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 동계패럴림픽 메달 5개 김윤지 선수
제25회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이 막을 내린 뒤 장애인 스포츠를 향한 국민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김윤지 선수가 있다.
김윤지는 처음 밟은 동계패럴림픽 무대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거머쥐며 우리나라 선수로는 동·하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통틀어 역사상 최다 메달이라는 기록을 새로 썼다. 오랫동안 서구 선수들이 지배해온 노르딕스키 종목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선수층과 훈련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세계 정상에 당당히 올라선 그는 장애인 스포츠 역시 깊은 감동과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신의현 선수 이후 멈춰 있던 금빛 흐름도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과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고 권익 증진과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해 제정된 날이다. 특히 올해는 동계패럴림픽 무대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도전과 성취가 더해지며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스마일리(smiley)’라는 별명처럼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김윤지 선수를 만났다.
동계패럴림픽 이후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다면.
많은 분이 먼저 알아봐 주시고 인터뷰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회 기간에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귀국하고 나니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평소 인터뷰는 유명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이런 관심이 낯설고도 신기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따듯한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져 감사하고 행복하다. 동계패럴림픽이 막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은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장애인 스포츠의 가치를 꾸준히 알리고 싶다.
동계패럴림픽 ‘5메달’이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이 정도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동계패럴림픽을 앞둔 시즌까지만 해도 동메달 하나만 따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즌 동안 꾸준히 몸 상태를 끌어올리면서 은메달 정도는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됐다. 이후 동계패럴림픽에서 첫 출전 종목이었던 바이애슬론 여자 스프린트 좌식 7.5㎞에서 4위를 기록하며 그 이상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종목 출전을 위해서는 체력도 중요한데 체력 관리 비법이 있나. 선호 종목도 궁금하다.
종목 특성상 체력 소모가 크다 보니 주변에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동안 대회마다 보통 4~6개 종목에 꾸준히 출전해온 덕분에 여러 경기를 소화하는 데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경기 전후에는 탄수화물을 충분히 보충하고 수분 섭취에도 신경 쓰며 컨디션을 유지한다.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보다 출전 종목의 거리와 특성에 맞춰 경기 전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스키 모두 욕심이 있지만 재미 면에서는 바이애슬론이 더 좋다. 사격과 주행이 결합된 종목이라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노르딕스키 훈련 강도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이번 시즌에는 총 299일 동안 훈련을 진행했다. 노르딕스키는 롤러스키(하계)와 설상스키(동계)를 병행해 훈련하는데,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 오전과 오후로 나눠 각각 3~4시간씩 훈련을 진행한다. 훈련 주차가 쌓일수록 훈련의 강도와 깊이를 점차 높여가며 한 번에 4시간 이상 집중 훈련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력운동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인터벌 트레이닝을 중심으로 구성해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노르딕스키 입문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 노르딕스키를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겨울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애인노르딕스키연맹 감독님이 ‘총도 쏘고 스키도 같이 탈 수 있는 종목’이라고 소개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꿈나무 캠프인 줄 알고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본격적인 훈련이었고 대회 출전까지 해야 했다. 다행히 당시 예정됐던 대회가 취소되면서 한 달 반 동안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후 신인 선수로 발탁돼 국가대표까지 선발되면서 지금의 길로 이어졌다.
하계 시즌에는 수영선수로도 활동했다. 노르딕스키에 도움이 됐나.
2023년까지 수영과 노르딕스키를 병행하다가 이후에는 노르딕스키에 집중하고 있다. 수영은 초 단위로 페이스를 조절하는 훈련이 중심이기 때문에 노르딕스키로 전향한 이후에도 세밀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두 종목 모두 근력과 유산소 능력이 중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어 이전에 쌓아온 기초체력과 지구력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스마일리’라는 별명도 화제가 됐다. 힘든 순간은 어떻게 이겨내나.
힘든 순간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생각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인 만큼 그에 따르는 어려움도 책임지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마주할 때도 있지만 그 또한 더 나은 결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받아들인다. ‘스마일리’라는 별명은 패럴림픽 당시 장비 검사관이 코치님께 ”이 총이 스마일리 총이냐“고 물으면서 시작됐다. 단순히 ‘웃는다’는 의미를 넘어 결국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극복했다는 뜻으로 느껴져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20㎞ 인터벌 스타트 좌식에 첫 도전해서 금메달을 땄다.
20㎞ 종목은 한 번도 도전해본 적이 없다. 이미 메달을 네 개나 획득한 상황이었고 체력 부담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감독님은 출전을 반대했다. 눈과 비가 내린 뒤라 코스도 상당히 질퍽한 상태였지만 마지막 경기여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경기 중반부터는 코치님들이 페이스 체크도 안 해주셨는데 결승선을 통과하고 보니 1위였다. 순위를 인식하면 페이스 조절이 안 될까 봐 일부러 그러셨다고 한다. 마음 편하게 탔던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스포츠를 시작하려는 장애인에게 큰 희망이 됐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장애인 중에는 스포츠를 하나의 높은 벽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계 종목은 접할 기회가 적어 더 어렵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시작해 보면 그 벽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번 벽을 넘는 경험을 하면 그다음은 훨씬 수월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도전하려는 의지다. 또한 많은 장애인 학생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진학하고 있는 만큼 학생 시기부터 다양한 체육활동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면 장애인 스포츠는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동계패럴림픽에서 활약이 기대된다.
”60세까지 패럴림픽에 출전하면 좋겠다“는 덕담을 들은 적이 있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도전을 이어가고 싶다. 내가 세운 기록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메달에 안주하기보다 이번 경험을 발판 삼아 계속 발전하고 성장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뛰어나고 멋진 패럴림픽 선수들이 등장할 것이라 믿는다.
계주 종목에도 도전하겠다고.
이번 패럴림픽에서는 선수층이 부족해 계주 종목에 출전하지 못했다. 계주는 메달을 떠나 대한민국 선수단이 하나의 팀으로 함께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4년 뒤에는 꼭 계주 종목에도 출전하고 싶다.
앞으로 선수로서 또 인생의 목표로 그리고 있는 모습이 있다면.
소소한 목표일 수 있지만 친구들과 카페나 노래방에 가는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싶다. 운전면허를 따는 것도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다. 언젠가는 큰 차를 몰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당장은 거창한 목표보다 현재의 선수 생활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리고 20년쯤 뒤에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많은 분처럼 유망한 신인 선수들을 발굴해 노르딕스키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싶다.
백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