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살고 있는 30대 남성 A씨는 하루에 두 번 출근한다. 첫 번째 출근은 아침 9시 종각역에 있는 사무실로, 두 번째 출근은 퇴근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한강공원으로 향하는 일이다. 저녁 7시 30분 이촌한강공원. 그는 몸을 풀고 있는 러닝크루(Running Crew) 사이로 자연스럽게 섞인다. 혼자 달릴 때면 ”오늘은 그냥 쉴까?“ 하는 유혹에 질 때가 많았지만 러닝크루에 합류한 뒤로는 빠지는 날이 거의 없다. 함께 뛴다는 연대감, 그리고 은근한 경쟁심이 오늘도 신발끈을 묶게 한다.
달리기는 자신의 페이스와 호흡에 집중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풍경이 달라졌다. 달리기는 이제 ‘관계 스포츠’로 재정의되고 있다. 이른바 ‘러닝크루’의 확산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 최근 발표한 2026년 봄철에 즐기기 좋은 ‘5대 생활체육’ 첫 번째도 바로 함께 달리는 ‘러닝크루’다. 달리기(Running)에 무리를 뜻하는 크루(Crew)가 합쳐진 말이다. 주로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퇴근 후 혹은 주말에 모여 함께 달리는 이 문화는 요즘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문화체육관광부 ‘2025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주요 10대 생활체육 종목 가운데 달리기 참여율은 전년 대비 60% 증가해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축구·풋살은 54%, 등산은 41%가 늘었고 걷기(-3%)와 골프(-5%)는 오히려 감소세를 보였다.
함께 달리는 것의 ‘힘’
서울 은평구에 사는 30대 여성 B씨도 러닝크루를 통해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B씨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코로나19 시기였다. 우울함과 답답함을 견디기 위해 집 앞을 무작정 뛰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지금은 10㎞, 하프마라톤을 차례로 완주했고 풀코스를 목표로 삼고 있다. B씨는 체력도 좋아졌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단단해진 것을 느낀다.
달리기를 포함한 유산소 운동이 우울과 스트레스 완화, 집중력 향상, 수면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함께 운동할 때’ 효과가 더욱 커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호주 제임스쿡대학교 연구팀이 2026년 2월 영국 스포츠의학 저널(BJSM)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그룹 운동은 개인 운동보다 우울 증상 감소 효과가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신체의 ‘동기화’에 있다. 미국생리학회의 ‘응용생리학저널(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1993년)’ 연구에 따르면 함께 달릴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심박·호흡·보폭을 동기화한다. 뇌는 이를 사회적 안전 신호로 받아들여 ‘유대의 호르몬’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한다. 운동이 유발하는 엔도르핀에 옥시토신까지 더해지면서 함께 달리는 것은 혼자 달리는 것과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다
러닝크루의 확산은 도시의 풍경도 바꾸고 있다. 서울에서는 한강과 남산, 반포종합운동장 일대가 대표적인 러닝 명소로 꼽힌다. 평일 저녁이면 수십 명이 함께 트랙을 도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남산 북측순환로의 오르막길은 근력을 단련하는 ‘업힐 트레이닝’의 성지로 불린다.
크루 활동은 주로 누리소통망(SNS), 취미생활 공유앱 등에서 ‘러닝크루’나 ‘달리기’ 등을 검색해 자신에게 맞는 모임을 선택해 참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 지역, 달리기 목적 등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단순한 동호회를 넘어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매주 정해진 장소를 가볍게 달리는 ‘정기런’부터 ‘인터벌 트레이닝’, ‘주말 장거리 트레이닝’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특히 인터벌 트레이닝은 일정한 거리를 전력질주한 뒤 쉬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쉽지 않다. 최소 20㎞에서 35㎞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장거리 훈련도 함께 뛸 때 완주 확률이 높아지고 기록도 단축된다.
러닝은 이제 운동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 GPS를 활용해 달린 경로로 그림을 그리는 ‘아트런’이 대표적인 예다. 남산을 한 바퀴 도는 ‘하트런’, 경복궁 주변을 달려 강아지 모양을 만드는 ‘댕댕이런’, 세종시 세종중앙공원을 달리는 ‘거북이런’ 등이 요즘 인기다.
