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가격 충격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비상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시장 원리와 정부 정책의 균형이다. 즉 시장 기능은 최대한 유지하되, 외부 충격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신속하고 정교하게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단순한 가격 통제를 넘어 국제 불안이 국민의 삶을 직접 위협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을 보여주는 시험대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
2월 28일 미국과 이란 간의 분쟁이 발생한 이후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유례없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분쟁 이전 배럴당 70달러 안팎을 보이던 두바이유는 지난주 장중 120달러까지 치솟았고, 아시아의 대표 석유제품 지표인 싱가포르 경유 가격도 2월 27일 배럴당 93달러에서 193달러까지 급등하며 두 배 이상 뛰었다.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해상 운송로의 불안이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을 동시에 밀어 올리는 충격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동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충격을 비껴가기 어렵다. 실제로 전국 평균 주유소 가격은 보통휘발유가 2월 27일 리터당 1692원에서 지난주 최대 1906원으로 올라 12% 이상 상승했다. 물류와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유 가격도 같은 기간 1597원에서 1931원으로 20% 이상 급등하며 휘발유보다 높은 가격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중동 분쟁이 촉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유류비 부담을 넘어 물류 및 생산 전반을 압박하며 국민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확산되고 있다.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그 충격은 국가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3월 13일 0시를 기해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것은 시장 불안에 대한 신속한 대응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를 근거로 정유사 공급가격 상한을 리터당 보통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했다. 국제가격 급등이 국내 경제에 전이되는 속도를 늦추고,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첫 주말을 맞은 15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2026.3.15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물론 경제학적으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가격이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시장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할 경우 시장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의미는 단순한 가격 통제에만 있지 않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과 동시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 장치를 함께 마련하며 시장의 우려를 낮추고 있다.
우선 공급 불안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매점매석 금지 조치를 병행했다. 석유정제업자는 전년 동기 반출량의 90% 이상을 유지하도록 했고, 판매업자의 판매 기피나 특정 업체에 대한 편중 공급도 금지했다. 또한 최고가격을 2주 단위로 재조정하여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주유소 단계에서의 과도한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한 시장 모니터링과 관리·감독 강화 방침도 제시했다. 여기에 최고가격제로 인해 정유사가 손실을 입을 경우 추후 사후정산을 통해 손해를 보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정책 집행 과정에서 시장 참여자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에너지 가격 충격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비상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시장 원리와 정부 정책의 균형이다. 즉 시장 기능은 최대한 유지하되, 외부 충격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신속하고 정교하게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단순한 가격 통제를 넘어 국제 불안이 국민의 삶을 직접 위협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을 보여주는 시험대다. 처음 시행되는 제도에 대한 적지 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이 국민 생활 안정에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세계적 불안 속에서 국가경제를 위한 정책이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