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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 사이에서 돌아본 국가안보의 의미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넘어 준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전해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3월은 나에게 유난히 특별한 달이다. 낭만과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 시간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생도 시절을 보내던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서툴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던 그 시절은, 시간이 한참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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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넘어 준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전해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권영석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3월은 나에게 유난히 특별한 달이다. 낭만과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 시간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생도 시절을 보내던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서툴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던 그 시절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기념일과 생일을 챙기며 설렘을 이어갔고, 그중에서도 3월 26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날이 되었다. 바로 아내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일란성 쌍둥이다. 처형 역시 같은 날 생일을 맞는다. 여기에 더해 3년 뒤 태어난 처남마저 3월 26일이 생일이다. 덕분에 처가에서는 세 자녀의 생일을 하루에 함께 축하하는 특별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한 솥에서 끓인 미역국을 나누고, 한자리에 모여 축하를 나누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따뜻하다. 이런 우연의 반복 속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존재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제11회 서해수호의 날'을 앞둔 25일 천안함 피격으로 산화한 고 박경수 상사 모교인 경기 수원시 팔달구 삼일공업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내빈들이 서해수호 55용사를 기리며 묵념을 하고 있다. 2026.3.25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런데 2010년 3월 26일은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남아 있다. 당시 나는 부산에서 근무 중이었고,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아내의 생일을 전화로 축하해 주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그날 밤,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는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평소와 다름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평범한 하루의 끝자락, 그 바다 역시 고요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 9시 22분, 갑작스러운 폭발이 함정을 덮쳤다. 선체는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고, 장병들은 차가운 바다 속으로 내던져졌다. 전우를 구하려는 외침과 구조 요청이 뒤섞인 가운데, 배는 빠르게 기울며 가라앉았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당시 천안함에는 104명의 장병이 타고 있었다. 그중 58명은 구조되었지만, 46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평범한 일상을 뒤로한 채 바다를 지키던 이들이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형제였으며, 친구였다. 이제 막 삶을 시작하던 젊은 청년들도 있었다.

그날 이후 3월 26일은 더 이상 개인적인 기억만으로 남아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생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실의 날이다. 개인의 일상과 국가의 비극이 한 날에 겹쳐 있다는 사실은, 안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는지를 조용히 일깨워 준다.

현재 나는 대전대학교 군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래의 장교를 꿈꾸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안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아직은 어리지만, 그 눈빛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은 단순히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길에 들어섰다.

이른 아침부터 이어지는 점호와 체력단련, 그리고 쉽지 않은 학업 과정 속에서도 이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 나간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 법도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안보의 출발점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지막을 지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무인체계, 정밀유도무기 같은 기술이 전장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발전할수록 전쟁의 모습 또한 더 복잡해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충돌이 이어지고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 역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서해를 지켜낸 장병들의 희생과,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길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의 노력이 이어지는 한, 대한민국의 안보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하루,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시간 역시 그 위에 놓여 있다.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넘어 준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전해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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