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중동 전쟁 장기화의 여파로 민생 부담과 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히 커지고 있다. 에너지 수급과 글로벌 물류 공급망의 불안정도 쉽게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 의왕 소재 내륙컨테이너기지(ICD)를 방문해 화물운송·물류업계 종사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장 점검에 나섰다. 중동 정세 불안의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차원에서 업계의 고충을 살피고 화물차주와 운송사, 물류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의왕 ICD는 수도권 4개 산업단지와 2만여 개 입주기업을 30분 내로 연결하고 전국으로 화물을 분산하는 핵심 물류 거점이다. 이곳을 찾은 이 대통령은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중동 전쟁 때문에 화물 수송 업계에 어려움이 많다. 업체뿐 아니라 운송을 담당하는 화물차주 여러분도 상당히 힘들 것“이라고 위로를 건넸다. 이어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고시 등 여러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을 수 있다. 의견을 듣고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에서는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와 함께 추가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업계 종사자들은 유가연동보조금 등 정부의 발 빠른 조치가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감사인사를 전하면서도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운송업 특성상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한 화물차주는 ”차량 가액이 3억 원이 넘어 은행 대출이 쉽지 않아서 카드론까지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상공인 대출 지원제도와 같은 별도 지원이 가능한지 검토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국토교통부와 중소벤처기업부에 협의를 통해 저금리 지원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어려울수록 현장 목소리 귀 기울여“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 요청에 대해서는 국토부가 품목별 운송 원가와 해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수도권의 높은 임대료와 부지 부족으로 물류창고가 외곽으로 밀려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방정부와 협의해 유휴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기·수소 화물차 전환을 위한 보조금 확대와 충전 인프라 확충 필요성에도 깊은 공감을 표했다.
정부는 고유가로 인한 화물 운송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각적인 지원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비율을 기존 50%에서 70%로 높이고 리터당 1961원을 초과할 경우 추가 지원이 이뤄지지 않던 상한 구조 역시 개선을 추진 중이다.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해당 기준을 초과하는 구간에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방침이다.
화물차 운행 비용 절감을 위한 추가 조치도 시행된다. 4월 16일부터 심야시간대 재정고속도로 통행료를 전액 면제하고 월 200만~300만 원 수준의 화물차 할부금에 대해서는 3개월간 상환을 유예할 예정이다. 또한 유가 상승분이 반영된 적정 운임이 지급되도록 화주와 운송사에 권고하고 2월 1일 재도입된 안전운임제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관리도 강화한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 종사자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고 안전 운행을 유도하기 위해 최소 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부는 시행 초기 혼선을 줄이기 위해 기준을 명확히 하고 현장 단속을 강화해 위법행위에 엄중 대응할 방침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물류가 중단되지 않도록 요소수 등 필수 물자를 우선 공급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 공급체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를 마친 뒤 안전모를 착용하고 물류기지 현장을 둘러보며 유가 상승에 따른 물동량 변화를 점검했다. 이후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오랜 시간 우리 경제를 지탱해오신 여러분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건의해주신 사항은 즉시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어려운 시기일수록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세심히 귀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전 국민 공급망 애로 핫라인’ 개설
정부는 현장 대응과 함께 범정부 차원의 비상경제 대응체계를 가동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4월 8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본부회의에서는 거시경제·물가, 에너지 수급, 금융 안정, 민생 복지, 해외 상황 등 분야별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김 총리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각 부처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하고 대체 항로 확보와 우회 수송에 따른 리스크 점검, 지역 정세 정보의 실시간 공유 등을 주문했다.
분야별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거시경제·물가대응반(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 국민 공급망 애로 핫라인’을 개설해서 기업과 국민의 제안사항을 접수해 신속히 반영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에 따른 소비 제약 가능성에 대비한 보완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추경안 통과 즉시 집행이 가능하도록 사전준비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에너지수급반(산업통상부 장관)은 석유와 나프타 등의 수급 동향을 점검하고 추가 물량 확보를 위해 주요 산유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홍해 통항 지원 등을 통해 수송 차질을 최소화하는 한편 공공기관 차량 2부제와 공영주차장 5부제,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도 함께 추진한다. 나프타는 추경 등을 통해 기업의 대체 물량 확보를 지원하고 보건의료·필수산업·생활필수품 분야에 최우선 공급되도록 관리할 방침이다.
금융안정반(금융위원장)은 피해기업을 대상으로 정책금융기관과 민간금융권의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미 마련된 채권·자금시장 안정 프로그램은 필요시 즉각 확대할 계획이다. 향후 산업계와 금융권 간 릴레이 간담회 등을 통해 현장의 금융 애로를 청취하고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민생복지반(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약계층 보호와 민생안정 지원, 의약품·의료제품 수급 대응을 이어간다. 복지사각지대 조사를 강화하고 복지위기 알림 앱과 생활 밀접 기관을 활용해 위기감지 체계를 촘촘히 구축한다. 소득·돌봄·먹거리 등 분야별 생활 지원도 확대하며 의약품과 의료제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사재기 및 매점매석 방지를 위한 업계 자율 규제도 유도할 계획이다.
