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수출 전략가로 나선 ‘김한송 셰프’
”K-푸드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지표상 일식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뉴욕 맨해튼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김한송(43) 셰프가 보는 K-푸드의 현주소는 냉정하다. 화려한 수출 지표와 달리 한식은 여전히 미국 주류 시장의 문턱 앞에서 고군분투 중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최연소 미국조리사협회 총주방장 심사위원이자 미 연방정부가 인정하는 ‘탁월한 능력 소유자(EB-1A 비자)’. 현재는 우리나라 전통 장(醬)류를 매달 40피트(ft) 컨테이너 단위로 미국 전역에 유통하는 B2B 시스템을 구축하며 K-푸드 수출의 전략가로 뛰고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 젊은 요리사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그의 도전은 불안에서 시작됐다. ‘30대 후반이 되면 유학파 셰프들에게 밀릴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그의 미국행을 이끌었다. 2011년이었다. 당시 음식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지만 그는 도전을 택했다. 로드아일랜드주 존슨앤드웨일스대학교에서 호텔외식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한국에서는 요리 예능 전성기가 열렸지만 그는 한국행 대신 미국에서 할 수 있는 도전을 다 해보기로 했다.
프라이빗 다이닝 셰프로 3년을 보낸 뒤 2018년 맨해튼 한복판에 도시락 가게 ‘핸섬라이스’를 열었다. ”벤또(일본 도시락)나 런치박스를 파는 가게는 많았지만 ‘도시락(Dosirak)’이란 이름을 내건 가게는 없었다. 스시나 롤을 팔면 더 쉬웠겠지만 한식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불고기, 제육 등 한식 메뉴로 채운 이 가게는 오픈 1년 만인 2019년 뉴욕타임스가 꼽은 ‘뉴욕 3대 런치스폿’으로 소개되면서 대박이 났다. 신문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도시락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한식의 확장성을 고민하며 다음 단계를 향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 창업가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김밥과 치킨이 세계 곳곳에서 팔려나가는 요즘, 그가 체감하는 현장의 온도와 한식의 현재를 물었다.
현지에서 체감하는 K-푸드의 위상은 실제로 어떤가.
10년 전보다 성장한 것은 맞지만 아직 K-푸드 자체의 힘은 약하다. 예를 들어 구글 검색량을 지표로 보면 스시를 검색한 결과물이 10이라면 K-푸드는 1 수준이다. 된장찌개, 비빔밥으로 내려가면 더 낮아진다. 지금의 K-푸드 인기에는 가격 요인이 한몫한다. 마트에서 파는 냉동 스시는 7~9달러인데 냉동 김밥은 4달러 수준으로 접근성이 높다. 수출액도 꾸준히 늘고 있지만 질적 성장까지 이어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질적 성장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속 가능한 기반이다. K-푸드는 방탄소년단(BTS) 등 K-콘텐츠 확산과 함께 성장했다. 하지만 그 흐름을 이어갈 구조는 아직 약하다. 일식은 1970년대부터 자본과 문화가 결합해 뉴욕에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다. 맨해튼 중심부 소니빌딩이 그 상징이다. 일본은 스시를 기반으로 한 미쉐린 식당이 많다. 자연히 일본산 식재료가 수출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반면 한식은 몇몇 셰프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셰프가 사라져도 유지되는 구조, 캐주얼한 아이템과 물류 시스템이 필요하다.
뉴욕은 경쟁이 치열하다.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뉴욕에서는 생존을 위해 슈퍼마켓 뷔페 형태인 ‘델리’로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한국식 도시락, 한국 치킨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돈보다 방향을 택했다.
꽤나 운이 따랐던 것 같지만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처음엔 ‘핸섬라이스’로 프랜차이즈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2020년 셧다운이 시작됐고 뉴욕의 상황은 특히 심각했다. 텅 빈 거리에는 시체를 실어나르는 냉동차만 보였다. 병원 종사자의 고통이 컸다. 식사 기부는 있었지만 디저트는 부족했다. 그래서 바나나푸딩을 만들어 기부하기 시작했다. 뉴욕 경찰까지 나서서 배달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관할구역별로 경찰차가 출동해 병원으로 바나나푸딩을 실어날랐다. 2년간 기부를 하며 코로나19 시절을 버텼다.
