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본격 시행된 농어촌 기본소득은 주민을 단순 수혜자가 아닌 '지역 지킴이'로 인정하는 사회적 응답이자 혁신적 정책 실험이다. 지역화폐를 통한 소비의 선순환은 무너져가던 생활 인프라를 지탱하는 방어선이 되고 있다. 향후 '햇빛소득' 등과의 연계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본사회의 토대를 마련하고, 사람이 머무는 농촌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송원규 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정책실장 지역 위기의 악순환을 끊는 정책 실험
우리 농어촌은 지금 중요한 전환의 시점에 서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00년 14.6%였던 농어촌 고령화율은 2024년 26.6%(면 단위 34.1%)로 급증했으며, 인구 3천 명 이하의 과소화 지역 역시 2025년 전체 읍·면의 절반(52%)을 넘어섰다. 이러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지역경제의 기반이 약화되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주민이 줄어들면 소비가 감소하고, 가게가 문을 닫고, 생활서비스가 사라진다. 그 결과 다시 주민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단순한 인구 문제를 넘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지역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올해 시작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새로운 정책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인구 감소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매월 15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시범사업의 첫 지급이 지난 2월 26일 시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신안군·장수군·청양군 등 10개 군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지역사랑상품권 형태로 지급된다. 이는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닌 지역경제 활성화의 정책적 장치로서 의미가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농어촌을 만들기 위한 정책 실험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지역 경제와 생활 인프라를 지탱하는 방어선
농어촌 기본소득의 특징은 '지역 안에서의 경제 순환'을 정책 설계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생활권 내에서 사용하도록 한 것은 농어촌 지역에서 줄어든 소비를 다시 지역 내부로 돌리기 위한 장치이다. 지역경제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득만이 아니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상점과 서비스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지역 소비를 회복시키고 지역 상권을 지탱하는 하나의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정책 시행과 함께 일부 지역에서는 작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신안군에서는 그동안 없던 전자제품 상점이 새로 문을 열고, 청양군에서는 문을 닫았던 가게가 다시 영업을 시작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장수군에서는 작은 푸드코트가 처음으로 생겨 주민들이 모이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농어촌 기본소득이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기대를 보여준다.
27일 오전 충남 청양군 청양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들이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6.2.27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수혜자에서 지역을 지키는 '주체'로의 전환
농어촌 기본소득의 또 다른 의미는 농어촌 주민의 역할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농어촌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며 국토를 유지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동안 농어촌 정책은 주로 산업이나 생산 중심으로 접근해 왔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지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주민 공동체가 농어촌을 유지하는 핵심 주체라는 점을 정책적으로 인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민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지역을 지키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열쇠, '햇빛소득'
물론 농어촌 기본소득이 본 사업으로 안착하고 지속가능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원 마련이다. 시범사업 단계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추진되지만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를 대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역의 햇빛이나 바람 같은 재생에너지 자원을 활용하여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햇빛소득'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농지 보전과 전기 생산을 병행하는 '영농형 태양광' 등의 사업을 마을 주민이 주도하고 발전 수익을 공동체가 공유하는 방식은 기본소득의 재원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과제에도 부합한다.
사람이 머무는 농어촌, 소멸을 막는 확실한 출발점
"사회가 무너지기 전에 사람부터 무너진다."
인구 감소 지역의 어려움은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단기적인 소득 지원을 넘어 주민들이 지역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여건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번 정책 실험이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람이 머무는 농어촌, 그것이 농어촌 소멸을 막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