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하위 70% 대상 고유가 피해지원금,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교통비 부담 완화, 소상공인과 지역상권에 대한 간접 지원은 모두 비용 충격이 가장 크게 닿는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피해가 누적될 수 있는 취약계층을 선제적으로 보호해 중동발 충격이 생활과 현장에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막는 데 이번 추경의 중요한 목적이 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중동발 충격이 길어질수록 우리 경제가 받는 부담은 더 이상 추상적인 불안이 아니다. 숫자가 이미 이를 보여준다. 국제유가는 미국-이란 휴전 진전에 따라 다소 안정되는 모습이지만, 그 직전 한때 배럴당 120달러 안팎까지 치솟는 등 큰 변동성을 보였다. 서울 지역 평균 휘발유 가격도 2000원을 넘어섰다. 고유가 충격이 더 이상 국제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 생활비와 기업 비용으로 이미 옮겨왔음을 뜻한다.
이런 중동발 충격에 대응하는 이번 추가경정예산은 단순한 경기부양책이라기보다, 외부 충격이 민생과 산업 현장으로 번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한 선제 대응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동전쟁으로 물가의 상방압력과 성장의 하방압력이 함께 커지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 지금은 고유가와 공급 차질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기다.
실제 이번 추경의 의미는 특정 지원금 하나에만 있지 않다. 정부가 편성한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은 고유가 부담 완화 10조 1000억 원, 민생 안정 2조 8000억 원,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2조 6000억 원, 지방재정 보강 9조 7000억 원, 국채 상환 1조 원으로 구성돼 있다. 고유가 대응과 서민 생활 안정, 수출·제조 현장 보호, 지역경제 방어를 한 틀 안에 묶었다는 점에서 이번 추경은 복합위기에 대응하는 종합 패키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곳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소득 하위 70% 대상 고유가 피해지원금,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교통비 부담 완화, 소상공인과 지역상권에 대한 간접 지원은 모두 비용 충격이 가장 크게 닿는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피해가 누적될 수 있는 취약계층을 선제적으로 보호해 중동발 충격이 생활과 현장에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막는 데 이번 추경의 중요한 목적이 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어선 가운데 20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철강공단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경유와 휘발유를 같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2026.4.20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산업 피해 최소화와 공급망 안정 대책도 이번 추경의 중요한 축이다. 수출바우처 확대, 정책금융 보강, 관광업계 저금리 자금 지원, 나프타·요소 수입비용 보조, 에너지·신산업 전환 투자 등을 통해 기업의 물류·자금·원자재 부담을 덜고 공급망 불안을 완화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수출바우처 지원 대상을 1만 4000개사 수준으로 확대하고, 수출 정책금융 7조 1000억 원과 관광업계 저금리 자금 2800억 원을 추가 공급하는 점도 기업과 지역이 함께 버틸 수 있는 여지를 넓히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기대효과 역시 분명하다. 고유가 충격이 커질수록 소비심리는 위축되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비용 부담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재정이 완충장치 역할을 해주면 가계의 불안, 기업의 유동성 부담, 지역경제의 위축을 동시에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방재정 보강이 포함됐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실제 현장에서 복지와 생활서비스, 지역사업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지방재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추경은 그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중동발 충격은 금리 인상이나 구조개혁만으로 즉시 흡수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공급충격에 가깝다. 따라서 이번 추경은 경기 전반을 무리하게 끌어올리는 수단이라기보다, 고유가와 물류 차질,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가계와 소상공인, 수출기업, 지역경제로 급속히 번지는 것을 일시적으로 막아내는 충격 흡수형 패키지로 작동해야 한다. 공급충격이 짧고 제한적으로 끝난다면 재정은 피해가 집중되는 계층과 업종, 지역에 신속히 자원을 연결해 충격의 전이를 막는 데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 충격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돼 물가상승 압력이 확산되고 기대인플레이션까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통화정책을 포함한 보다 종합적인 거시정책 조합이 필요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과장된 낙관도, 성급한 비관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추경을 일시적 공급충격에 대한 집중 대응 패키지로 분명히 위치시키는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민생과 산업, 지역경제에 충격이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막고, 중장기적 충격으로 전환될 조짐이 나타날 경우에는 그에 맞는 추가 정책수단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추경은 단순한 재정 확대가 아니라, 위기 초기에 가장 약한 연결고리를 먼저 지켜내기 위한 선제적 방어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