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공개한 ‘삼성 AI 모듈러 홈’은 AI가 반도체와 가전제품을 넘어 건설 산업의 공급망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협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대형 건설사가 아닌 모듈러 전문기업 공간제작소와 유창이앤씨가 핵심 파트너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두 기업의 감사보고서와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이들을 선택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건설 산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으로 꼽힌다. 현장 인력 의존도가 높고 기후와 작업 환경에 따라 품질 편차가 발생하기 쉽다. 여기에 인건비 상승과 탄소배출 규제 강화까지 더해지면서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간제작소와 협력해 선보인 ‘삼성 AI 모듈러 홈’. 공장에서 제작하는 모듈러 주택에 AI Home 솔루션을 적용해 입주와 동시에 AI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진 출처: 삼성전자 뉴스룸)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모듈러 건축이다. 주택의 주요 구조체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DfMA(Design for Manufacturing and Assembly·제조 및 조립을 고려한 설계) 개념과 함께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장 공정을 줄여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번 협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비상장 모듈러 전문기업들이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공간제작소와 유창이앤씨를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은 두 기업의 감사보고서와 재무제표에서도 확인된다.
공간제작소, ‘기계장치 134억’이 보여준 자동화 제조 역량
목조 모듈러 주택 전문기업 공간제작소의 역할은 단순한 시공사가 아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주요 사업은 주거용 목조주택 제조와 건축물 설계다. AI 기반 설계와 자동화 생산 시스템을 활용해 주택의 80% 이상을 공장에서 사전 제작하는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공간제작소의 자산총계는 약 69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유형자산이 600억 원 이상을 차지한다. 토지 재평가 효과가 일부 반영돼 있지만, 눈에 띄는 부분은 약 134억 원 규모의 기계장치다.
이는 공장 내부에서 규격화된 목조 주택을 일정한 품질로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 제조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왔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가 단독주택형 AI 모듈러 홈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산 체계가 중요한 협업 기반이 됐을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발표에 따르면 이번 협력의 핵심은 주택 구조체를 공장에서 제작하는 단계부터 AI 가전과 SmartThings 기반 AI Home 솔루션을 함께 설치·등록하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입주와 동시에 AI 환경이 구축된 집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이 가능하려면 주택 자체가 공장에서 일정한 품질로 생산되는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 공간제작소의 자동화 생산 시스템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삼성 AI 모듈러 홈의 DfMA(Design for Manufacturing and Assembly) 구조. 공간제작소는 목조 모듈러 생산을, 유창이앤씨는 철골 모듈러 생산을 담당하고, 공장 제작 단계에서 SmartThings 기반 AI Home 솔루션을 선탑재하는 구조를 도식화했다. (그래픽: AI 활용 제작)
유창이앤씨, 제품매출이 보여준 철골 모듈러 경쟁력
반면 또 다른 파트너인 유창이앤씨는 공간제작소와 출발점부터 다르다.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 제3터미널 공사와 경부선 천안역 신축공사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중견 건설기업으로, 철골 구조 기술과 엔지니어링 역량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2025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회사의 변화는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전체 매출은 약 3,076억 원으로, 공사매출이 약 1,765억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제품매출이다. 제품매출은 약 1,169억 원으로 전년(약 568억 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현장 시공 중심의 사업에서 모듈러 구조체를 직접 제작·공급하는 제조사업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건설중인자산도 약 96억 원으로 증가했다. 대형 모듈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생산시설과 설비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창이앤씨의 강점은 철골 모듈러 기술이다. 목조 모듈러가 단독주택에 적합하다면 철골 모듈러는 구조적 안정성이 중요한 공동주택과 중층 건축물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삼성전자가 AI 모듈러 홈의 적용 범위를 앞으로 4층 이상 중층 건물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배경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건물 층수가 높아질수록 내화 성능과 구조 안전 기준은 더욱 엄격해진다. 철골 구조 기술과 대형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축적한 유창이앤씨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전략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공간제작소에는 규격화된 목조 모듈러 생산 체계를, 유창이앤씨에는 철골 모듈러와 중대형 건축 기술을 맡기며 각 기업의 전문성을 역할에 맞게 배치했다. 하나의 기업에 모든 공정을 맡기기보다 제조 방식과 건축 유형에 따라 최적의 파트너를 선택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AI Home 솔루션을 적용한 ‘삼성 AI 모듈러 홈’을 공개했다. 주택 제작 단계부터 SmartThings 기반 AI 가전을 선탑재해 입주 즉시 연결된 AI 환경을 제공한다. (사진 출처: 삼성전자 뉴스룸)
냉장고를 넘어 ‘공간 플랫폼’으로…삼성이 노리는 다음 시장
삼성전자는 AI 가전을 넘어 공간 플랫폼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기존 스마트홈은 집을 완공한 뒤 소비자가 가전제품과 IoT 기기를 하나씩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기기마다 연동 방식이 달라 사용성과 확장성에도 한계가 있었다.
