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경기 연천군 청산면 학담로 92
운영시간 수~토요일 11~19시, 일요일 13~16시
”이 동네에서 누가 책을 읽나.“
시골 마을에 서점을 열겠다고 하자 가장 먼저 돌아온 반응은 마을 주민들의 걱정이었다. 평생 제 돈 주고 책 한 번 사본 적 없는 어르신이 대부분인 동네. 마을 사람들은 ”괜히 고생만 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최호 ‘서다’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없는 길이라면 누군가는 만들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미 있는 길이라면 굳이 자신이 갈 이유가 없었다.
”어르신들의 걱정을 듣고 오히려 ‘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졌어요. 이런 곳에 서점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잘해낼 자신도 있었고요.“
60대 어르신이 시집을 고르기까지
경기 연천군 초입, 청산면 초성리에 자리한 ‘서다’는 최호·남소연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서점 겸 카페다.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 북한 접경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이런 곳에 책방이 있을까 싶지만 한적한 시골 마을에 우뚝 선 2층짜리 주황색 건물은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띄었다.
고령인구가 많은 연천군에 3년 전 문을 연 ‘서다’는 이제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통한다. 책방 설립을 만류했던 이들도 어느새 단골이 됐다. 마을회관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어르신들이 모이는 날엔 책방에서 작은 동네잔치가 벌어지기도 한다. 두 대표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노래를 틀어주며 기꺼이 그들을 맞이한다.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책방의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어르신들의 흥을 애써 막지는 않는다“는 게 두 대표의 철학이다. 낙후됐던 동네에 활기가 돌자 마을 이장이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했을 정도다.
가장 큰 변화는 이 같은 책방의 환대에 어르신들이 삶에 책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남 대표는 책방을 꾸준히 오가며 독서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어르신 독자들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3년째 책방에 열심히 오시는 60대 손님이 있어요. 처음에는 가벼운 에세이 위주로 사가셨는데 어느 날 오은 시인의 시집을 보고 계시더라고요. 최근에는 미술사 책을 하나 주문해달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죠. 제가 읽는 책들을 책방 구석에 마구잡이로 쌓아놨는데 거기서 발견했다면서요. 손님들이 책을 읽으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책방지기의 가장 큰 보람이에요. 특히 자기가 읽을 책을 척척 고르는 젊은 독자와 달리 느리지만 차곡차곡 독서의 기쁨을 쌓아가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건 시골 책방지기만의 행복입니다.“
1호선 종착 ‘청산역’ 덕에 나들이객 ‘핫플’
요즘엔 ‘변두리 책방’을 일부러 찾아오는 젊은 손님도 많다. 두 대표가 직접 설계한 책방의 독특한 외관에 이끌려 ‘책방 투어’에 나선 이들이다. 취재진이 머무는 동안 인근 군부대에서 나온 듯한 군인들이 손에 책 몇 권을 쥐고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소요산, 임진강, 한탄강 등으로 나들이를 왔다 들르는 등산객과 여행객도 주요 손님이다. 두 책방지기는 ”호로고루성, 당포성 등 누리소통망(SNS)에서 사진 찍기 좋은 ‘핫플’로 유명한 여행지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이라며 ”책방으로 봄소풍을 오기에도 딱 좋다“고 했다.
책방에서 5분 거리에는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종착 구간인 ‘청산역’이 있어 수도권에서 찾아오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책방이 지어진 해인 2023년 12월, 1호선이 연장되면서 소요산역을 잇는 청산~전곡~연천 구간이 새로 생겼다. ”30년 전부터 이곳에 역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현실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부부의 설명이다.
