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물 관련 정책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 있어요. 제로에너지건축(ZEB·Zero Energy Building)이에요. 이름만 들으면 ”건물이 에너지를 아예 안 쓰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아직 어려운 이야기죠. 그럼 제로에너지건축은 뭘까요?
ZEB란 건물이 쓰는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고 그래도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 에너지 부담을 크게 낮추는 건축물을 말해요. 관련 법령에서도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로 정의하고 있어요.
제로에너지건축을 만드는 핵심 기술은 두 단계로 이뤄져요. 먼저 건물 안의 에너지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에요. 단열을 강화하고 고성능 창호를 쓰고 건물 틈새를 줄여 냉난방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합니다. 그런 다음 건물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쓰게 해요. 고효율 설비와 태양광, 지열 같은 에너지 생산 장치를 더해 자가생산 시스템을 만들죠. 그래서 ZEB는 단순히 지붕에 태양광만 얹는 정책이 아니라 건물의 설계·시공·운영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제도라고 볼 수 있어요.
공공 선도에서 민간 확산으로
정부가 이 제도에 힘을 싣는 이유는 뭘까요? ‘탄소중립’이란 과제 때문이에요. 건물은 우리가 매일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에 냉난방, 급탕, 조명 등에 많은 에너지를 써요. 따라서 탄소중립을 하려면 공장이나 자동차뿐 아니라 건물의 에너지 성능도 함께 높일 필요가 있죠. 이런 배경에서 국토교통부는 제3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2025~2029)을 통해 ZEB 확산, 인증제도 개선, 노후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확대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어요. 효율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인증 기간도 80일에서 60일로 줄여 제도 활용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에요.
ZEB 정책의 흐름은 이제 ‘공공 선도’에서 ‘민간 확산’으로 넓어지고 있어요. 그동안은 공공 건축물을 중심으로 ZEB 인증 의무화가 추진돼 왔는데 이제는 민간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까지 본격적으로 끌어올리는 단계예요.
국토부는 2025년 12월부터 연면적 1000㎡ 이상 민간 건축물이 인허가를 받으려면 ZEB 5등급 수준을 갖추도록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을 강화한다고 밝혔어요. 창호, 조명, 냉난방설비 등 8개 항목의 성능을 높이고 태양광·지열 등 신재생설비 설치도 의무화해 건물이 일정량의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에요.
이로써 ZEB는 더 이상 일부 상징적 공공건물에만 적용되는 제도가 아닌 우리 삶에 필수적인 탄소중립 기술로 자리 잡고 있어요.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먼저 기준을 끌어올리고 민간에는 제도와 인센티브, 컨설팅을 결합해 참여를 넓히는 방식을 쓰고 있어요. 한국에너지공단도 2025년 ZEB 에너지 최적화 컨설팅 지원사업을 통해 인증을 준비하는 건축물에 컨설팅과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어요. 특히 법정 의무등급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인증을 받으려는 건축물을 우선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고 있어요. 단순히 ‘의무를 맞추는 수준’을 넘어 상위 등급 확보를 유도하는 구조예요.
한전 강원본부 신축 사옥 에너지 자립률 100%로
그 성과가 이제 서서히 숫자로 확인되고 있어요. ZEB 통합 인증시스템에 따르면 2026년 4월 20일 기준 전국 ZEB 인증 건수는 1만 578건이에요. 평균 에너지자립률은 44.53%예요. 지역별로는 경기가 2068건으로 가장 많고 경남 923건, 경북 899건, 서울 779건 순이에요. ZEB가 실험 사례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죠.
최근 인증제의 파급효과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도 나왔어요. 한국전력은 2026년 4월 강원본부 신축 사옥을 ZEB 1등급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어요. 원래는 ZEB 3등급 예비인증으로 계획했지만 이를 1등급으로 상향한 것이에요. 이 사업은 공공·민간을 통틀어 대형 업무시설급 사옥에서는 이례적인 ZEB 1등급 추진 사례로 평가돼요. 고효율 태양광, BIPV(건물 일체형 태양광), 수소연료전지 등 신기술을 접목해 에너지자립률 100% 이상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어요. 이제 ZEB 인증제는 실제 기술 개발과 고등급 경쟁을 이끄는 장치가 되고 있어요.
‘녹색 실험’ 넘어 미래 건축 기준으로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어요. 민간으로 의무화가 넓어질수록 초기 공사비 부담, 설계 변경 부담, 사업성 문제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어요. 정부는 에너지 비용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경제성’이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죠. 앞으로는 단순히 인증 건수를 늘리는 데서 나아가 운영 단계에서 냉난방비가 얼마나 줄었는지 유지 관리가 얼마나 잘되는지까지 검증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더 정교해질 것으로 보여요.
새로운 건축물을 잘 짓는 것만큼 기존 건물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예요. 이미 지어진 건물에 단열 보강, 창호 교체, 노후설비 개선을 하는 그린리모델링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어요.
ZEB 정책은 이제 도입 단계를 넘어 확산 단계에 들어섰어요. 법과 기본계획이 틀을 만들고 공공 의무화와 민간 기준 강화가 시장을 움직이고 있어요. 여기에 컨설팅과 우수 사례 확산이 더해지면서 ZEB는 더 이상 낯선 ‘녹색 실험’이 아니라 미래 건축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어요.
건물은 이제 에너지를 쓰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절감하고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어요. 기후위기에 응답하고 가계 경제까지 살리는 ‘에너지 선순환’의 시작점이 되고 있어요.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