밀가루를 이용한 국수 조리법이 기록돼 있다. 콩을 가루 내 밀가루와 섞어 국수를 만든 뒤 장국이나 깻국에 말아 먹는 방식이다. 당시에도 콩과 국수의 조합이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콩국수를 농민들이 만들어 먹던 서민 음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는 궁중이나 반가의 음식 문화가 민간으로 전해지며 발전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대표적인 예가 임자수탕이다. 18세기 후반의 세시풍속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깨와 잣을 갈아 만든 백마자탕에 밀국수를 말아 먹는 임자수탕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들깨국수나 콩국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밀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밀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국수는 잔칫날이나 손님 접대 때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콩국수가 대중화된 것은 밀가루 보급이 본격화된 이후의 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콩국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설탕과 소금 논쟁이다. 지역마다 콩국수에 무엇을 넣어 먹느냐를 두고 지금도 신경전이 벌어진다. 서울·경기 지역은 소금파가 많고 전라도 지역은 설탕파의 비중이 높다. 소금을 넣으면 콩 본연의 고소함이 살아나고 설탕을 넣으면 달콤함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정답이 없기에 끝나지 않을 논쟁이다.

콩국수의 매력은 맛에만 있지 않다. 건강식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콩은 예로부터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한 식품이다. 대두의 단백질 함량은 35~45%에 달한다. 여기에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이소플라본과 식이섬유, 식물성 스테롤이 풍부하다. 서리태에는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과 비타민 E도 다량 함유돼 있다. 완전한 식물성 식품이라는 점에서 채식주의자에게도 훌륭한 선택지다.

콩국수 맛보고 눈물 흘린 이유
이 때문일까. 최근 미식계에서 콩국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국내 파인다이닝 셰프들은 콩국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는 트러플 향을 더한 콩국수를 선보였고 ‘알라프리마’의 김진혁 셰프는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활용한 콩국수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콩국수의 진짜 힘은 화려한 변주에 있지 않다. 몇 가지 단순한 재료만으로도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건드리는 데 있다. 아시아 사찰음식 연구로 유명한 토마스 두보이스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관사에서 콩국수를 맛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내 영혼 깊숙이 와닿았어요. 가끔 음식이 너무 압도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진관사에서 만난 콩국수가 그랬죠.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삶의 궤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해주신 음식처럼요.“

어쩌면 콩국수의 매력은 맛이 아니라 기억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 그릇의 시원한 콩국수가 누군가에게는 여름의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고향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채상우

먹는 게 좋아 미식을 좇는 일간지 기자. ‘헤럴드경제’에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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