한식 확산을 위한 활동은 어떻게 확장해가고 있나.
현재 미국조리사협회 총주방장 심사위원이자 서울프라이드치킨(SFC) 프랜차이즈, 뉴욕 레스토랑 핸섬라이스의 대표다. 미국조리사협회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공신력 있는 협회다. 2015년 당시만 해도 대부분 백인 위주의 셰프로 구성돼 오기가 발동했고 결국 타이틀을 따냈다. 매년 정해진 교육과 실기 평가를 통해 심사위원 자격을 갱신하고 있다. 2024년 뉴욕과 한국에 본사를 둔 식품 컨설팅 회사 K-푸드 브릿지(K-Food Bridge)도 설립했다. 미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을 위해 레스토랑 자문과 메뉴, 입지 선정, 수출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순두부찌개 같은 단일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시락 브랜드 대신 ‘치킨’ 브랜드를 만들었다. 2021년 미국 뉴저지주 에디슨에 첫 SFC 매장을 선보였고 현재 서머싯, 바운드브룩, 해컨색 그리고 텍사스주의 사이프러스 등 총 다섯 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뉴저지주 톰스리버와 텍사스주 댈러스, 펜실베이니아주 등에도 신규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 인기를 발판 삼아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국인 가맹점주들이 더 열광한다고.
할랄 인증을 받으면서 무슬림 커뮤니티에서도 소문이 났다. 일부 매장에서 미국에 정착하는 난민을 지원하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보도되면서 호응을 얻었다. SFC는 미국에서 일반적인 치킨 조리법과 달리 한국식으로 주문 즉시 반죽을 입혀 두 번 튀기는(Double-fry)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앞으로 SFC를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매장을 넓히고 밝은 조명으로 꾸몄다. K-팝을 틀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한국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면.
미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것이다. 뉴욕과 다른 도시는 고객층, 소비 수준, 외식 문화, 입맛, 가격 허용도까지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수십 개의 시장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때문에 데이터로 접근해야 한다. 해당 지역의 인구 구성, 소득 수준, 소비 패턴을 분석해 핵심 고객을 정의하고 현지화 수준과 정통성의 균형을 정해야 한다. 음식 가격도 해당 지역의 수준에 맞춰 설정한다. 그리고 K-푸드냐, 건강식이냐 등 브랜드 포지셔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관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K-푸드 수출 전략에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수출의 핵심은 ‘양’이다. 개별 식당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SFC는 경북 문경시에 만든 자체 공장에서 한 달에 40피트 컨테이너 단위로 소스를 들여온다. 프랜차이즈에서 사용하는 소스 10종 중 절반을 한국 장류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B2B의 힘이다. 정부도 이런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청년 요리사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고.
최근 경북 경주시에서 여러 브랜드를 성공시킨 두더지프로젝트(DDJ Project)와 함께 ‘한국 창업 육성 허브’를 만들었다. 지방에서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미국으로 진출할 때 글로벌 전략을 짜주고 도시 선정부터 브랜드 가이드까지 돕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다.
사업 키우기도 바쁠 텐데 멘토 역할을 자처한 이유가 있나.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 요식업 분야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알려주는 멘토를 만나기 어려웠다. 나는 한국에서 29년, 미국에서 15년을 살았다. 미국 여러 지역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식을 통해 남기고 싶은 가치는 뭔가.
음식이 사회에 기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특히 재난 지역에 직접 들어가 음식을 제공하는 ‘월드 센트럴 키친(World Central Kitchen)’ 활동에 큰 영감을 받았다. 한국 요리사로서 단순히 한식을 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식을 사회적 가치의 도구로 만들고 싶다. 다소 거창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방향이다.
서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