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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퇴직하지 않는다” 현장의 틈 메우는 퇴직공무원들

3월 30일 이른 아침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하남면의 한 가금류 농장. 농장 입구에 도착한 홍경수(63) 씨는 외부 감염을 막기 위해 방역복을 덧입고 장화를 갈아 신었다.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뒤 소독실로 들어가 두 차례에 걸쳐 소독을 하고 방문일지까지 작성한 뒤에야 축사 입구로 향했다. 전직 강원특별자치도 동물방역정책관이었던 그는 공무원을 퇴직한 후 가축방역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축사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현장을 훑었다. 차량의 소독 상태, 사료통 주변 관리, 외부인 출입 흔적, 소독 동선까지 그의 눈길이 닿는 곳은 사소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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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이른 아침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하남면의 한 가금류 농장. 농장 입구에 도착한 홍경수(63) 씨는 외부 감염을 막기 위해 방역복을 덧입고 장화를 갈아 신었다.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뒤 소독실로 들어가 두 차례에 걸쳐 소독을 하고 방문일지까지 작성한 뒤에야 축사 입구로 향했다.

전직 강원특별자치도 동물방역정책관이었던 그는 공무원을 퇴직한 후 가축방역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축사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현장을 훑었다. 차량의 소독 상태, 사료통 주변 관리, 외부인 출입 흔적, 소독 동선까지 그의 눈길이 닿는 곳은 사소해보이지만 방역의 성패를 가르는 ‘틈’들이다. 가축전염병은 이런 사소한 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는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익혔다. 수의직 공무원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지역 동물방역에 몸담아온 그는 말 그대로 ‘방역통’이다. 2021년 32년여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직한 그는 2025년부터 강원특별자치도가 운영하는 ‘퇴직공무원 가축방역관’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현장 공백 메우는 가축방역관
‘재난형 가축전염병 대비 가축방역관 운영 사업’은 퇴직한 수의직 공무원을 위촉해 축산농가와 축산관계시설을 돌며 방역과 예방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들은 축산농가, 도축장, 거점소독시설 등을 돌며 방역 점검과 예방 활동을 수행한다. 재난형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현장에 긴급 투입돼 초동 대응까지 맡는다.

이 같은 활동의 기반에는 인사혁신처에서 운영하는 ‘퇴직공무원 사회공헌사업’이 있다. 2017년 도입된 이 사업은 퇴직공무원의 전문성과 경험을 활용해 행정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퇴직 이후에도 공직 경험이 현장에서 현재진행형의 전문성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2026년에는 국민 안전, 사회통합, 행정혁신, 경제 활성화 등 4개 분야에서 총 56개 사업, 466명의 퇴직공무원이 참여해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보다 한층 확대된 규모로 그동안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다. 지난해까지 성과를 낸 42개 우수 사업에 더해 14개 신규 사업이 추가됐고 이 가운데 44개 사업에서 231명의 신규 참여자가 선발됐다. 지원 대상은 50세 이상 퇴직공무원으로 이번에 선발된 인원은 사전교육을 거쳐 5월부터 현장 활동에 들어간다.

사업 확대 방침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숫자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규 사업의 면면을 보면 정부가 퇴직공무원의 경험을 주로 어디에 활용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관계성 범죄 점검 지원단, 화재안전 취약자 안전 보살핌, 민간 시행 도로공사 품질·안전 지킴이, 수상·수중 레저시설 안전관리 체계 안착 지원, 찾아가는 출입국 민원서비스 도우미, 방위사업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인력이 부족한 분야로 공직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실무 감각이 국민 안전과 편의로 이어지는 영역이다.

홍경수 씨가 활동하고 있는 가축방역관 사업은 ‘국민안전’ 분야의 사업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2025년부터 가축방역관을 운영해왔는데 현장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현직 공무원은 행정 부담을 덜 수 있고 농가와 축산관계시설에서는 수의사 출신 퇴직공무원이 위험요인을 빠르게 짚어주니 만족도가 높다. 퇴직공무원 역시 전문성을 살려 노후에도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

퇴직공무원 전문성 활용 현장 방역 강화
실제로 현장에서 지켜본 가축방역관의 일은 단순 점검에 그치지 않았다. 농장주가 평소 어떤 방역 습관을 유지하는지, 사람과 차량의 이동 동선이 섞이지는 않는지,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얼마나 빨리 대응할 수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점검했다. 홍 씨는 ”농장주 대부분이 비슷한 또래라 눈높이에 맞춘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농장주가 ‘거점 소독과 차량 소독이 정말 가축전염병 예방에 효과가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저 번거로운 절차만 하나 더 생긴 것 아닌가 싶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전염병은 전파 경로를 끊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그제야 ‘왜 해야 하는지 알겠다. 그럼 열심히 하겠다’면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이것이 현장 교육의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2025년 전국적으로 국가재난형 가축전염병이 64건 발생한 가운데 가축방역관을 운영한 강원특별자치도에서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2024년 도내 발생건수가 11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강원특별자치도 동물위생시험소 방역과 박찬호 역학조사팀장은 ”퇴직공무원 수의사의 전문성을 활용한 현장 방역 강화가 예방 중심 대응체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며 ”발생 감소를 이 사업 하나로만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장 감시와 점검 체계를 강화한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화재·보이스피싱 예방까지
퇴직공무원 사회공헌사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큰 피해로 이어질 뻔한 화재를 방지했고, 전화 금융사기 피해를 예방했으며, 고독사 위기의 1인 가구 주민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대표 사례로는 조달청의 ‘공공조달 길잡이’ 사업이 있다. 기술력을 갖추었지만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창업·벤처기업이 공공조달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조달청 퇴직공무원이 맞춤형 컨설팅을 하는 사업이다. 2025년 퇴직공무원 3명을 전문위원으로 배치하여 111개 기업을 대상으로 260회 이상의 상담활동을 하였고 25개 기업이 실제 조달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전문위원을 12명으로 늘리고 기존 서울·대전 중심에서 전국 지방조달청으로 확대 배치했다.

퇴직공무원 사회공헌사업의 장점은 분명하다. 검증된 전문성을 사회가 다시 활용할 수 있고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야에 즉각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방, 방역, 조달, 출입국, 도로안전 등 분야는 달라도 공통점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와서 바로 짚어준다’는 점이다. 이는 곧 공공서비스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더 촘촘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앞으로도 퇴직공무원의 소중한 경험이 가치 있게 활용되고 국민과 사회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업을 발전해가겠다“고 밝혔다.

축사 점검을 마친 홍 씨는 떠나기 전 농장주에게 다시 한 번 기본을 강조했다. ”소독은 습관이어야 하고 평소의 관리가 가장 큰 방역“이라는 당부였다. 방역 수칙에 따라 축사를 빠져나오는 그의 발걸음은 익숙해보였다. 수십 년 쌓아온 경험은 나이가 들어도 퇴직하지 않는다. 사회 곳곳의 빈틈을 메우고, 작은 위험을 막아내며,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지켜내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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