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죽산삼거리 카페 ‘트윈스테이블’ 서수인·서화인 자매
전북 부안군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 김제시 죽산면 죽산삼거리는 한때 상점과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새 길이 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낮에도 지나는 사람과 차량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한산해졌고 문을 연 가게도 찾기 어려워졌다. 번화했던 삼거리는 ‘죽은 거리’로 불린 채 오랜 시간 멈춰있었다.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건 2022년 서수인·서화인(31) 쌍둥이 자매 대표가 이곳에 카페 ‘트윈스테이블’을 열면서다. 김제역 인근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해오던 자매는 연고도 없는 죽산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폐허에 가까웠다. 낡은 천막에 덮여 빛도 들지 않았고 유리 틈으로 내부가 겨우 들여다보였다. 주변 반응도 곱지 않았다. 쇠락한 거리에 젊은 사람들이 왜 들어오냐는 의심 섞인 핀잔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뒷문 너머로 펼쳐진 넓은 마당에서 가능성을 읽었다. ”공간이 좋으면 찾아오게 돼 있다“는 게 서수인 대표의 판단이었다.
두 사람은 김제 특산물인 쌀에 착안해 ‘쌀빵’을 팔기 시작했다. 소화가 편한 빵을 찾는 어르신부터 처음 빵을 맛보는 어린아이까지, 개점 첫날부터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주말마다 인근 도시를 넘어 수도권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다.
그 사이 거리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맞은편에는 공방이 들어섰고 식료품점과 제로웨이스트숍(친환경 가게), 와인숍 등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현재 죽산삼거리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상점 8곳이 모여있다. 시간이 멈춰있던 거리는 이제 김제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서수인 대표는 죽산면에서 활동하는 청년 창업가들과 함께 ‘오후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다. ‘오후처럼 따뜻하고 여유로운 삶이 흐르는 마을을 함께 만들자는 뜻’을 담아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조합은 유휴 공간을 정비해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내어주고 지방자치단체 지원사업과 연계해 창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트윈스테이블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머물게 하는 ‘앵커 스토어’(특정 상권을 대표하는 점포)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정부의 ‘국토공간 대전환’ 방향과도 맞닿아있다. 정부는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의 일환으로 농산어촌을 삶터·일터·쉼터로 만들고 머물고 싶은 K-농산어촌을 만들기 위한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농어촌 빈집을 정비해 청년 일자리와 창업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죽산삼거리는 가능성을 먼저 보여준 현장이다.
상권이 침체한 거리로 이전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수인: 시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작업 공간과 손님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늘 아쉬움이 컸습니다. 마침 ‘둥지마을 조성사업’(귀농귀촌 청년 지원사업)으로 빈 공간을 활용한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공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곳을 봤을 때 인적은커녕 쓰레기로 가득했지만 넓은 뒷마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임대인이 5년간 무상 임대를 제안해준 점도 결정을 뒷받침했습니다.
연고도 없는 동네라 결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서화인: 공간이 넓어지면 더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누가 올까’라는 불안도 컸습니다. 배달 주문이 어려운 점도 고민이었고요. 단골손님도 있던 터라 주변에서 많이 말렸지만 우리의 판단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서수인: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가치를 보여주면 사람은 찾아올 거라고 믿었고요. 이 동네에 카페가 없다는 점도 오히려 기회로 보였습니다.
카페 창업을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서화인: 원래는 전혀 다른 삶을 꿈꿨습니다. 스무 살 때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언젠가는 한국을 떠나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창업도 잠시 돕는 정도로만 계획했고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공간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기회도 많았고요. 지금은 이곳에서 만들어가는 일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령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입니다. 어르신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서수인: 젊은 사람들이 장사하는 게 기특하다며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어르신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카페를 낯설어하실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80대 단골도 계시고 이른 아침 일터로 나가기 전 커피를 사가는 분도 많습니다. 김장철이나 농번기에는 단체 손님도 이어집니다. 손님들이 남긴 포스트잇이 벽을 가득 채워 여러 번 정리했을 정도로 꾸준히 찾는 공간이 됐습니다.
트윈스테이블을 시작으로 죽산삼거리에 새로운 상점들이 늘었다고요.
서수인: 카페를 연 지 한 달쯤 지나 공방이 문을 열었습니다. 사장님이 시골에서 공방을 여는 게 오랜 꿈이었는데 혼자 시작하기에는 부담이 컸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라면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다음엔 식료품점이 들어섰고 유튜브에 나온 저희를 보고 찾아온 청년은 와인숍을 열었습니다. 카페가 이 거리의 ‘앵커 스토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페에 들렀다가 ”우리도 뭔가 해볼까“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제 창업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저희를 통해 죽산면의 가능성을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서화인: 카페를 찾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주변 상점까지 둘러보는 흐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상점을 연결한 ‘스탬프 투어’를 만들었고요. 몇 곳 이상을 방문하면 작은 선물을 드리는 방식입니다. 지역이 지속 가능하려면 상점들이 함께 잘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나요?
서수인 예전에는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이 많았다면 지금은 이곳을 목적지로 삼아 찾아오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전주, 익산, 군산 등 인근 지역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찾아옵니다. 연령대도 다양해졌고요. 외국인 손님도 늘었어요. 누리소통망(SNS)을 보고 구글맵을 찍어 찾아왔다는 외국인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죽산면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린 시도들이 있나요?
서화인 지역 자원을 활용한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죽산은 콩이 유명한 지역이라 콩크림을 올린 ‘콩파냐’(콘판나 응용)를 만들었어요. 콩을 활용한 식물성 버터 제품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고요. 최근에는 인근 영농회사에서 협업 제안도 받았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원재료를 기반으로 새로운 제품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취지였어요. 이런 시도가 쌓이면서 트윈스테이블은 자연스럽게 지역과 연결되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카페 안쪽에 도자기를 판매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던데요.
서수인: 인근 마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분이 계세요. 카페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싶다고 해서, 한쪽 공간을 내어 ‘숍인숍’ 형태로 운영하게 됐습니다. 특별한 시스템이 있다기보다 이 거리의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서로 돕고 공간을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자기 가게에 손님이 없어도 옆 가게가 잘되면 함께 기뻐합니다. 결국 마을이 살아나는 일이니까요.
서수인 대표님이 조합장을 맡고 있는 오후협동조합은 어떤 일을 하나요?
서수인: 정부의 청년창업 지원사업 등에서 사업비를 확보해 죽산면의 재생을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역 특산품 기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의 시제품 개발을 돕고,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조합에서 정비해둔 빈 공간을 일정 기간 무상으로 임대해 실제 창업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을 돕고 싶다며 공간을 내어주시는 마을 어르신의 참여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 역시 창업을 준비하면서 정부 지원사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만큼 그 경험을 지역 청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협동조합은 지역 재생을 위한 조직이지만 동시에 조합원 각자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산삼거리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싶은가요?
서화인: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합니다. 카페에 들러 한두 시간 머물던 분들이 지금은 거리를 둘러보며 서너 시간씩 머물다 가세요. 현재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받아 숙박시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완공되면 하루이틀, 나아가 한 달, 일 년을 머물고 싶은 곳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곳을 더 깊이 경험하고 돌아가면 다시 찾고 싶어지는 이유도 늘어날 겁니다.
서수인: 이 거리의 상점들이 함께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버텨주고 이 공간을 지켜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죽산삼거리를 오래 머물고 싶은 거리로 남게 하고 싶습니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