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인천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428번길 46-27
운영시간 매일 12~18시 북스테이 문의 010-2598-3947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자 작은 농가주택 한 채가 쏟아지는 봄볕을 받고 서 있었다.
”계세요?“
문을 두드리자 책방지기 김현숙 씨가 눈을 비비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유~ 인터뷰 안 하면 안 돼요?“
잠에서 막 깬 그는 투덜대면서도 손수 주방에서 차를 끓여 내왔다.
”세수도 못 했는데… 그냥 알아서 둘러보고 가든지~.“
소문대로였다. 주인은 저 하고 싶은 거 하고 손님들이 알아서 책 보고 뒹굴거리며 놀다 간다는 시골 책방. ‘작고 불편함. 그러나 좋은 책, 그리고 많은 정’이라는 책방 블로그 소개글을 떠올리며 대화를 간청했다. 시골 마을 꼭꼭 숨은 책방에 11년째 전국서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가 뭘까. 자칭 ‘시골 아줌마 책방지기’는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운영하는 책방“이라고 짧게 답했다.
책방지기 놀러 나가면 손님이 책 팔고
인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책방 ‘국자와 주걱’은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간판 하나 없이 담벼락에 책방 이름만 붓글씨로 작게 쓰여 있다. 범상치 않은 책방 이름은 강화도 사는 함민복 시인이 지어줬다고 한다. 각자 쓰는 숟가락, 젓가락과 달리 음식을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쓰는 국자와 주걱처럼 책방이 지식과 정을 나누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90년 넘은 세월을 뒤집어쓴 농가주택은 책방이자 김 씨가 거주하는 집이다. 인천 토박이인 그가 강화도로 온 건 21년 전인 2005년. 책방을 차린 건 시골살이가 10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도시 생활에 더 이상 적응을 못 하고 시골로 떠돌아다니다 이 집을 만났어요. 소박하고 담백한 게 꼭 마음에 들었죠. 책방을 차린 건 특별한 계기도, 별 뜻도 없었어요. 책방을 열겠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책을 보내줬고 책이 쌓이니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더군요. 몇 번 문을 닫을까도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뭘 그만두냐 그래요. 지금처럼 대충 하라고, 하하. 책방은 그렇게 10년 동안 손님들의 의지로 이어져온 거예요.“
자물쇠가 걸린 공간은 하나도 없다. 영업시간 외에도 굳이 문을 잠그지 않는다. 정해진 이용 방법도 없다. 잘 놀고 잘 쉬다 가면 그만이다. 다만 벌레가 들어오니 마루 문은 꼭 닫을 것. 방문객은 신발 벗고 두 다리 쭉 뻗은 채 책 보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지루하면 주방에서 직접 탄 커피를 들고 뒤뜰에서 설렁설렁 그네도 탄다.
마실 나간 책방지기를 대신해 앞 손님이 뒷 손님에게 책을 파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그러고 있으면 어느새 돌아온 책방지기가 동네 산책이나 하자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머 제비꽃 잔뜩 올라온 거 보여요? 어느 틈에 이렇게 나왔대. 곧 백합이 피면 온 동네가 백합 동산이 된다고. 풀도 뽑아야 하는데 손님들은 풀이랑 꽃을 구별 못 하니 영 시켜먹을 수가 없어.“ 책방지기의 수다가 풍경 소리와 함께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다.
강화도 ‘절친’ 예술가 모여 북토크
김 씨가 살림을 정리하고 책방으로 꾸민 ‘ㅁ자’형 마루엔 2000여 권의 책이 사방으로 빼곡했다. 책은 소설, 수필, 인문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여놓지만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 ‘쓰레기후위기’ 등 환경, 인권, 차별에 관심 많은 책방지기의 취향을 짐작하게 하는 책이 많았다. 이쯤 되니 그의 과거가 궁금했지만 ”너무 깊이 알려 하지 말라“는 대답에 물음을 거뒀다.
김 씨는 흔히 ‘벽돌책’이라 일컫는 두꺼운 책을 추천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900쪽에 걸쳐 인류 문명에 대한 통찰을 전하는 ‘모든 것의 새벽’이나 인간과 숲의 관계를 1300쪽에 담은 ‘고규홍의 나무’ 등 한 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책을 누가 읽을까 싶지만 이곳에선 모두 잘 나간다고 한다. ”손님들도 책방지기를 닮아 요상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화도 출신 작가나 인천을 배경으로 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것 역시 이곳만의 매력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유명한 김중미 작가는 책방지기의 강화도 ‘절친’이자 북토크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인천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평생 약자를 위해 살아온 조옥화의 삶을 기록한 책 ‘길 위의 간호사’ 북토크도 조만간 열 계획이다. 북토크는 책방지기가 열심히 하는 일 중 하나다. 무대는 농가주택 뒷마당, 사회자는 그때그때 동네에서 적당한 사람을 골라 섭외한다.
