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부터 매주 수요일은 '문화요일'이 됐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을 기존의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서 '매주 수요일'로 확대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덕분입니다.
마침, 3월의 마지막 날인 25일 수요일, 경주를 가보니 문화요일의 기운이 가득함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인 경주는 특별한 날에만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입구 (본인 촬영)
20년 전, 수학여행에서의 기억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가며 설명을 듣는 수동적인 관람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경주는 걷고, 머물고, 체험하며 스스로 느끼는 능동적인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변화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경주 APEC에서는 문화창조산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경주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문화를 단순한 향유를 넘어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APEC 이후 5개월이 지난 지금 경주의 인기는 여전했고, 무엇보다 해외 관광객이 눈에 띄게 많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시작된 경주의 문화요일을 직접 누려봤습니다.
◆ 모두를 위한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역사관 앞 (본인 촬영)
최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자녀를 꼭 데리고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국립경주박물관'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역사는 더 이상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에 방문했음에도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실물로 보고 싶었던 성덕대왕신종을 마주했습니다.
실물로 처음 본 성덕대왕신종 (본인 촬영)
일명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은 그 울림이 현대 기술로는 완전히 재현하기 어려울 만큼, 당시 장인들의 기술과 예술성이 집약된 걸작입니다.
사진으로만 접했던 성덕대왕신종을 마주한 딸아이는 "이게 진짜 그 종이야?"라며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규모와 깊이에 압도당해 자리를 떠나지 못했는데,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을 넘어, 천년의 시간을 견디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역사와 이야기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덕대왕신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실감 영상이 신라미술관에서 상영되고 있어, 신라의 과학기술과 미적 감각은 물론 제작 배경과 의미를 영상으로 다시 접하며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누리집 - 성덕대왕신종 종소리 내려받기
게다가 '국립경주박물관(gyeongju.museum.go.kr)' 누리집에서는 지난 3월 20일부터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도 언제 어디서든 직접 내려받아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 문화 향유의 방법이 얼마나 국민 가까이 와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신라역사관 내 빗살무늬토기 (본인 촬영)
한국사를 배우는 자녀가 호들갑 떨며 아는 척을 했던 문화유산도 있었습니다. 바로 빗살무늬토기였는데요. 자녀가 "엄마,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엄청 크고, 무늬도 무척 선명하다"라며 놀라워했습니다.
신라역사관 전시관을 가득 채운 관람객 (본인 촬영)
사람이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라는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는 신장은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어 촉감으로 문화 향유가 가능합니다. 그 옆에는 음성으로 만나는 경주 석굴암이 있어 음성이 들리는 낯선 장비에 호기심을 드러낸 자녀는 한참 동안 듣고 서 있기도 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박물관, 손으로 보는 신장 (본인 촬영)
음성으로 만나는 경주 석굴암을 듣는 자녀 (본인 촬영)
전시 공간 한편에는 '이용 장벽 없는 스마트 전시관'도 조성돼 있었습니다. 휠체어 관람객을 위한 자동 높이 조절 기능,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키패드와 음성 안내,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서비스 등 다양한 접근성 기능이 갖춰져 있어 누구나 편안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신라미술관에 자리한 이용 장벽 없는 스마트 전시관 (본인 촬영)
전시 하나하나가 어렵지 않게 구성돼 있어 어린 학생부터 어른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쉽게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마저 문화가 되는 순간
경주에 왔으니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도시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봐야겠죠. 매화는 흐드러지게 피고, 벚꽃은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대릉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분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 여행자가 된 듯 묘한 기분이 전해졌습니다. 여러 고분이 모여 있는 길목에 유독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요즘 누리소통망(SNS)에서 유명한 '고분 목련 포토존'이었습니다. 거대한 고분의 부드러운 능선 위로 하얀 목련꽃이 핀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습니다.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긴 줄 역시 문화를 향유하는 또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대릉원 고분 목련 포토존에 길게 늘어선 관광객 (본인 촬영)
동궁과 월지(안압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물 위로 비치는 궁궐의 반영과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지며,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그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예상보다 훨씬 많아 살짝 놀랐습니다.
'오픈런'이 쇼핑이나 맛집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화유산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으로도 이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문화유산을 자연스럽게 찾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문화가 있는 날이 점점 더 확대되고 일상화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녁 8시경 동궁과 월지에 입장하는 수많은 관람객 (본인 촬영)
궁궐의 반영과 은은한 조명이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안압지) (본인 촬영)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에 어울리는 도시, 그곳이 바로 경주가 아닐까? 그리고 그 변화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도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멀티미디어 뉴스) 한 달에 한 번? NO! 이제 매주 수요일은 문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