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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집 밖으로 “은둔도 스펙 은둔고수 키운다”

낮인지 밤인지조차 분간되지 않는 캄캄한 방, 청년은 씻기는 커녕 화장실에 갈 의욕마저 사라져 페트병으로 용변을 해결한 지 오래다. 어느새 방 안은 쓰레기로 가득 찼다. 청년은 스스로를 ‘인간 이하의 상태’라고 여겼다.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지금의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영화 ‘흔들리는 도쿄’를 보고서야 처음으로 자신도 히키코모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자책을 거두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킨 지 5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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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 청년 돕는 안무서운회사 유승규 대표
낮인지 밤인지조차 분간되지 않는 캄캄한 방, 청년은 씻기는 커녕 화장실에 갈 의욕마저 사라져 페트병으로 용변을 해결한 지 오래다. 어느새 방 안은 쓰레기로 가득 찼다. 청년은 스스로를 ‘인간 이하의 상태’라고 여겼다.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지금의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영화 ‘흔들리는 도쿄’를 보고서야 처음으로 자신도 히키코모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자책을 거두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킨 지 5년 만이었다.

청년은 국내 최초 은둔형 외톨이 지원기관 K2인터내셔널코리아(일본 비영리단체 한국법인, 이하 K2)를 찾았다. 그곳에서 고립과 은둔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22년 청년은 K2에서 만난 친구 세 명과 뜻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단절의 시간을 스펙 삼아 같은 처지의 청년들을 돕겠다는 목표였다. 은둔도 스펙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온 ‘안무서운회사’ 유승규(34) 대표의 이야기다.

유 대표는 스무 살 무렵부터 3년, 군 제대 후 2년을 집에서 은둔하며 보냈다. 학생회장을 맡고 연극·뮤지컬 무대에 설 만큼 외향적이었지만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에서 비롯된 소통 부재와 반복된 좌절이 그를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을 돕는 기관은 늘고 있지만 그 문을 나선 뒤 사회에 안착할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은둔 경험도 누군가를 돕는 자산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일자리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무서운회사는 은둔 경험자를 위한 ‘은둔고수 프로그램’과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며 관련 콘텐츠 제작 등을 하는 비영리 사회적기업이다. 대인기피증을 앓는 청년들이 얼굴을 가린 채 곰 발바닥 장갑을 낀 손으로 음료를 건네는 ‘곰손카페’ 팝업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022년에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모집 경쟁률이 175대 1에 달했다. 지난 3월 26일 정부가 고립·은둔 상태의 아동과 청년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위기아동청년법’을 시행한 가운데 은둔의 시간을 기회로 바꿔가고 있는 그의 도전을 들여다봤다.

단순히 집에 오래 있다고 해서 고립·은둔 상태로 볼 수 있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나 방 안에서 보내는 공간적 특성, 다른 하나는 사회적 관계망이 끊긴 상태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외출하더라도 편의점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밖에 나가느냐’보다 ‘누구와 연결돼 있느냐’다. 고립 상태가 길어질수록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6개월 이상을 기준으로 지원하는데 그렇다면 5개월 된 사람은 더 고립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얘기가 된다. 5년을 은둔하던 사람도 어느 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나와도 관계를 맺지 못해 다시 은둔으로 돌아갈 수 있다. 특정 기준으로 선을 그어 지원 대상을 가르기보다 사회와 다시 연결되도록 돕는 촘촘한 지원책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회사를 세워 고립·은둔 청년을 돕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나 역시 5년간의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고 또 찾은 곳이 K2였다. 당시만 해도 이런 지원 기관은 많지 않았고 있어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은둔 문제를 공부하고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기에 K2가 문을 닫았다. 꼭 필요하다고 느꼈던 곳이 사라지는 걸 보며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들과 뜻을 모아 회사를 만들었다.

