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부담 없이 불공정한 조세체계의 정상화를 통해 가계소득을 제도적으로 강화하지 않는 한 이번 충격이 끝난 후 우리는 0%대 성장의 시대를 맞이하고, 가계 가처분소득은 후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올해 1분기 성장률 1.7%(전년 동기 대비 3.6%)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반등했던 2020년 3분기 성장률 2.2%를 제외하면 16년 만의 최대치였다. 더구나 이란전쟁에 따른 에너지 및 원자재 대란 속에 거둔 성적이기에 많은 국민에게 1분기 성장률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반도체 호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대한민국 경제는 반도체를 빼놓으면 얘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코스피 붐부터 244조 4000억 원의 국민연금 운용수익에 힘입어 역대 최대로 증가한 지난해 국가 순자산(약 180조 원), 처음으로 2000억 달러를 돌파한 분기당 수출액 등 모두 반도체의 산물이다. 특히 1분기에 기록한 무역흑자 504억 달러는, 그 이전 최고 기록인 302억 달러를 200억 달러 이상 넘은 규모이고, 연간 무역흑자 기준으로도 500억 달러가 넘었던 해는 여섯 번뿐이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의 컨테이너 모습. 2026.4.1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AI 투자 열풍에 따른 반도체 붐은 사실 예고된 것이다.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2년 만에 대만 가권지수가 두 배(105%) 상승했고, 올해도 이미 약 33% 상승했다. 대만 가권지수 상승의 중심에는 2023년 이후 376% 상승한 TSMC가 있듯이, 반도체 붐은 대만 경제를 신세계(?)로 이끌었다. 반도체 붐에 힘입어 2023~2025년 3년간 대만의 연평균 성장률은 5.0%에 달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 585달러)이 한국(3만 6855달러)을 추월한 배경이다. 한국이나 대만 모두 2만 달러대에서 3만 달러대로 점프하는 데 10여 년 걸렸으나, 한국은 2014년 이래 12년간 3만 달러대에 머물러 있지만, 대만은 2021년 3만 달러대에 진입한 이후 반도체 호황 덕에 4년 만에 4만 달러대로 진입했다. 올해는 4만 5273달러를 전망하고 있는데 이런 속도면 1~2년 내에 5만 달러도 돌파할 기세이다.
AI 열풍이 데이터센터 규모 경쟁으로 확산하며 뒤늦게 불이 붙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붐이 한국 1분기 성장률이었다. 반도체는 1분기 수출을 전분기보다 16%나 끌어올렸고, 무역수지는 무려 83%나 증가시켰다. 1분기 성장률 1.7% 중 1.1%포인트가 그 결과물이고, 설비투자 성장기여도 0.2%포인트도 대부분 반도체 붐의 산물이다. 그런데 한국 수출이 4%도 성장하지 못했던 2023년 이후 2025년까지 대만 수출은 33% 이상 증가하였으나, 올해 1분기 수출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대만이 4.4% 증가하였고 한국은 15.9%나 증가했다. 이처럼 반도체 수출의 높은 증가율은 지속될 수 없다. 전분기 대비 대만의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에 18.7%로 정점을 찍은 후 3분기와 4분기에는 각각 10.2%와 10.7%로 하락했고, 올해 1분기에는 4.4%까지 급감했다.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지속할 수 있어도 성장률이 계속 증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1%대에 진입한 상태이고, 계속 하락하고 있기에 이대로 가면 조만간 '일본화'를 의미하는 0%대로 진입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수출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기 때문에 내수 강화만이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있다. <표 1>을 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계소비가 크게 훼손된 한국과 달리 대만은 가계소비 추락을 막은 결과 한국보다 두 배 이상의 성장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가 관리에서도 지난 10년간 한국의 소비자물가는 23% 상승했으나 대만은 16%에 불과했다. 한국과 대만 모두,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계소비 약화가 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과 대만의 차이는 가계소비 하락의 차단 여부에서 결정됐다. <표 2>는 AI 붐 이후 한국과 대만 경제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도체 수출 붐에 의해 새로운 기록을 보일 한국의 성장률이 최근 대만의 성장률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표 1> 한국과 대만의 연평균 성장률과 연평균 전체 가계소비 증가율(%), <표 2> AI 붐 이후(2023~25년) 한국과 대만 경제의 비교.
가계소비와 내수의 중요성은 보편적으로 확인된다. <표 3>은 한국과 일본과 미국, OECD 평균을 비교하였다. 한국은 세계화-외환위기-금융위기-코로나 팬데믹과 러·우전쟁 충격이 있을 때마다 성장률이 약 2%포인트씩 하락하였고, 그 중심에 가계소비 하락이 있었다. 쉽게 예상하듯이, 가계소비 하락은 가계 가처분소득 하락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 이후(2008~2019년) 가구당 실질 가처분소득은 연평균 1.19%였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0.46%로 급락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성장률이 1%대로 하락한 배경이다.
한국 경제는 일본의 길을 밟고 있고, 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외부 충격이 있을 때마다 내수와 가계 희생으로 대응한 산물이다. 참고로 일본 전체 가구의 실질 가처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금융위기 전(1994~2007년) 0.47%에서 금융위기 이후(2008~2019년) 0.15%, 그리고 팬데믹 이후(2020~2025년) -0.47%로 추락해왔다. 그 결과가 '잃어버린 34년'이다. 반면, <표 2>에서 보듯이 미국이 팬데믹 이후 금융위기 이후보다 성장률이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계소비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계소비의 회복은 연평균 2.2%에서 2.4%로 증가한 실질 가처분소득 증가의 산물이다.
<표 3> 한국-일본-미국-OECD 평균의 연평균 성장률과 전체 가계소비 증가율(%)
이제 한국 경제는 새로운 충격을 맞이하고 있다. 2025년 트럼프 관세에 이은 2026년 이란전쟁은 공급 충격이라는 점에서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공급 충격과 유사하다. 문제는 대외 충격의 빈도가 지난 20년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률이 3%대에서 2%대로 하락하는 데 6년이 걸렸으나 2%대에서 1%대로 하락하는데 4년으로 줄어든 배경이다.
이란전쟁 등 '트럼프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에너지 대란에서 식량, 원자재 대란 등으로 발전할 이란전쟁 충격은 길게는 2년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1%대 성장률이 무너지면 가계 경제는 사실상 좀비화된다. 1분기 가구의 월평균 실질 소비지출(367만 원)이 1년 전보다는 약 6만 원 정도 증가했음에도 2019년 1분기의 369만 원에 미달하는 현실이 비현실적 1분기 성장률 속에 가려진 부분이다. 1분기 자영업자 월평균 실질 소매판매액이 1년 전보다 약 15만 원 증가했으나 2022년보다 18만 원 이상 부족한 배경이다.
노동자의 올해 1~2월의 월평균 실질급여가 2022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월급쟁이 급여는 이미 멈추었다. 문제는 물가 공포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1회성 지원으로 물가 부담의 일부를 완화하는 것은 본질적 대책이 아니다. 재정 부담 없이 불공정한 조세체계의 정상화를 통해 가계소득을 제도적으로 강화하지 않는 한 이번 충격이 끝난 후 우리는 0%대 성장의 시대를 맞이하고, 가계 가처분소득은 후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