이색 달리기를 원한다면
이색적인 시도도 이어진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누리소통망에서 인기를 끄는 ‘버터런 챌린지’다. 생크림과 소금을 지퍼백에 넣고 이중 포장한 뒤 5~10㎞를 달리면 부드러운 버터가 완성된다. 달리면서 재료를 흔들어 완성하는 ‘버터런 챌린지’는 ‘아이스크림런’, ‘봄동비빔밥런’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라톤대회 참가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런트립(Run+Trip)’도 새로운 흐름이다. 숙박·관광·마라톤 대회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상품이 늘면서 지역경제에도 적지 않은 효과를 낳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분석에 따르면 주요 마라톤대회 한 건이 개최 도시에 창출하는 경제 효과는 평균 50억 원을 웃돈다. 이 밖에 사찰의 고요함 속에서 달리는 ‘사찰런’, 산길을 누비는 ‘트레일런’처럼 지역 문화·자연을 결합한 달리기도 인기다.
러닝크루 문화의 빠른 확산 뒤에는 과제도 있다. 공원과 산책로는 모두의 공간이다. 대규모 러닝크루가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거나 자제를 요청하는 조치도 등장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단체 달리기를 금지할 명확한 근거는 없다. 공공 공간의 이용 권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시민의식과 에티켓이 요구되는 이유다. 러닝크루가 도심 속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으려면 함께 달리는 즐거움만큼 함께 쓰는 공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러닝크루는 더 빨리 더 멀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보폭을 맞추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하나 기자
직장인 러너가 말하는 러닝의 힘
직장인 러너 박경민(32) 씨는 4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서울하프마라톤 남자부문에서 1시간 11분 40초로 우승했다. 지난해 우승 기록 1시간 12분 37초보다 약 1분 빠른 기록이다. 사실 그에게 이번 우승이 더욱 값진 이유는 또 있다. 박 씨는 2023년 군 복무 중 떨어지는 물건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흉추 골절 부상을 입었다.
Q. 부상 후 달리기가 건강을 회복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됐나.
두 달가량 병원에 누워 지내면서 운동은커녕 일상 복귀도 어려웠다. 퇴원 후 조금씩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체력을 키웠다. 처음엔 깁스를 하고 3㎞ 달리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반복할수록 고통에 조금씩 적응하고 익숙해졌다. 퇴원 6개월 만에 10㎞를 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Q. 달리기가 일상에 미친 변화가 있다면.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뭔가를 꾸준히 쌓아간다는 느낌을 몰랐다. 지금은 하루하루 작은 노력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걸 느낀다. 기록이 좋아지는 순간도 기쁘지만 힘든 순간 포기하지 않고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힘, 스스로를 관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Q. 함께 뛰는 러닝크루의 매력은?
처음엔 혼자 뛰다 지금은 코치, 러닝크루와 함께하고 있다. 러닝크루의 힘은 같이 호흡하며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다. 혼자라면 힘든 순간을 더 견딜 수 있게 해주고 더 즐겁게 오래 뛸 수 있는 힘이 돼준다.
러닝코치가 알려주는 ‘부상 없이 달리는 법’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하다 다치는 것만큼 속상한 일은 없다. 2012년부터 유튜브 ‘지니코치’를 운영하는 이진이 코치가 ‘마라톤, 부상당하지 않고 잘 달리는 법’을 알려준다. 이 코치는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의 누리소통망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 내가 평소 달리는 속도보다 조금 더 천천히 달린다고 생각하면 페이스를 유지하기 쉽다. 처음부터 10㎞를 완주하겠다는 목표보다는 3~5㎞, 20~30분 달리기를 목표로 하면 좋다.
2. 초보자와 중급자 러닝의 큰 차이는 ‘회복’이다. 매일 10㎞를 달려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 반면 조금만 무리해도 부상을 입는 사람도 있다.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에 피로가 쌓이거나 통증이 느껴진다면 회복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일주일 내내 운동을 하면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만약 월요일에 운동을 했다면 화요일은 휴식하기를 권한다.
3. 운동하다 생기는 지연성 근육통은 회복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통증이다. 완전한 휴식보다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통증이 2~3일 지속되거나 점점 심해진다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오래 즐겁게 달리려면 적절한 쉼을 통해 회복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4.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한다면 대회 3개월 전부터 충분한 훈련 기간을 가져야 한다. 꾸준히 달릴 수 있게 에너지젤, 수분 등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회나 달리기 전후로 스트레칭, 가벼운 조깅으로 몸을 푸는 것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