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군위군 ‘사유원(思惟園)’에 가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자연에 기댄 건축, 건축과 어우러진 풍경이 조용히 생각의 숲으로 이끈다. 이 생각의 숲은 사계절 중에서도 모과나무가 꽃을 피우는 4월 중순부터 정향나무가 꽃을 피우는 5월 중순까지가 특히 아름답다. 마음에 여백이 필요한 때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처음 이름 올린 사유원에 발을 들였다.
모과나무가 만든 기적
대구의 명산인 팔공산과 마주한 약 15만 평(50만㎡) 규모의 사유원은 이름처럼 ‘사유’를 테마로 한 정원이다.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만 해도 자연스레 생각이 깊어지도록 이끄는 정원과 건축물을 품고 있다. 2021년에 개장해 2024년 9월부터 일반에 본격 공개된 사유원은 대구 외곽 군위군에 자리해 있고 비교적 높은 관람료와 관람인원 제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만 전국에서 약 5만 명이 찾았다. 개장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4년 ‘우수 웰니스 관광지’, 2025년 ‘한국관광의 별’에도 이름을 올리며 우리나라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사유원의 출발점은 ‘모과나무’다. 1980년대 설립자가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밀반출되려던 300년 수령의 모과나무를 발견해 웃돈을 주고 되사들인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설립자는 오랜 시간 동안 보전 가치가 있는 전국의 노거수를 모아 이곳으로 옮겨 가꾸며 거대한 정원이 완성됐다. 사유원 역사의 단편이 된 그때의 모과나무는 ‘풍설기천년’ 정원에서 만날 수 있다. 목련길·백일홍길·고송길·모과길 네 개의 추천 코스 가운데서 ‘모과길’을 따라가보았다.
‘모과길’ 따라 사유원 한 바퀴
모과길은 3~4시간 정도 소요되는 순환 코스다. 출입문인 ‘치허문’이나 ‘곡신문’에서 출발하는데 울창한 리기다소나무 숲길을 걷고 싶다면 ‘비나리길’을 거치는 치허문을 출발점 삼는 게 좋다. 제주의 사려니숲을 옮겨놓은 듯한 비나리길은 소나무가 숨 가쁘게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한낮은 물론 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에 더욱 운치가 살아난다. ‘좌망심재(坐忘心齋·고요 속에 머물며 마음을 내려놓다)’라는 비석을 시작으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문구들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마음 수행이 된다.
‘풍설기천년’ 정원에 이르면 다랑논처럼 단차를 둔 계단식 정원에 108그루의 모과나무가 펼쳐진다. 평균수령 300년으로 오랜 세월 바람과 서리를 견뎌낸 모과나무 군락은 사유원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특히 밑동이 파인 채로도 꽃과 열매를 맺는 650여 년 수령의 고목(古木)은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모과꽃은 보통 2주 남짓 피지만 시기를 놓쳐도 크게 아쉬워할 것 없다. 곧이어 정향나무가 꽃을 피우며 봄의 흐름을 이어간다.
길을 따라 걷다 물소리가 또렷해지면 ‘유원’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아름다운 수형의 소나무와 돌로 꾸민 정원은 한국 정원의 미학을 담아낸 공간이다. 정자에 잠시 앉아 옛 선비처럼 풍류를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모과길의 전환점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찻집 ‘가가빈빈’이다. 건축가 최욱이 설계한 수평형 건축으로 주변 지세를 따르며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형태다. 이곳에서는 300년 된 모과나무 열매로 만든 모과차, 은은한 향의 애플매실차 등을 맛보며 쉬어갈 수 있다. 가가빈빈 바로 앞 족욕 공간인 ‘탁족탕’을 지나치면 손해다. 우물처럼 생긴 아담한 탕에 발 담그고 앉으면 발이 시원하다 못해 시리다. 눈앞으로는 사유원과 팔공산이 차례로 펼쳐진다.
알바로 시자부터 승효상까지, 건축 투어도
사유원의 또 다른 축은 건축이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포르투갈의 건축 거장 알바로 시자를 비롯해 승효상, 최욱 등 국내외 건축가들이 공간 곳곳에 사유의 장치를 배치했다.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은 흰 벽의 네모난 프레임 안으로 숲과 빛을 끌어들인다. 소요헌 가까이엔 ‘새둥지 소대’라고도 불리는 전망대가 있다. 그의 제안으로 탄생했다는 전망대는 숲속에 있는 거대한 잠망경 같다. 15도쯤 기울어진 20.5m의 탑을 오르는 동안 방향에 따라 사유원의 풍경이 각기 다른 구도로 펼쳐진다.
승효상의 건축 ‘명정’도 유명하다. 현생과 내생의 교차를 표현한 것으로 ‘눈 감고 죽음을 생각하는 집’이란 뜻이 담겨있다. 콘크리트벽으로 막힌 좁은 통로를 통해 미로 같은 길을 지나면 하늘만 열린 마당에 이른다. 마치 관에 누운 것 같은 공간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사유의 순례길에서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작은 오두막을 닮은 ‘내심낙원’도 들러보자. 빛이 머무는 침묵의 성소에 서면 종교를 넘어서 경건해진다.
하산 길엔 일부러 느티나무 숲으로 빠져본다. 해가 느슨해진 숲에선 또 다른 사유가 시작된다. 반쪽짜리 몸으로 살아가는 모과나무로부터 생명력을 배우고 명정에서 삶과 죽음을 떠올린 뒤 숲을 빠져나오는 길, 그 사이에 마주친 문장들이 걸음을 따라 마음에 내려앉는다.
박근희 객원기자
사유원
주소 대구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76
관람료 성인 기준 평일 5만 원, 주말·공휴일 6만 9000원
문의 (0507)1317-1371
가까이 있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팔공산국립공원(파계사지구)
사유원과 가까이 있는 대구 동구 팔공산은 세 차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대구분지의 북쪽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대구의 대표 산 중 하나로 ‘공산’, ‘부악’, ‘중악’, ‘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사찰 ‘파계사’를 중심으로 한 파계사지구는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을 끼고 있어 ‘팔공산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신라 애장왕 때 심지왕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파계사는 조선시대 영조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조선시대 원찰(願刹·선왕을 추모하고 능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찰)로 영조의 도포를 비롯해 원통전,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등이 보존돼 있다. ‘파계’란 이름은 절 주변에 흐르는 아홉 개의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근처에 수태골 등 계곡과 파계야영장 등이 있어 피서지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