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장기화로 유가와 물류비 부담이 커지자 정부가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을 편성했다. 정부는 3월 31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해당 안건을 의결하고 고유가 충격 완화와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등에 재정을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 추경은 ▲고유가에 따른 국민 부담 완화 10조 1000억 원 ▲민생 안정 지원 2조 8000억 원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2조 6000억 원 ▲지방 재정 보강 등 9조 7000억 원 ▲국채 상환 1조 원 등으로 구성됐다. 재원은 증시와 반도체 경기 호황에 따른 초과세수 25조 2000억 원, 기금 여유 재원 1조 원으로 마련했다. 초과세수 일부를 국채 상환에 투입해 국채·외환시장 등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고유가 피해지원금 10만~60만 원
K-패스 환급률 최대 30%p 상향
고유가 부담 경감을 목표로 전 국민 유류비·교통비 절감,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 에너지 안전망을 묶은 ‘3대 패키지’가 추진된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의 안정적 시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원을 보강한다.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최고가격을 제한하고 발생하는 손실을 재정으로 보전하는 구조다. 적용 대상은 휘발유, 차량용 경유, 등유에 이어 최근 2차 최고가격 고시에서 선박용 경유까지 확대됐다.
대중교통 이용 유도를 위해 K-패스 환급률도 6개월간 한시적으로 상향한다. 월 15회 이상 이용할 경우 저소득층은 53%에서 83%로, 세 자녀 가구는 50%에서 75%로, 청년·두 자녀·어르신 가구는 30%에서 45%로, 일반 이용자는 20%에서 30%로 높아진다.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는 국민 3256만 명에게는 거주지역·가구 환경에 따라 1인당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60만 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이 지급된다. 지급 수단은 신용카드·체크카드·지역화폐 중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사용처는 지역화폐와 동일하다.
취약계층 지원도 강화된다. 등유·LPG를 사용하는 저소득 기후민감계층(노인·장애인·영유아·임산부 등) 20만 가구에 에너지바우처 5만 원이 추가 지급된다. 시설농가 5만 4000곳과 어업인 2만 9000명에게는 유가연동 보조금이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무기질 비료 구매비와 축산농가 사료 구입 정책 자금은 각각 42억 원, 650억 원씩 증액된다. 영세 화물선사는 선박용 경유 가격이 기준(리터당 1700원)을 초과할 경우 리터당 183원 한도 내에서 50%(4월은 70%)를 보조받는다.
그냥드림센터 전국 300곳
‘쉬었음’ 청년 위한 K-뉴딜 아카데미 신설
민생 안정 분야에서는 저소득층·소상공인·취약노동자의 일상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생계가 어려운 국민 누구나 기본 생필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그냥드림센터’는 전국 150곳에서 300곳으로 늘어난다. 일시적 위기 가구를 대상으로 한 긴급복지가 강화되고 돌봄서비스도 추가로 제공된다. 복지시설 750곳에는 냉·난방 설비가 지원되며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보증금 5억 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최소 보증금 3분의 1을 보장하는 신규 사업도 추진된다.
소상공인 지원도 촘촘해진다. 재도전을 돕는 ‘희망리턴패키지’에는 246억 원이 추가 투입되고 2000억 원 규모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이 보강된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석유화학 등 업종에는 고용유지지원금이 확대된다. 사업주와 노동자를 위한 체불임금 청산 대출에 899억 원, 저소득 근로자 생활안정자금에 316억 원이 추가로 편성됐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지는 10곳에서 15곳으로 늘어난다.
청년 창업과 일자리 지원에는 1조 9000억 원이 투입된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에 4000억 원을 배정해 창업자를 선발하고 사업화 자금을 지원한다. 초기 기업의 성장을 돕기 위해 대·중견·글로벌 기업과의 협업 기회도 두 배 이상 확대한다. 아울러 청년 창업 기업이 개발한 AX 솔루션을 선도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동반성장 바우처’를 신설한다. 실패 후 재도전에 나서는 기업을 위한 재창업자 전용 자금 500억 원을 추가 편성하고 4대 과기원을 축으로 한 과학중심 창업도시 조성도 추진한다.