사실 책방을 연 것부터가 인생 계획표에 없던 일이었다. 8년 전 여름, 연천으로 가족여행을 왔다가 ‘이렇게 한적한 곳에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은 것이 시작이었다. 목회 일을 하던 최 대표에게 그해 연천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그는 그 우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책방을 연 것도 ‘지역사회를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애초에 책방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카페를 겸한 서점을 구상했다. 건축가를 섭외해 직접 지은 이층짜리 건물의 위층에는 부부가 산다. ”돈이 많아서 일찍 은퇴하고 건물까지 지어 산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라며 두 사람은 닮은 표정으로 웃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찾는 사람들이 온다는 점에서 교회와 책방은 닮았어요. 하지만 책방은 교인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누구든 편하게 쉬다 가시라는 마음으로 담도 쌓지 않았죠. 공사 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해 1층은 콘크리트, 2층은 경량 철골로 지었는데 그 차이 덕분에 건물이 더 멋스러워 보이는 것 같아요. 대출 받아 지은 건데 ‘돈 많나 보다’ 하면 그냥 웃고 넘깁니다.“
은희경·오은… 유명 작가 북토크도
도서 큐레이션을 전담하는 남 대표는 과거 다른 동네책방에서 큐레이션을 부탁해올 만큼 자칭타칭 애서가다. 그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하다. ‘10년 후 이사갈 때도 가져갈 만한 책’. 그래서 이곳에서는 소설가 이창래의 1999년 작 ‘척하는 삶’이나 팀 오브라이언의 1990년 작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처럼 세월의 결이 쌓일수록 심연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소설, 시, 에세이 등 수준 높은 문학 서적 1000여 권이 25평(82.5㎡) 남짓한 책방 안에 빼곡하다. 번역소설은 어렵게 느껴진다는 기자에겐 데니스 존슨의 ‘기차의 꿈’을 권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곱씹을수록 생각나는 궁중떡볶이 같은 책“이라고 설명하는 동안 차분하던 책방지기의 눈이 유독 반짝였다.
두세 달에 한 번은 북토크도 연다. 소설가 은희경, 조해진, 시인 오은, 안희연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들이 이 작은 시골 책방을 다녀갔다. 섭외 비결을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SNS를 샅샅이 뒤져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한 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메일을 보내는 거죠.“
작가에게는 독자와 만나는 기회도 되고 시골 책방을 돕는다는 마음에라도 이끌릴 수 있겠지만 책방 입장에선 돈이 되지 않는 북토크를 공 들여 여는 이유는 뭘까. 부부는 ”작가와의 만남은 확장된 읽기“라며 ”문화 경험이 적은 이곳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다. 그것이 시골 책방이 할 일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책방이 뭘 더 할 수 있을까
부부의 고민은 늘 한 방향으로 향한다.
‘책방이 더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동안 책방이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되어볼 참이다. 조만간 연천 등 문화소외지역의 청소년을 위한 북토크도 열 계획이다. 앞서 인근 중학교 독서 동아리에 책을 기부하기도 했다.
지금은 직원 없이 부부가 책방을 운영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지역주민을 위한 일자리도 만들고 싶다.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의정부 등 주변 도심으로 나가야 하는 동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당장은 책방 앞마당에 잔디를 깔아 누구든 텐트를 치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부부가 그리는 책방의 모습이다.
”잘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하지만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쉬는 것도 애써 노력해야만 하는 시대잖아요. 그럴 때 우리 책방이 잠시 멈춰 숨 한 번 고르고 갈 수 있는 쉼표가 되면 좋겠어요. 작지만 아름다운 ‘미미한’ 책방이 되고 싶습니다.“
책방 이름 ‘서다’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 글(書)과 차(茶), 그리고 ‘멈춰서다’. 여기에 ‘이웃과 함께 서다’는 의미도 더해졌다. 작은 시골 책방은 오늘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읽고 나눈다.
조윤 기자 책방지기가 꼽은 지금 읽기 좋은 책 봄엔 조증이 많다는데
권민경(난다)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 27번째 시리즈다. 권민경 시인이 쓴 산문, 편지, 일기를 엮은 책으로 3월 한 달 동안 매일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반려묘의 생일, 결혼식, 조울증 등을 주제로 작가가 3월에 느끼는 혼란함,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들 사이에서의 방황 등을 담았다.
없음의 대명사
오은(문학과지성사)
전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이후 5년 만인 2023년 펴낸 시집이다. 1부 ‘범람하는 명랑’에는 지시대명사를, 2부 ‘무표정도 표정’에는 인칭대명사를 제목으로 한 시가 놓였다. 자신만의 시 작법을 만들어온 작가는 텅 빈 대명사 하나를 던져놓고 독자로 하여금 꽉 찬 의미를 낚아올리게 한다.
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다산책방)
1910년대 후반 미국 전역에 철도가 개설될 당시 한순간의 산불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일생을 그렸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구원도 없이 생의 숭고함을 그린 ‘조용한 걸작’이다.
2024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으로 꼽히는 등 모던클래식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