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그럴 수 없는 공간이 하나 있다. 1980년대 중학교 시절의 화장실이다. 당시 학교 화장실은 소위 ‘푸세식’이라 불리는 재래식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 발밑 깊숙한 곳에서 소리 내며 달려드는 파리떼는 덤이었다. 특히 청소당번인 날은 아직도 기억난다. 군대식으로 학생들을 몰아세우던 담당 선생님은 짧게 말했다. ”바닥을 핥아도 될 만큼 깨끗하게!“ 그때 한 친구가 코를 싸쥐며 뱉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야, 유럽은 돈 내고 화장실 간다는데, 우리는 이 정도면 돈을 받고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
선진국에서 태어난 지금의 10~20대에게 내 중학교 시절은 다른 나라 이야기만큼이나 생소할 것이다. 지난해 1월에 일본 도쿄 시부야의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현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뚫고 만난 그곳은 화장실이라기보다 차라리 ‘작은 미술관’에 가까웠다.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반 시게루 같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 16명이 참여해 만든 17곳의 공공 화장실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었다.
특히 요요기 후카마치 소공원에 설치된 반 시게루의 ‘투명 화장실’은 충격적이었다. 평소에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면 유리벽이 불투명으로 변한다. 화장실 내부의 청결 상태와 치한의 유무를 밖에서 미리 확인하게 하려는 배려가 담긴 디자인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배우 야쿠쇼 고지가 맡은 청소원 ‘히라야마’가 거울 구석구석을 정성껏 닦던 그 화장실이 바로 여기다.
일본에서 화장실은 단순한 배설의 공간이 아니었다. 타인을 극진히 대접한다는 의미인 ‘오모테나시(환대)’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여겨지던 화장실을 통해 도시의 격을 높이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예술적 공간이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돼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유럽은 자타가 공인하는 ‘유료 화장실’의 본고장이다. 화장실에 돈을 매긴 역사는 무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 시내 오줌통에 ‘오줌세’를 처음 물렸다. 당시 오줌은 세탁업자가 천을 표백하는 데 사용했는데 황제는 여기에 세금을 매긴 것이다. 아들 티투스가 ”어떻게 그런 지저분한 것에 세금을 매기냐“고 반문하자 황제는 세금으로 거둬들인 금화를 아들의 코끝에 들이대며 명언을 남겼다.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Pecunia non olet).“
화장실이 수익모델로 등장한 인류사적 첫 장면이다. 지금도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인은 카페나 기차역에서 동전이 없으면 입구를 막아서는 관리인이나 유료 개찰구 앞에서 문화적 충격을 겪는다. 1유로(약 1500원)를 내야 열리는 문 앞에서 우리는 ‘인심 야박하다’고 투덜대지만 그들에겐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비용’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에서도 ‘유료 화장실’이 등장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카페의 키오스크 메뉴판에 2000원에서 5000원 사이의 ‘화장실 이용권’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음료 주문은 하지 않은 채 화장실만 이용하고 가는 이른바 ‘화장실 빌런’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자영업자가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사유재산인 카페 화장실을 아무나 들어와 험하게 쓰게 둘 수는 없다“는 자영업자들의 호소와 ”그래도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공간인데 인심이 너무 박하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민간 건물 화장실을 ‘개방 화장실’로 지정하고 휴지나 비누 같은 소모품 지원금을 주며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건물주가 급증하고 있다. 도심 집회나 시위 참여자가 무분별하게 이용하며 화장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거나 시설물을 파손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유료 화장실, 개방 화장실이 반드시 ‘불통’과 ‘야박함’의 상징인 것만은 아니다. 발상을 전환해 수익과 만족을 동시에 잡은 흥미로운 해외 사례도 있다. 첫 번째는 미국 뉴욕 미드타운에 있는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 화장실이다. 이곳은 공공 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고급 호텔 못지않은 시설로 유명하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신선한 생화가 꽂혀 있으며 전담 관리인이 상주한다. 이곳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약 27만 달러(약 3억 6000만 원)에 달하지만 시민들에게는 무료다. 대신 인근 건물주들이 내는 분담금과 기업 후원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한다. ‘깨끗한 화장실이 공원의 품격을 높이고 결국 주변 부동산 가치까지 올린다’는 전략적 판단이 커튼 뒤에 있다.
두 번째는 영국 런던의 ‘어텐던트(The Attendant)’다. 이곳은 과거 빅토리아 시대의 유료 공중 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이색 카페다. 1890년대 만들어진 소변기 구조물을 그대로 살렸고 화장실 특유의 타일 벽면을 세련된 인테리어로 승화했다. 과거에는 1페니를 내고 용변을 보던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5~7파운드 내외의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며 머무는 문화 공간이 됐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화장실 하드웨어’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에 올랐다. 이제는 그에 걸맞은 ‘소프트웨어’, 즉 시민의식이 필요할 때다. 타인의 공간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함이 이어진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모든 화장실 입구에서 신용카드를 태그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어수웅
조선일보에서 문학, 영화, books 등 문화부 기자를 오래했다. 지은 책으로 ‘탐독’ ‘파워 클래식’ 등이 있다. 주말뉴스부장, 문화부장, 여론독자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