해외상황관리반(외교부 장관)은 급변하는 중동 정세를 공유하고 재외공관을 통해 파악한 에너지 자원 수급 가능성을 점검했다. 동시에 중동 전쟁 상황을 시나리오별로 검토하며 에너지 수급 다변화와 기존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화를 위한 외교적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제사회와의 공급망 협력과 국내 기업의 원활한 활동 지원도 지속 추진한다.
4월 9일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회의에서도 중동 전쟁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이 논의됐다. 김성식 부의장은 ”이 전쟁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닐 것“이라며 ”조세, 재정, 외환, 채권시장 등 여러 분야의 정책 여력에 대해 함께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혁신을 통해 ‘대체 불가한 전략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이 대통령 역시 사태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민생과 경제 안정을 위한 중장기적 대비를 당부했다.
이어 같은 날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긴장의 끈을 조금도 놓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호르무즈해협에 발이 묶인 우리 선원들과 선박을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일“이라며 ”외교 역량,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협의에 나서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근하 기자 기업 지원하고 민생 살리고 기업엔 26.8조 정책금융
가계엔 K-패스 환급 확대
중동발 유가·물가 불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과 가계를 동시에 겨냥한 대응책을 내놨다. 정책금융 확대를 통한 기업 유동성 지원과 교통비 환급 확대 등 민생 안정 대책을 병행해 중동 전쟁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중동 전쟁 피해기업 지원을 위해 신규 정책금융 공급 규모를 26조 8000억 원까지 또 한 번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한국수출입은행 등 4대 정책금융기관은 중동 전쟁 발생 후 신규 자금 지원 프로그램 규모를 20조 3000억 원에서 24조 3000억 원으로 한 차례 확대한 바 있다.
정부는 업종별 대응도 병행하고 있다. 석유화학·정유 등 직접 피해 업종을 시작으로 산업-금융권 릴레이 간담회를 열어 업종별 현장 애로를 점검하고 있다. 4대 정책금융기관은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P-CBO 차환 부담 완화도 추진해 기업의 상환 부담도 낮출 방침이다. 산업 경쟁력 보강에도 속도를 낸다. 한국석유공사 유동성 확충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석유화학·반도체·자동차·디스플레이·철강·이차전지 등 6개 산업에 투자하는 1조 원 규모의 기업구조혁신펀드 6호를 조성할 계획이다.
민생 부문에서는 고유가 부담 완화가 핵심이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에 ‘고유가 부담 완화 3대 패키지’를 반영해 석유 최고가격제, 대중교통 환급 지원,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을 추진한다.
이 가운데 체감도가 높은 정책은 K-패스 환급 확대다. K-패스는 한 달 15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환급률을 4월부터 9월까지 한시적으로 상향한다. 저소득층은 53%에서 83%, 3자녀 가구는 50%에서 75%, 청년·어르신·2자녀 가구는 30%에서 45%, 일반 이용자는 20%에서 30%까지 환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해당 사업에 877억 원을 투입해 교통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김경민 기자 에너지 수급 안정 총력전 원유·나프타 추가 확보 특사단 파견
기업도 자발적 에너지 절약 나서
중동발 긴장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대응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휴전 발표로 단기 불확실성은 다소 완화됐지만 에너지 수급 안정과 가격 변동성 관리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원유와 나프타 등 핵심 원자재 확보에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4월 7일 출국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국내 에너지 기업 관계자도 특사단으로 동행해 추가 공급선 확보 협의에 나섰다.
강 비서실장은 출국에 앞서 ”정부는 에너지 수급은 물론 석유 제품과 의약품 등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핵심 품목의 수급과 가격 안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 비서실장은 원유 수급과 관련한 국내 불안에 대해 ”지난달(3월) UAE(아랍에미리트)와 24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다른 나라보다 최우선적으로 공급받기로 합의했고 실제 UAE에서 출발한 원유와 나프타가 우리나라에 순차적으로 도착하고 있다“면서도 ”상황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진 대체 공급선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에너지뿐 아니라 국민 생활과 직결된 품목 관리에도 대응 수위를 높였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생산에 필요한 나프타·수지 등 원료를 우선 공급하고 매점매석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신고센터 운영 등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요소수, 페인트, 종량제봉투 등 생활물자 역시 수급과 가격 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중동 전쟁 여파로 증가한 공사비와 공사기간 연장으로 건설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과 관련해 정책·민간 금융권의 위기대응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금융위는 상황에 따라 금융지원 대상과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가짜뉴스 대응도 병행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4월 2일 ‘유가 폭등설’, ‘봉투 품귀·대란’ 등 근거 없는 정보 확산이 국민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각 부처에 신속 대응을 지시했다. 김 총리는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뉴스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등 철저히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민간의 에너지 절감 노력도 확대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차량 2부제와 공영주차장 5부제를 시행하는 가운데 민간 기업도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감에 나서며 승용차 5부제에 참여하고 있다. 시멘트·정유·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 50개 기업은 올해 석유사용량을 3.3%(13만TOE)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했다. 13만TOE는 원전을 한 달가량 가동해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