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는 권력에 눈이 먼 숙부에게 희생된 어린 왕 단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역사적 배경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본 배우 손석구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줄 알았기에 큰 충격을 받았단다. 사람들은 백치미를 뽐내는 그를 놀려댔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단종이 죽는다는 사실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다른 지식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몇 년에 누가 태어났고 또 몇 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 외워야 했던 역사 공부를 나는 참 싫어했다. 역사물인 ‘왕과 사는 남자’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하도 난리이기에 오래간만에 극장을 찾았다. ‘기껏해야 사람 웃기고 울리는 뻔한 영화겠지, 뭐’ 하는 나의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처음에는 피식피식하다가 마지막에는 오열하고야 말았으니 말이다.
단종 역할을 맡은 박지훈의 눈망울은 어쩜 그리 반짝거리는지, 그의 곁을 지키는 유해진(엄흥도 역)은 어쩜 저리 조선시대 사람처럼 구수하게 생겼는지,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내 감탄을 거듭했다. 영화에서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었던 나는 뒷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수척한 단종을 표현하기 위해 하루에 사과 한 조각만 먹고 버텼다는 박지훈의 말에 ”어우, 어떡해!“ 하는 안쓰러운 탄성을 내뱉었고, 이 영화는 연출이 다했다는 개그우먼 김숙의 칭찬에 장항준 감독이 ”안 봤니, 혹시?“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에 낄낄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속에서 헤맸는데도 갈증이 났다. 시원한 우물은 목마른 사슴이 찾아나서야 하는 법.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던 나는 단종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 ‘어린 임금의 눈물’을 읽게 됐다.
손석구와 나처럼 역사 공부를 게을리한 독자를 위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문종’이 조선을 다스렸다. 그러나 문종이 건강 악화로 요절한 탓에 세자인 ‘이홍위’가 왕위에 오른다. 그가 바로 열두 살의 어린 임금 ‘단종’이다. 단종이 왕좌에 머문 기간은 고작 3년 남짓이었다. 권력욕에 눈이 먼 단종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해 ‘세조’가 됐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리에서 밀려난 단종이 영월로 유배 가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반면 이 책은 단종이 이홍위였던 시절부터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자신을 금이야 옥이야 여기던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누이인 경혜공주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눈을 감는 아버지를 붙잡고 목 놓아 우는 홍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한 나라의 왕이기 이전에 어리고 여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이 책의 저자 이규희가 그 누구도 단종에게 주목하지 않던 20여 년 전 그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영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이다. 저자는 단종이 머무르던 청령포 강물에서 다슬기를 잡고, 그가 숨을 거둔 관풍헌에서 해가 이슥해지도록 숨바꼭질하고, 그의 무덤인 장릉 근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꿉장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종이 가엾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단다. 이러한 연민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져 이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 것이다. 작은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지냈던 단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여기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를 향한 애정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어느 인터뷰 속에 선명히 적혀있었다. 부모를 여의고 왕비와도 떨어져 지내며 느꼈을 고독과 두려움, 그러니까 역사의 부침이 아닌 인간의 내면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고.
저자는 단종뿐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의 마음도 두루 헤아렸다. 왕비라는 신분을 잃고 비구니가 되어 눈물로 세월을 보낸 정순왕후, 동생의 비극을 지켜보며 가시밭길을 걸었던 경혜공주, 심지어는 하늘에 있는 단종의 할아버지 세종의 마음까지도 말이다. 세조의 감시 속에서도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고 이는 결국 단종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단종의 존재를 위협으로 여긴 세조가 사약을 내린 것이다. 타인의 손에 죽느니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단종은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 할아버지를 마주한다. ”홍위야, 아가, 어서 오너라! 이제 됐다. 다 되었느니라. 모두가 이 할아비의 잘못이었다. 내가 수양의 끝없는 욕심을 잠재워주지 못하고 떠나온 게 잘못이었느니라. 아가, 홍위야, 이 할아비를 용서해다오.“
단종과 그 주변인을 향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은 실록 속에 무미건조하게 존재하던 그들을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냈다. 그들을 골치 아픈 역사 속 인물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게 한 건 모두 저자 덕이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노가 인다. 작은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제 욕심을 채우려 조카에게 사약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나처럼 화가 난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세조의 무덤 ‘광릉’ 지도 앱 리뷰에 사람들이 몰려가 악성 댓글을 달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는 걸 보면 말이다. ‘때린 놈은 다리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잔다’는 속담이 무덤 속에서도 실효를 발휘한다면 세조는 매일 밤 잠을 설치고 있을 것이다.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세조의 불면증에 작은 힘을 보태야겠다. 홍위야, ‘누나’는 이만 댓글 달러 갈게. 너는 두 다리 쭉 뻗고 자렴.
이주윤
여러 작가의 문장을 따라 쓰다 보니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됐다.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문해력’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