”어떤 때는 행사가 시작됐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어요. 그럼 사회자, 저자, 나 셋이서 신나게 떠드는 거예요. 우리끼리 놀다 보면 어디서 하나둘 사람들이 오기 시작해서 끝날 때쯤 되면 마당이 꽉 차요. 지난번엔 지역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을 불렀는데 별 특이한 사람이 다 오데요. 얼마나 재밌게요. 어떤 작가는 북토크 하러 왔다 이웃집으로 이사까지 왔어요.“
별 총총 밤하늘 아래 즐기는 ‘북스테이’
호젓한 시골 책방의 정수는 ‘북스테이’다. ‘국자방’, ‘주걱방’이라고 쓰인 두 개의 방 중 한 곳에서 하룻밤을 온전히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평소 책 한 권 안 읽던 사람이라도 이런 곳에서라면 종이가 술술 넘어갈 법하다. 책을 안 읽으면 또 어떤가. 별이 총총히 박힌 까만 밤하늘을 이불 삼아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고요한 시골집서 넋 놓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도시민에겐 비싼 호캉스보다 귀한 경험이 될 터다. 주방은 자유롭게 이용하되 설거지와 이불 정리는 직접 해야 한다는 소박한 이용수칙만 따르면 된다.
뜨끈한 마룻바닥에서 실컷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책방지기가 손수 차려준 아침 밥상도 받을 수 있다. 상추, 고추, 부추, 가지, 겨자채, 미나리 등 책방 앞마당에서 쑥쑥 자란 채소와 뒤뜰 장독에서 오래 묵힌 각종 장류가 재료다. 김 씨는 귀찮을 땐 장애인 청년들이 운영하는 책방 인근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사주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말하면서도 옥수수와 파밭, 참나무, 오디나무에 내내 정신이 팔려 있었다.
책 말고 꿈을 파는 곳
그렇게 온전히 하루를 책방에서 보내고 나면 책방지기와도 허물 없는 사이가 된다. 어느새 손님들은 누가 물은 적도 없는 인생사를 술술 털어놓는단다.
”뭐가 고민이다, 뭘 하고 싶다 별별 얘기를 다 해요. 제주에서 책방 한다던 손님이랑은 절친이 돼서 잠깐 책방을 바꿔 운영한 적도 있어요. 근데 이젠 나이를 먹어서 기억이 잘 안 나요. 전에 왔던 손님이 자기 친구들까지 끌고 와선 ‘또 왔어요’ 하면 아는 척하다 결국엔 딱 걸리지. 그럼 또 어때요. 이야기하면서 다시 친해지는 거예요, 허허.“
10년이 지났지만 책을 잘 파는 요령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삶의 무게를 잔뜩 짊어지고 책방을 들어선 청년에게 기꺼이 일자리를 내어주고, 여행 책방을 해보고 싶다는 학생 손님에게 서가 한편에 꿈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할 뿐이다. 물론 책방지기 자신의 꿈을 키우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 몇 달 전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제주에서 딱 1년씩만 책방을 여는 ‘일년서가’ 운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김 씨는 서울로 돌아가는 취재진에게 다음엔 강화도 돈대에 함께 가자고 했다. ”제주 올레길 걷듯 진, 보, 돈대를 찾아다니는 게 강화 여행의 묘미“라면서. 인터뷰가 내키지 않다던 책방지기의 주름진 얼굴에 어느새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김삿갓 같던 그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얼굴이 스쳐갔다. 우물가에서 자던 고양이 ‘요리’가 나와 ‘야옹~’ 하고 배웅했다.
조윤 기자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지금 읽기 좋은 책 엄마만 남은 김미자
김중미(사계절)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쓴 김중미 작가의 가족 에세이. 인지장애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이 엄마였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는 ‘엄마만 남은’ 엄마를 마주한 뒤 작가는 엄마가 아닌 한 인간을 찾아나선다. 책에는 그가 빈민운동을 하며 더욱 뼈저리게 느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고민, 가족 내 남성의 삶, 가족주의의 양면성 등이 폭넓게 담겼다.
길 위의 간호사
안미선(산지니)
약자의 편에서 새 세상을 꿈꾼 간호사 조옥화의 삶을 기록한 책.
저자는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서 방문간호사, 야학교사로 일하며 가난한 청소년과 노동자를 위해 헌신한 조옥화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 복원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노동과 여성, 의료와 공동체를 가로지르는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기록으로 읽힌다.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이송희일(삼인)
강연, 칼럼 등을 통해 기후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해온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저서.
작가는 비옥했던 벵골 땅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삼림자원을 찾아다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방글라데시 주민의 이야기 등을 통해 자연의 재앙으로 이해되는 기후위기가 실은 자본주의와 인종주의, 정치적 재앙임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