안무서운회사는 고립·은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나.
흔히 ‘맞춤형 서비스’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필요한 회복 단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는 일이다. 우리는 먼저 ‘왜 은둔이 시작됐는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함께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은 관계 회복 훈련이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에게 다시 연락해보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어느 정도 회복되면 ‘옛날 친구 초대 파티’를 열어 스스로 은둔 경험을 밝힐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 지원도 중요하다. 부모 역시 지치고 무기력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족 게임’도 있다. 명절 기간 가족 관찰 일기를 써오게 한 뒤 그 내용을 토대로 어떻게 대화하고 관계를 풀어갈지 함께 연습한다. 필요하면 가족과 직접 면담도 진행한다.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청년이 많은가.
절반 이상이 자발적으로 온다. 안무서운회사가 방송이나 신문에 소개된 뒤 문의가 크게 늘었다. 그만큼 도움이 필요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청년이 많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를 알리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보호를 이유로 이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조심스럽다. 물론 필요한 배려다. 다만 지나친 비공개도 오히려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할 수 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어떻게 회복하고 있는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더 알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공개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청년들이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고 촬영 동의를 받아 미디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은둔고수 양성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

‘은둔고수’라니?
청년미래센터나 서울청년기지개센터처럼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곳은 많아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1년 넘게 보호와 지원을 받아도 사회에 나왔을 때 설 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일반 청년도 일자리 불안을 겪는데 오랫동안 은둔했던 이들에게는 더 높은 벽이다. 그래서 은둔 경험 자체를 역량으로 전환하는 일자리 모델을 만들었다. 취약성을 약점으로만 볼 게 아니라 그 경험에서 나오는 공감과 설득력을 사회적 자산으로 보자는 거다. 모든 인생은 스펙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석하고 보여주느냐의 문제다. 반년 이상 은둔고수 양성 과정을 거친 은둔 청년들 가운데 일부는 안무서운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고, 기성 전문가 대상 강연이나 또 다른 은둔 당사자를 지원하는 영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작은 조직이라 모든 경험자를 채용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경험이 사회적 역할로 이어지는 길을 더 만들고 싶다.

어떻게 은둔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
혼자 해결해보겠다며 방을 수십 번 치웠다가 다시 무너지는 일을 반복했다. 나름대로 버텨보려고 내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기록이라도 남겨야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금세 에너지가 바닥나 촬영도 끊겼다. 그러다 우연히 봉준호 감독의 단편 영화 ‘흔들리는 도쿄’를 봤는데 주인공의 삶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처음으로 내 상태를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이해해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때 밖으로 나갈 용기를 냈다.

안무서운회사는 오래된 주택 두 채를 개조해 만든 셰어하우스 ‘안무서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입주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챙겨입은 뒤 아침 모임에서 그날의 기분을 나눈다. 점심은 함께 만들어 먹고 청소·빨래·장보기 같은 가사를 나눠 맡는다. 무너진 생활리듬과 사회적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이다. 정원은 8명, 최소 1년 입주를 원칙으로 한다. 과정을 마친 청년들은 퇴소 후 두세 명씩 함께 지내다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수익구조는.
셰어하우스 운영과 공공·지자체 용역이 주수입원이다. 셰어하우스는 비용의 절반을 외부 펀딩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입주자가 부담한다. 일부라도 스스로 비용 부담을 해야 참여 효과와 자립 의지가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용은 일반 자취보다 낮게 책정해 파트타임 일만 해도 감당할 수 있도록 했다. 필요하면 일자리도 연결해준다. 공공 용역도 중요한 축이다. 국내 고립·은둔 지원사업이 본격화된 지 오래되지 않아 현장 경험을 가진 민간 조직에 대한 수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공동생활 가이드 제작,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은둔 특화 프로그램 운영 등을 맡아왔다.

이곳을 거친 청년들의 변화는.
자신의 은둔 경험을 숨기지 않게 되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을 얻었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타인의 어려움을 쉽게 지나치지 않게 되고, 사회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고통을 견뎌본 사람일수록 감내하는 힘과 공감능력이 커지는 것 같다. 단순히 회복을 넘어 한층 성숙해졌다고 느낀다.

지금도 방 안에서 혼자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은 자극이 있어야 변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자극에 지친 사람에게는 자극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혼자서는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 번 상담이 맞지 않았다고 포기할 필요도 없다. 도움을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틴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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