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소속 규제합리화위원회 출범 ▶ 현장·민간이 주도하는 규제합리화 체계로 ▶ 지역성장·전략산업 육성 동시 추진
규제합리화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
정부가 28년 만에 규제개혁 추진체계를 전면 개편하며 ‘규제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기존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합리화위원회’로 이름을 바꿨고 위원장은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됐다. 여기에 민간 부위원장 신설과 민간위원 규모를 기존 ‘20~25명’에서 ‘35~50명’으로 확대했다. 분과체계 역시 기존의 경제·행정사회 중심에서 성장·민생·지역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번 개편은 규제를 단순히 줄이거나 건수 중심으로 정비하는 데서 벗어나 산업 변화와 현장 수요에 맞춰 규제체계를 재설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
건수 아닌 성과 중심으로 평가 전환
이재명 대통령은 4월 15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규제합리화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새 정부의 규제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회의에는 민간, 정부, 당, 청와대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통상국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첨단산업 분야 등을 중심으로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시스템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를 정리하는 데 더해 규제 시스템을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 즉 국제 기준에 맞춰가야 한다“며 ”어렵더라도 과감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규제 시스템 개선을 추진해달라“고 강조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규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꿨다는 데 있다. 규제를 하나 없애고 하나 고치는 식의 사후 대응만으로는 급변하는 기술과 산업 환경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부는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국가 차원의 규제정책을 더 전략적으로 다루고 민관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틀을 다시 짰다.
새로 출범한 규제합리화위원회에서는 민간 참여가 한층 강화됐다. 정부는 성장·민생·지역 분야 전문가를 대거 민간위원으로 위촉하고 규제 신설·강화 심사부터 사후 점검·평가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규제를 만드는 행정의 시각뿐 아니라 규제를 실제로 경험하는 기업과 국민의 시각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똑똑한 규제, 더 앞서가는 대한민국“
정부는 규제합리화의 다섯가지 방향으로 ▲한발 앞선 ▲환경 변화에 유연한 ▲성과 지향 ▲국민이 체감하는 ▲현장과 함께하는 모두의 규제합리화를 제시했다. 규제를 뒤늦게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리 살피며 획일적 방식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단순한 숫자보다 실제 성과와 체감도를 중시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첫 번째 과제는 선제적 규제 정비다. 정부가 관련 정보와 환경 변화를 먼저 분석해 규제 이슈를 앞서 정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규제 내비게이터를 도입해 규제 정보를 통합·분석하고 국민에 맞춤형 규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 신산업 분야는 미래규제지도를 통해 기술 발전 단계마다 어떤 규제가 걸림돌이 될지 사전에 예측하고 정비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유연한 규제체계 구축이다. 정부는 핵심 산업 관련 규제를 글로벌 기준에 맞춰 다시 점검하고 왜 해당 규제가 필요한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하는 방향으로 바꾼다. 동시에 원칙적으로는 허용하되 꼭 필요한 부분만 사후 관리하는 네거티브 규제 전환도 추진한다. 최소한의 규제만 두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성과 중심 개혁이다. 규제합리화가 실제로 산업 활성화와 투자 확대, 지역경제 변화로 이어졌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책이 바로 메가특구다. 정부는 5극3특 지역균형성장 전략의 핵심 성장거점으로 메가특구를 지정하고 여기에 광범위한 규제 특례와 정책 패키지를 집중 지원해 지역경제 성장과 국가전략산업 육성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창업 초기 기업 행정서류 50% 이상 줄인다
네 번째는 국민이 체감하는 규제합리화다. 정부는 창업 초기 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불필요한 행정서류를 50% 이상 줄이고 행정조사와 행정규칙처럼 현장에서 부담이 큰 요소도 다시 손보기로 했다. 다섯 번째는 온라인 소통채널, 현장 캠프, 경제단체와의 상시 협력을 통해 규제 개선 과제를 발굴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는 공론화와 숙의를 통해 풀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의 핵심은 지역의 강점 산업에 맞춰 규제특례와 정책지원을 한꺼번에 집중하는 데 있다. 기존 특구가 소규모로 흩어져있거나 부처별로 분산 운영돼온 것과 달리 더 큰 규모와 집중도를 지향한다.
4개 분야 메가특구 추진
이날 회의에서는 분야별 메가특구 구상이 함께 제시됐다. 로봇·재생에너지·바이오·AI(인공지능)자율주행차 메가특구다. 이들 분야에 있어 단순히 규제를 푸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 실제로 연구·실증·투자·사업화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먼저 로봇 메가특구는 실외 이동로봇, 소방로봇, 제조로봇, 휴머노이드의 활용과 실증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각종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 더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안전기준이나 통행 제한, 제도 미비 때문에 기술은 있어도 현장에서 써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로봇 메가특구는 이런 걸림돌을 줄여 로봇 산업을 실제 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메가특구는 재생에너지 직접 거래, 자가용 재생에너지 거래, 전력계통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지능형 전력망과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담았다. 전기를 만드는 방식뿐 아니라 만든 전기를 어떻게 거래하고 활용할지까지 포함해 제도를 바꾸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여기에 에너지저장장치(ESS), 마이크로그리드, 동적제어시스템 같은 기반까지 함께 지원해 실제 산업 생태계와 글로벌 재생에너지 유니콘기업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바이오 메가특구는 첨단재생의료, 분산형 임상시험, 의료기기 실증 등에서 특례를 확대하는 방향이다. 정부는 첨단재생의료 심의 절차를 혁신하고 분산형 임상시험 특례를 허용하며 일부 의료기기나 바이오 기술의 실증 기회를 넓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대규모 펀드 조성, 지역의료 연구개발(R&D) 확대, 수출역량 강화 지원까지 더해 바이오 산업을 연구 단계에서 실제 산업 성장 단계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AI자율주행차 메가특구는 임시운행허가, 대규모 자율주행 실증, 원격주행, 물류서비스 등을 폭넓게 열어두는 방향이다. 자율주행차의 임시운행허가 권한을 각 시·도지사에게 부여하고 대규모 실증을 가능하게 하며 원격주행이나 자율주행 물류서비스 같은 새 서비스도 폭넓게 시험할 수 있도록 문을 열겠다는 방침이다. 지역의 강점과 산업 수요를 결합해 규제개혁과 산업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메가특구특별법 연내 제정 목표
정부는 이날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칭 ‘메가특구특별법’을 올해 안에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국회와 협의하고 법 제정 이후 특구 지정을 신속히 추진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앞으로 분과위원회를 중심으로 규제심사와 주요 과제를 계속 논의하고 대통령 주재 전체회의를 통해 핵심 안건을 결정·발표해 나간다.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