청년 고용 대책도 보강된다. 정부는 ‘쉬었음’ 상태의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K-뉴딜 아카데미’를 신설해 청년이 선호하는 직업능력개발과 직장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2년 내 취업 경험자’에서 ‘구직 경험이 없는 청년’까지 대상을 넓힌다. 첨단산업 분야 직업훈련 지원을 위해 내일배움카드 지급 인원을 늘리고 청년을 고용한 소상공인에게는 정책자금을 두 배로 지원한다. 청년일자리 도약장려금은 비수도권 소재 중견기업 근무자까지 확대해 지역 내 청년 근속을 유도한다. 이와 함께 체납관리단 9500명, 사회연대경제 일경험 3500명, 농지특별조사 5000명 등 공익·가치창출형 일자리 2만 3000개를 확충한다.
고물가 부담 완화와 문화·관광 업계 지원에도 예산이 추가 투입된다.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800억 원, 문화·관광 소비 촉진을 위한 할인 지원에 586억 원이 배정됐다.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한 숙박할인권 30만 장은 인구감소지역에 전량 배정되며 보조율은 한시적으로 100%까지 상향된다.
중동 현지 공동물류센터 추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최대 지원
중동전쟁으로 피해 입은 기업과 산업에 대해서는 물류·유동성 지원을 통해 위기 현실화를 막는다. 운송 차질과 운임 상승으로 고전하는 기업을 위해 수출바우처 대상은 두 배로 확대하고 중동 현지에 공동물류센터를 추가 지원한다. 대규모 자금 경색에 대비해 수출 정책금융 7조 1000억 원을 공급하고 중동 수출이 어려워진 기업이 대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외 인증획득 지원도 넓힌다. 관광업계에는 저금리 정책자금 3000억 원을 공급하고 신규 외래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상품 개발과 홍보에 306억 원을 투입한다. 석유화학·철강산업의 고부가 전환을 위한 기술 컨설팅과 재직자 훈련 등 맞춤형 지원에는 70억 원이 배정됐다.
정부는 이번 추경에 에너지 구조 전환과 신산업 육성도 포함했다.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을 위해 5000억 원을 편성하고 태양광·풍력 등 발전설비 지원 규모를 역대 최대 수준인 1조 1000억 원으로 확대했다. ‘햇빛소득마을’ 조성을 위한 금융 지원을 추가로 진행한다.
주거와 공공 영역에서도 에너지 전환이 추진된다. 아파트 베란다에 소규모 태양광 설비를 10만 가구에 보급하고 국립대학교와 부설학교 39곳에도 관련 설비를 설치한다. 차세대 전력망을 조기에 구축해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높이고 전기화물차 보급은 4만 5000대까지 확대한다. 일반 가정과 사회복지시설에는 히트펌프 보급을 늘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인다. 제조 현장의 AI 전환(M.AX)에는 2000억 원이 투입되며 산업 현장 기반 데이터센터 실증과 스마트공장 확산을 통해 전반적인 AI 전환을 촉진한다.
나프타 수입 비용 일부 지원
희토류 생산기반 마련 81억 투입
문화·예술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도 포함됐다. 청년 콘텐츠 창업을 위한 모태펀드 출자와 문화예술 사업자 대상 저금리 대출이 제공된다. 독립영화부터 중예산, 첨단제작 영화까지 유형별 지원체계를 구축해 지원을 촘촘히 한다. 예술인 생활안정자금은 320억 원 확대되며 비수도권 청년관광두레는 200곳을 추가 조성해 지역관광 활성화를 유도한다.
석유와 핵심전략 자원의 공급망 안정화도 병행된다. 나프타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수입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5차 석유비축계획상 2030년 목표(1억 260만 배럴) 달성을 앞당기기 위해 석유 비축 물량을 확대한다. 석유 불법 거래행위를 감시하는 통합관제센터를 구축하고 유가 공개 시스템을 고도화해 유통 질서를 정비한다. 희토류의 국내 생산기반 마련을 위해 81억 원을 들여 희토류 재자원화 원료·시설을 확충하고 중동 의존도가 높은 요소의 수입선 다변화에도 39억 원을 추가 지원한다.
지방재정 보강도 계획됐다. 정부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확충해 지방정부의 투자 여력을 높일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중동전쟁의 여파로 세계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며 ”대외의존도가 높고 중동 지역 에너지 수급 비중이 큰 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철저한 점검과 치밀한 비상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어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기존 관행에 얽매일 필요 없다. 최대한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