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피란 수도였던 부산에는 피란민들이 억척스럽게 일궈낸 삶의 궤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피란민들이 얼기설기 엮어 만든 마을과 골목은 오늘날 부산만의 독특한 표정을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격년제로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여섯 차례 이름을 올린 부산 감천문화마을(이하 감천문화마을)도 그중 하나다.
신앙촌에서 시작한 피란민 집단 거주지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옥녀봉 산중턱을 따라 층층이 들어선 감천문화마을의 기원은 구한말 부산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인 거주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50년대 반달고개 일대에 있던 ‘태극도마을’로 이어지며 오늘의 형태를 갖췄다.
초기의 태극도마을은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수행하던 일종의 신앙촌이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국 각지의 신도들이 피란해 모여들면서 마을은 거대한 판자촌으로 변모한다. 부산의 낙후된 달동네였던 판자촌은 형성 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해 오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게 유일한 변화였다. 30여 년 동안 정체돼 있던 마을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콘텐츠 융합형 관광지원사업’,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등 문화예술 기반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자리 잡았다. 2016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2019년에는 연간 300만 명 이상이 찾는 부산의 대표 명소가 됐다.
‘한국의 마추픽추’
‘물이 달고 좋다는 뜻’을 지닌 감천(甘川)문화마을을 명소로 만든 것은 산비탈을 가득 메운 집들의 색채다. 형형색색 지붕과 벽이 마치 조각보를 이어붙인 듯 하나의 거대한 패치워크 작품 같다.
경사면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계단식 주거 형태는 페루 옛 잉카제국의 유적 마추픽추와 닮았다고 해서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칭이 붙었다. 또 파스텔톤 집들과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은 그리스 산토리니, 이탈리아 친퀘테레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이곳의 진짜 의미는 풍경에만 있지 않다. 감천문화마을은 전쟁과 가난을 견뎌낸 서민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치열했던 현대사의 장면들이 배어 있다.
‘미로미로’ 골목을 걷다
감천문화마을의 매력은 소박한 골목길에 숨어있다. 막다른 길인 듯 보이던 골목이 다시 이어지고, 방향을 잃은 듯 걷다 보면 뜻밖의 풍경과 마주한다. 천천히 걷는 것 자체가 하나의 탐험이 된다. 마치 모세혈관처럼 좁다란 길로 촘촘하게 이어진 미로미로(美路迷路) 골목길을 탐험하다 보면 아파트 단지나 빌딩 숲에서는 만날 수 없는 색다른 풍경과 마주친다.
해설사에 따르면 이곳의 집은 대부분 8평(약 26㎡)이 채 되지 않는다. 피란민들이 ”누워 다리 뻗을 자리만이라도“ 서로 내어주며 지은 집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집도 뒷집을 가리지 않고, 골목을 막지 않게 지은 것이 특징이다.
그 결과 만들어진 풍경은 시대극 세트장을 보는 듯하다. 골목을 거닐다 보면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견뎌낸 시간들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젊은 세대에는 레트로 감성의 여행지로,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이색 골목 여행지로 사랑받는 이유다.
마을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감천문화마을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전시 안내관 옥상의 ‘하늘마루 전망대’를 찾는 것이 좋다. 감천항과 부산항, 용두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특히 노을이 파스텔톤 지붕을 차례로 물들이는 풍경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한 포토존 ‘어린왕자&여우’ 조형물 앞도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다. 감천문화마을 제2안내소 부근이어서 찾기 쉽다. 주말이면 어린왕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줄을 선다. 조형물 아래쪽 어린왕자가 살았던 별의 명칭을 딴 ‘소행성 B612 기념품숍’에선 마을 입주 작가 등이 만든 기념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BTS 벽화’부터 ‘작은박물관’까지
산동네 좁은 골목은 그 자체로 전시관이다. 골목 탐험을 하는 동안 우연히 마주치는 벽화, 공공미술 작품, 포토존 조형물도 놓칠 수 없다. 부산 출신인 방탄소년단(BTS) 정국과 지민을 그려놓은 벽화 앞은 방탄소년단 팬 ‘아미’들 사이에서 ‘방탄 투어 인증 사진 명소’로 꼽힌다. 한복을 입고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 찍으려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별 보러 가는 148계단’은 이름 그대로 계단을 오르다 보면 별이 보일 정도로 힘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동이를 이고 오르던 옛 풍경을 담은 벽화는 당시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48계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감내어울터’다. 이곳은 부산시에서 2011년부터 진행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통해 옛 목욕탕 ‘건강탕’을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공방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모은 사진과 생활용품을 전시한 ‘작은박물관’도 이 마을의 시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을 입구에서 ‘까치고개’를 넘으면 ‘1023 피란 수도 흔적길’을 따라 ‘아미동 비석문화마을’로 이어진다. 일본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던 곳으로 피란민들이 집 지을 자재가 없어 비석과 주춧돌 등을 이용해 집을 지으며 형성된 마을이다. 가파른 골목을 힘겹게 오르는 연두색 마을버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억척스럽게 삶의 터전을 일궜던 이들 생각에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그래도 고개를 돌리면 모든 것을 품어줄 듯 넓고 활기찬 바다가 있다. 그 바다가 있었기에 이들은 다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희 객원기자
가까이 있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부산 엑스 더 스카이&그린레일웨이
감천항 가까이 감천문화마을이 있다면 미포항 근처엔 부산 엑스 더 스카이&그린레일웨이가 있다.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을 포함해 2회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부산 엑스 더 스카이(BUSAN X the SKY)는 해운대 엘시티 랜드마크타워에 있는 전망대다. 해운대 해변과 부산 시내를 비롯해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이기대, 달맞이고개, 동백섬 등 부산의 명소를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가까이 있는 ‘그린레일웨이’는 동해남부선 해운대 미포에서 송정까지 이어지는 옛 철도 구간을 재개발해 조성한 약 4.8㎞의 해안 산책로다. 산책로엔 다릿돌전망대와 바다소리갤러리, 해월전망대 등 쉼터가 마련돼 있고 해운대 해변열차인 스카이캡슐이 가까이 지나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