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자, 드문드문 집들이 보였다.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는 경북 고령의 풍경이었다. 한적한 농촌이지만 최근 이곳은 '재방문율이 높은 지역'으로 꼽히며 주목받고 있다. 조용한 마을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경북 고령은 논 사이 드문드문 집들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풍경을 하고 있다. (본인 촬영)
지난해 12월 고령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지산동 고분군과 대가야박물관, 개실마을을 둘러보며 이곳이 단순한 농촌이 아닌 대가야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 중 하나인 지산동 고분군은 고령의 역사적 가치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이번에는 고령향교와 도암서원, 우륵박물관, 가얏고마을까지 다시 찾았다. 고령은 한 번의 방문으로 다 담기지 않아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대가야의 수도였던 고령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이 있다. (본인 촬영)
◆ 생활인구 확대…재방문율 높아진 고령, 체류형 관광 가능성 확인
정부는 지역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고 체류형 관광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인구와 등록외국인 등 등록인구에 더해 일정 시간 이상 지역에 머무는 체류인구를 포함한 개념이다.
경북 고령은 최근 3개월 내 재방문율이 50% 이상인 도시로 집계됐다. (본인 촬영)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인구감소지역의 평균 생활인구는 약 2817만 명이고, 이 중 체류인구는 약 2332만 명으로 등록인구의 약 4.8배에 달했다.
특히 최근 3개월 내 재방문율이 50% 이상인 지역으로 경북 고령을 포함한 11개 지역이 나타나 체류형 관광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구감소지역 20개 시·군·구에서는 체류인구의 카드 사용액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1인당 평균 카드 사용액도 전년 동월 대비 증가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 대가야 역사 자원과 체험형 마을…머무는 관광으로 이어지다
고령향교 옆 과거 대가야 왕궁터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비석 (본인 촬영)
고령향교 옆 너른 언덕에 세워진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과거 가야 왕궁이 있었던 터임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너른 언덕 위에 자리한 이곳은 왕궁이 들어서기에 충분히 어울리는 지형이었다.
도암서원을 방문한 일행이 앞마당에 설치해 둔 곤장을 체험하고 있다. (본인 촬영)
고령향교와 도암서원은 오래된 전통 한옥으로,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향교와 서원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지역의 인재를 길러온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은 단순한 유적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교육 문화를 함께 보여준다.
고령은 2025년 2월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 다섯 번째 고도(古都)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가야고분군)을 비롯해 대가야박물관, 우륵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잘 보존돼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우륵박물관에서 가야금의 시조 우륵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본인 촬영)
지산동 고분군에서 시작된 대가야의 흔적은 대가야박물관, 우륵박물관, 고령향교, 도암서원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이러한 역사 자원은 관광의 출발점이자 방문객이 다시 찾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우륵박물관 인근에 있는 가얏고마을은 체험형 숙박 장소로 이용할 수 있다. (본인 촬영)
우륵박물관에서는 가야금의 시조 우륵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를 둘러본 뒤 찾은 가얏고마을은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가얏고마을은 조용했지만, 체험부터 숙박까지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머물며 경험하는 체류형 관광의 형태였다.
◆ 전통시장과 딸기 농업… 체류인구가 지역경제로 이어지다
대가야시장은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전통시장이다. (본인 촬영)
대가야시장은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시장 안 풍경은 도시의 전통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도시든 농촌이든 사람이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 안쪽에는 '고령대장간'이 있었으며, 철기문화 강국이었던 가야의 전통을 잇는 공간이었다. 대장간에서는 쇠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불꽃과 쇳소리가 어우러진 현장은 마치 살아 있는 생활사 박물관 같았다.
고령대장간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 농기구를 제작하고 있는 보기 드문 곳이다. (본인 촬영)
3대째 대장간을 이어오고 있는 이준희 사장(53)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농기구를 직접 제작하는 것이 이곳 대장간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전통을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예전에는 물건을 만들면 잘 팔리고 호응도 있었지만, 지금은 판매도 줄고 생계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장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고령 일대에 있던 대장간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 사장은 "어릴 때만 해도 주변에 대장간이 여러 곳 있었지만, 지금은 이 대장간만 남고 거의 없어졌다. 이대로라면 전통이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품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오래 쓸 수도, 금방 망가질 수도 있다. 최소한의 정성을 다해 만들고, 문제가 있으면 책임지고 수리해 준다"라고 강조했다.
고령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본인 촬영)
고령의 매력에 대해서는 "살기 좋은 곳이고, 요즘은 관광 여건도 많이 좋아졌다. 박물관과 왕릉, 체험 공간 등이 하나의 코스로 연결돼 있어 둘러보기 좋다. 인프라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지역"이라고 말했다.
마을 인근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달콤한 딸기 향이 퍼졌다. 고령은 딸기 생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생산지에서 직판하는 싱싱한 딸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차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곳곳에 딸기를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령을 방문하면 생산지에서 직판하고 있는 신선한 딸기를 구매할 수 있다. (본인 촬영)
농업은 더 이상 생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체험과 관광이 결합하면서 농촌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딸기밭이 있어서 고령이 '머무는 농촌'으로 변화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었다.
개실마을은 영남 사림학파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본인 촬영)
고령은 여전히 조용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다시 찾을 이유가 충분히 존재했다. 한 번의 방문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역사 자원, 머무를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살아 있는 시장, 그리고 농촌 체험까지. 고령은 여러 번에 걸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체류인구의 재방문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방문객이 지역과 관계를 맺고 다시 돌아오며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고령은 이제 스쳐 지나가는 농촌이 아니라, 다시 찾게 되는 지역으로 변하고 있었다.
☞ (보도자료) 인구감소지역 20곳에서 체류인구의 1인당 평균 카드사용액 등록인구 넘어섰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