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 에너지 시장과 금융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정부가 범정부 차원의 비상대응체계를 강화하고 나섰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충돌이 3주 넘게 이어지면서 국제 유가와 원자재 수급, 금융시장 변동성, 실물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대외 변수가 아니라 민생과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 위기 상황으로 보고 국가 안보와 경제 안정을 아우르는 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정부 대응의 핵심 축은 에너지다.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할수록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수입 에너지 조달의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3월 5일 자원안보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18일에는 ‘주의’ 단계로 격상했다. 이어 24일 국무회의에서 에너지 절약 및 수급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LNG 의존 줄이고 원전·석탄 활용 조정
대책은 ▲LNG 소비 최소화를 위한 전원 믹스 조정 ▲석유류 절감과 강도 높은 에너지 절약 조치 시행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신속한 보급 확대다. 단기적인 소비 절감과 중장기 구조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LNG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발전원 운영 방식이 조정된다. 미세먼지 영향이 적은 날에는 석탄발전 운전 제한을 일부 완화하고 정비 중인 고리 2호기 등 원전 5기를 5월까지 재가동할 계획이다. 이는 발전 연료를 다변화해 수입 LNG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수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수요 관리도 병행된다. 공공부문은 승용차 5부제를 의무 시행하고 민간은 자율 참여를 유도하되 자원안보위기 단계가 ‘경계’로 상향될 경우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삼성·SK·LG·롯데·한화 등 대기업도 정부의 방침에 맞춰 자발적 차량 부제 운영에 나서기로 했다.
산업계에 대해서는 석유 사용량이 많은 50개 기업에 절감 계획 수립을 요청하고 목표를 달성한 기업에는 ‘에너지절약시설 융자사업’ 우선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국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생활 속 절약 방안도 제시됐다. 정부는 승용차 5부제 참여, 대중교통 이용, 적정 실내온도 유지, 낮 시간대 전력 사용 분산 등으로 구성된 ‘에너지 절약 국민행동 요령’을 제시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에너지 구조 전환에도 속도를 낸다. 올해 안에 재생에너지 7GW 이상을 보급하고 ESS 1.3GW 설치를 함께 추진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친환경 정책인 동시에 에너지 안보 전략으로 해외 공급망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위기 넘어 전환 기회로“
정부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최고 컨트롤타워로 하고 총리 주도의 ‘비상경제본부’를 가동해 범부처 원팀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비상경제본부 산하에는 거시경제·물가대응, 에너지수급, 금융안정, 민생복지, 해외상황관리 등 5개 실무대응반을 운영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3월 25일 브리핑에서 ”중동발 위기가 엄중하지만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국민과 함께 힘을 모은다면 위기 극복을 넘어서 국가대전환의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기 충격을 넘어선 구조적 시험대로 보고 공급망 안정과 자본시장 체질 개선, 에너지 구조 전환 등 중장기 과제도 속도감 있게 추진할 방침이다.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