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이기는 조미료도, 묘수도 없다. 거의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조개는 유독 두드러진다. 올 봄에는 조개를 만나러 가보시라. 서해안의 어느 지역이든 바지락이 좋다. 칼국수를 끓여도 조개탕을 만들어도 좋다. 시원한 바다가 한 가득 들어 있는 그릇을 들이켜면 세상을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박찬일 셰프
대도시에서 바지락 칼국수집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과거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주로 마른멸치로 육수 내는 집이 많았다. 조개를 신선하게 운송하는 일이 쉽지 않았겠지. 이제는 음식의 지역성이 점차 허물어져 간다. 좋은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어쨌든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언제든지 바지락 칼국수를 사 먹으러 갈 수 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칼국수집에 다닌 적이 있었다. 안주인이 정갈하게 음식을 하고 남편은 홀을 보는 그런 흔한 집이었다. 내가 요리사라는 걸 안 그들은 심각하게 물었다.
"바지락이 요새 좋은 게 별로 없어요. 값도 많이 올라서 구하기도 쉽지 않고.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는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바지락이 맛있는 철이 아무래도 봄 정도잖아요. 제가 보니, 사장님은 사철 바지락칼국수를 팔고 있어요. 조개가 맛이 없을 때는 안 파시는 게 어떨까요. 소뼈로 하는 사골칼국수와 멸치칼국수를 주력으로 하시고, 바지락은 제철 메뉴로 하는 게 어떨까요."
그는 그다지 반색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저라고 왜 그 생각을 안했겠어요. 바지락을 안 팔면 앉았던 손님도 돌아서 나가버리곤 합니다."
국수골목 상인들이 칼국수를 준비하고 있다. 2025.12.2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제철이고 지역이고 흐려진 시대다. 전라도 음식을 강원도에서도 먹을 수 있고, 경상도 음식을 충청도에서도 판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지역이 어디 있냐고, 몇 시간만 달리면 재료가 전국을 누비는 나라인데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 나라의 골과 산과 바다는 깊고 주름져서 개성이 뚜렷하기도 하다. 김치 맛이 다 같아졌다고 해도 지역에 가보면 여전히 개성 강한 김치가 식당에 나오곤 하는 것처럼.
바지락 칼국수를 떠올리면 충청도 서산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처음 먹었던 땅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후배들과 철마다 산지로 재료를 보러 다녔다. 울진의 가자미며 고흥의 농어며 청주의 버섯 같은 제철 재료를 찾았다. 제철이란 건 잠깐 한눈을 팔면 번개처럼 미련없이 사라져버리는 존재다.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지는 못할망정 제 날짜를 지나치면 국물도 없다.
서산은 서울에서도 가깝고 해서 후배들이 종종 차를 몰았다. 겨울 끝자락에는 굴과 새조개를, 그 다음에는 그쪽에서 간재미라고 부르는 작은 가오리를, 어쩌다가는 너무도 제철이 짧은 투명한 실치를 보러 가는 땅이 그곳이었다. 그날도 그 무렵의 봄날이었다.
봄의 충청도 해안은 대개는 뿌연 날들이 많다. 다행히 그날은 아주 맑았다. 서산의 시장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수십 년 전에는 장날이면 함지를 들고 나온 아낙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생선들이며 해물등속과 이른 봄나물을 파는 흥미로운 장터가 열렸다. 간재미 몇 마리를 사서 시장 구석에 있는 밥집을 찾았다.
대도시는 어렵겠지만, 지역의 시장은 원래부터 '오마카세'가 된다. 원하는 메뉴를 적당히 만들어준다. 어물이 흔한 동네는 생선찌개가 언제든지 되고(물론 특정 생선을 콕 찍어서 말해도 좋다) 고기를 먹을 수도 있다. 좀 더 나아가면 아예 장을 봐서 재료를 가져다드리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재료 손질에는 이력이 난 할머니들이 아주 신이 나서 요리를 하신다.
그날도 그렇게 간재미를 회로, 무침으로 요청을 넣어두고 기다리는데 옆자리 아저씨들이 아주 맛있는 국수를 드시고 있는 게 아닌가. 커다란 양푼에 가득 국수를 담아서 후룩 후루룩 잡숫는 게 여간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바로 '바지락칼국수'였다. 흔하디 흔한 조개 바지락이라고 하지 마시라. 산지에서 먹는, 제철 바지락은 잊을 수 없는 미각이다.
어차피 다 같은 조개이고, 산지의 조개가 도시로 오는 것일 텐데 맛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 뭐, 그 정도의 생각으로 주인 할머니에게 우리도 칼국수를 좀 해달라고 말했다. 별일도 아닌 주문일 터라, 그러마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포를 한잔 하자 칼국수가 나왔는데 무심코 국물을 한 입 떠 넣은 후배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입을 다물었다. 뭐지, 모래라도 씹은 걸까. 왜 그래?
후배는 답도 없이 국물을 한껏 들이켰다. 질문 안 받겠다는 표정으로. 일행은 그렇게 바지락칼국수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조개가 얼마나 싱싱하고 영양을 가득 품었는지 진득한 육수를 뿜어냈다. 이 세상의 모든 조미료를 다 가져와도 이길 수 없는, 인간의 기술로는 발치에도 닿을 수 없는 감칠맛이 양푼의 열 배 크기로 밀려들어왔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고 시원했다.
몇 해가 지나고 다시 그 집을 찾아서 국수를 청했다. 불행하게도 감동의 그 맛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아주 명쾌하게 해답을 냈다.
"지금은 가을이여…"
이 얘기를 글 서두의 칼국수집 사장님에게 꼭 해드려야겠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이지. 조미료를 아무리 좋은 걸 써도 계절을 못 이긴다고 말이지.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