모듈러 주택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주택을 공장에서 제작하는 단계부터 SmartThings 기반 AI Home 솔루션과 AI 가전을 함께 설치할 수 있어 소비자는 입주와 동시에 연결된 AI 환경을 사용할 수 있다. AI가 완성된 공간에 추가되는 기능이 아니라 주택 생산 과정에 처음부터 포함되는 구조다.
이 같은 방식이 가능하려면 규격화된 생산 체계와 안정적인 제조 공정이 필수적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생산시설을 구축하기보다 이미 이런 역량을 갖춘 모듈러 전문기업과 협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플랫폼 기업과 제조기업의 역할도 명확하게 나뉜다. 삼성전자는 AI 플랫폼과 서비스 생태계를 제공하고, 공간제작소와 유창이앤씨는 이를 실제 주거 공간에 구현할 수 있는 제조 기반을 맡는다. AI 플랫폼의 경쟁 무대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제조 공정과 공급망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조 역량이 스타트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다
AI는 이제 전통적인 건설 산업의 공급망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혁신적인 서비스를 보유한 기업이 협업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생산 체계와 제조 역량을 갖춘 기업이 새로운 파트너로 주목받는 분위기다.
이 같은 변화는 제조업이 표준화되고 공장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AI 플랫폼이 실제 산업에서 작동하려면 이를 구현할 생산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플랫폼 기업과 제조기업 간 협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공간제작소와 유창이앤씨는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한 시공 역량을 넘어 표준화된 생산 체계와 제조 인프라를 갖춘 기업이 대기업의 AI 플랫폼과 결합하며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조 기반 스타트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앞으로의 경쟁은 더 뛰어난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만 있지 않다.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생산 체계와 제조 인프라를 갖추고, 이를 기존 공급망과 연결하는 역량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간제작소와 유창이앤씨 사례는 대기업이 찾는 파트너의 기준이 기술 자체에서 산업 구현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취재 및 분석 자료
본 기사는 삼성전자 공식 보도자료 「삼성전자, 공간제작소와 손잡고 AI 홈 기반 ‘삼성 AI 모듈러 홈’ 출시」(2026년 6월 18일)를 비롯해 공간제작소 제10기(2025사업연도) 감사보고서 및 재무제표 주석(세덕회계법인 감사, 2026년 4월 6일 공시), 유창이앤씨 제42기(2025사업연도) 감사보고서 및 재무제표 주석(신정회계법인 감사, 2026년 4월 8일 공시), 양사의 기업 소개 및 사업자료, DfMA(Design for Manufacturing and Assembly)와 Off-Site Construction(OSC) 관련 글로벌 건설 엔지니어링 자료 및 국내 모듈러 건축 산업 자료를 교차 검증해 작성했다. 기사에 인용된 재무 수치와 사업 내용은 각 기업의 공시자료와 공식 발표를 기준으로 확인했으며, 산업 분석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석했다. 인포그래픽은 AI 도구를 활용해 제작했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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